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인터뷰] 전병민 한국정책연구원 고문

지난 2월 1일 홍성신문에 게재된 전병민 한국정책연구원 고문의 특별기고는 지역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홍성지역의 혁신을 위해서는 이번 6월 지방선거에서 새로운 리더십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 요지였다. 반응은 엇갈렸다. 주민들은 환영했지만, 출마 예상자들은 찝찝한 표정이었다. 본지는 전 고문에게 보다 구체적 얘기를 듣고 싶어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이미 할 얘기를 다 했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는 이유로 사양했다. 여러 번 설득 끝에 그와 마주 앉았다.
▶우리나라가 지방자치제를 실시한 지 16년이 되었습니다. 지난 16년을 돌아보며 총체적으로 지방자치제를 평가한다면.
아이구, 그거 책으로 한권 써도 부족한 주제를 어떻게…. 더구나 나는 지자제 전문가도 아닌데. (그러면서 한참동안 생각하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사실은 지자제를 실시한 후 '이 좁은 땅덩어리에 무슨 지자제냐', '광역시·도 정도만 할 일이었다'는 등의 얘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되돌아보면 다소 부작용이 있었지만 지자제는 누가 뭐라 해도 지방발전의 하나의 전기가 된 것이 사실입니다. 문제는 인구 10만 이하의 지역, 지방자립도가 낮은 지역이 문제인데요. 그래서 정부도 행정구역 개편을 한다는 건데 방향이 옳다고 봐요. 그런데 말이죠, 16년을 지나며 보니까 성공한 자치단체와 그렇지 못한 자치단체가 확연히 드러났어요. 또 하나는 기초나 광역 모두 성공한 지자체의 단체장들은 대체로 기업인 출신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공무원 출신이 단체장을 맡은 곳은 어땠습니까.
대체로 현상유지를 하고 있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러나 요즘처럼 변화하는 시대에 현상유지라는 것은 사실상 퇴보를 의미합니다.
▶그러면 자치단체 홍성에 대한 전망은 어떻게 보십니까. 희망이 있습니까.
글쎄요. 그런 얘기를 할 정도로 홍성에 대해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해서 말씀드리기가 좀 그렇습니다만 (한참 생각하다가) 지금까지와 같은 식으로 가서는 크게 기대할게 없다고 봐요. 어렵지요. 여건이 어려우니 훌륭한 리더를 뽑아서 한번 기대를 해보자는 거지요. 여건으로만 본다면 과거 우리나라도 희망이 없었지요. 그런데 지금 G20 회의를 한다고 할 정도까지 왔잖아요? 싱가폴도 비슷한 예(例)지만요. 그런걸 보면 우리가 마지막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사람입니다. 걸출한 지도자를 뽑아서 그 사람을 중심으로 한번 도전해 보는 겁니다. 그렇게 되면 상황이 달라질 수 있지요. 문제는 '어떤 지도자'냐가 중요하겠지만….
▶지난 2월 1일 홍성신문에 기고한 글이 큰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만.
여기(서울)서 생활하다 보니 현지 상황을 잘 모르고 한 얘기도 있을 것 같고…. 그런데 (그 글이 보도된 후) 전화는 많이 받았습니다. 내가 홍성 친구들한테 전화를 걸어서 얘기도 들어봤고요. 아무래도 지방선거가 가까워 오니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고 보셨겠지요.
▶글을 쓴 배경이 궁금합니다만.
배경이랄 것이 뭐 있겠습니까. 홍성에서 태어나 거기서 자랐으니 홍성은 내 고향이고, 아직도 어머님이 거기 계시고. 일 년에 두서너 번 다녀오는데, 갈 때 마다 느끼는 것은 예나 지금이나 크게 변한 게 없다는 점입니다. 변한 것이란 아파트 몇 채 들어서고, 도로 몇 개 뚫어놓은 정도랄까. 항상 느끼는 것은 언제쯤 홍성이 침체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런 충정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겠지요.
▶공무원 출신의 리더에 대해 강한 불신감을 나타낸 것 같던데요.
