김 아주머니가 전하는 탱자 향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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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아주머니가 전하는 탱자 향기
  • 현 자(광천여중 교사)
  • 승인 2010.02.12 14:0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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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단일기]
여교사 화장실에서 나오는 선생님들마다 웬일인지 표정이 싱글벙글 하면서 궁금하면 '가보세요' 하는 눈치다. 대체 화장실에 뭔 일이기에? 하며 화장실 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탱자 향기가 코끝에 확 스친다.

세면대 한쪽 구석에 알이 실하고 노랗게 잘 익은 탱자가 예닐곱 개 오르르 놓여 있다. 막내 임 선생님이 탱자 하나를 집어 내 얼굴에 바짝 대주면서 "선생님, 이 향기 너무 좋지요?" 한다. 요즘은 탱자라는 것도 귀하다 보니 추억을 불러 일으켰는지, 심지어 탱자가 몸에도 좋다느니, 탱자 예찬은 끊이지 않는다.

그런데 과연 누가 이 탱자를 갖다놨을까…. 혹시 교감선생님? 하기사 교무보조가 없는 우리 학교인지라, 교감선생님도 차 한 잔 얻어마시기는 커녕 내빈이라도 있는 날은 학급 일에 공문수발에 눈코 뜰 새 없는 선생님들을 대신하여 자진하여 차 담당도 하시고, 더러 수북하게 어지럽혀진 선생님들의 책상과 책꽂이도 우리가 퇴근한 사이 말끔히 치워놓기 여러 번이었던 것을 아는 까닭에 선생님들은 그렇게 점쳤다.

그러나 교감선생님 댁 근저리에는 탱자나무가 없는 데야, 여선생님들은 마치 호기심 많은 소녀들처럼 아, 그렇지! 하면서 마지막 한 사람, 복도를 열심히 닦고 있는 김 아주머니를 지목했다. 그랬다. 오늘 여교사 화장실 탱자 사건의 주인공은 바로 이삼일 전 공공근로용역으로 우리 학교에 일하게 된 김 아주머니다.

"그려, 내가 갖다놨어유, 착하신 여선생님들 쓰시는 화장실인디 어떻게 허면 향기가 날까 고민하다가, 인공방향제는 역겹잖어유, 그래서 우리 집 탱자를 땄길래 몇 개 갖다 논 건데, 어때 향기 갠찮어유?" 하면서 수줍게 웃으신다. 그리고는 "내가 이제 우리 학교 반짝반짝 허게 닦아 놓을게유, 나 돈은 없지만 돈 바라구 이 일 한다구 한 거 아니유, 나는유! 학교가 그렇게 좋대. 선생님들 가르치는 소리가 말두 못 허게 듣기 좋아!" 하며 활짝 웃으신다.

공교육이 무너졌네, 교권이 땅에 떨어졌네 하는 이즈음, 이런 과분한 사례가 쑥스럽지만 어깨에 힘이 생기고 기분이 좋다. 그리고 오늘의 이 일이 어쩌면 사소해 보일지 모르지만, 오래 근무하는 것도 아니고, 또 근무한 지 한 이틀 밖에 안 된 분이 이런 마음 씀씀이를 했다는 데에 감동을 받은 것이다.

가만 보면 김 아주머니는 긍정적이고 그래서 그런지 웃음이 많다. 복도 구석구석 몇 년은 족히 묵었을 덩어리 먼지를 후벼내면서도, 내 할 일이 생겨 재미있다고 웃는다. 나도 어느 샌가 그 웃음에 감염되어(?) 오다가다 만나면 내가 먼저 웃음을 주게 되었다. 김 아주머니는 또 농사로 수확한 고구마를 쪄 교무실에 풀기도 하고, 김장철에는 나에게 배추를 주겠다고 자청하였다. 이미 맞춰 놓은 데가 있다고 했더니, 그럼 쌈이라도 싸 먹으라며 먹기 좋게 속배추로 다듬어서 신문지에 돌돌 말아서까지 갖다 주었다.

이런 하나하나를 보더라도 그 베풂이 진심에서 우러난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김 아주머니는 순박하고, 진솔하기 그지없어 보인다. 마치 깊은 산 속, 아무도 모르게 퐁퐁 솟아나오는 맑은 옹달샘을 연상 시킨다. 사람 냄새가 사뭇 그리운 오늘, 오랜만에 상큼한 탱자 향기 같은 인정을 생각하며, 마음이 환해져서 즐겁기만 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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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익 2010-03-02 15:16:53
그동안 바쁜일있어 이제사 찿아보네 고향 교단에서 아이들 기르치는 친구가 있어 힘이
되고 뿌듯하이 부모님이 그곳에있어 가끔가지만 왼지 " 갠찮어유 이런사투리가 어색한
느낌이듣다네 얼마않가 나도 대전쪽으로 근무할것같은데 거기가면 적응델까? 굿바이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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