내가 말한 것은 공무원 출신은 지방의 리더가 될 수 없다는 게 아니라 공무원 출신들은 민간기업인 출신보다 상대적으로 경쟁력이 떨어진다는 일반론을 얘기한 것입니다. 결코 특정 공무원 출신 후보를 지칭한 것은 아닙니다. 내 글을 읽고 전화해 주신 분들 중에는 '그동안 홍성에서 공무원 출신 리더를 여러 번 뽑아봤지만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면서 제 의견에 동의해 주신 분들도 많았습니다.
▶왜 공무원 출신들이 민간기업 CEO보다 경쟁력이 떨어지는 걸까요.
그 글에서 다 얘기한 것 같은데…. 질문했으니 부연하겠습니다. 공무원은 보수적이고 변화를 거부하거나 수동적인데 반해 CEO는 진취적이고 변화에 능동적입니다. 공무원이 모방과 답습에 익숙하고 현실안주형이라면, CEO는 창조적이고 목표 지향적입니다. 공무원이 정태적이고 안정지향적이라면, CEO는 동태적이고 도전에 강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이런 거지요. 기업 CEO는 경쟁이라는 바다에서 변화라는 폭풍과 싸우고 혁신이라는 파도를 넘으며 그물을 던지는 선장과 같다면, 공무원 출신들은 강가에서 낚싯줄 걸어놓고 고기가 물어주기를 기다리는 낚시꾼과 같다고 할 수 있겠지요. (CEO는) 공무원들과는 근본적으로 발상법이나 접근법이 다르죠.
▶그러면 민간기업 출신의 유능한 CEO가 과연 이 지역에 올 수 있을까요.
내 글을 읽고 연락한 사람 중에서 바로 그 문제를 가장 많이 지적했어요. 그러면서 말만 하지 말고 사람을 찾아 보내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나는 그 글에서 홍성군민들이 추대위를 만들어 직접 찾아나서야 한다고 했는데도 말입니다. 그런 전화를 받고 고민하다가 '그럼 내가 한번 찾아보자'고 해서 나섰습니다. 대기업에 있는 지인들을 통해 사람을 추천하라고 하고 여기저기 수소문도 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몇 분 만나보기도 했지요. 그런데 홍성을 '잘 모르겠다', '낯설다', '아는 사람이 없다'는 분이 많아요. 그래서 '그런 것은 문제가 아니라'고 설득하면서 홍성에 대해 설명도 해주고, 홍성을 알 수 있는 통계나 지표도 제시해 보고 하지만, 자기 고향이 아니라는 점 때문에 결심을 못하고 있어요.
▶그런데 왜 꼭 타 지역 출신에 집착하시는지요.
그 글에서도 말했지만 타 지역 출신이 가서 보다 객관적 입장에서, 이런저런 연(緣)에 얽매이지 않고 소신껏 한번 개혁해 보라는 것이지요. 그런데 막상 타 지역출신을 고집하다 보니까 지금 말씀드린 것처럼 그런 애로가 있는 겁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찾아보고 설득하다 안 되면 결국 홍성출신으로 갈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입니다. 비록 홍성출신이라도 지연, 학연, 혈연 등에 얽매이지 않고 초연한 입장에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홍성출신이 더 바람직하겠지요.
▶홍성출신으로 민간기업 CEO가 많이 있을까요.
지역 출신이 안 될 것에 대비해 지금 여러 사람을 동원해서 홍성지역출신 CEO도 찾아보라고 했습니다.
▶문제는 그런 사람을 찾는다 해도 지역에서는 낯선 사람에게 표를 주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것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요.
그게 바로 문제인데요, 우리나라 사람들의 투표성향을 보면 정실(情實)에 약합니다. 자기 지역 사람, 자기와 잘 아는 사람, 자기와 관계있는 사람에게 투표를 합니다. 능력이나 비전 따위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렇게 뽑아놓고 나서 일 잘 못한다고 하는 것은 결국 자기모순입니다. 그걸 깨우쳐야 합니다. 한마디로 주민각성운동 같은 게 필요하다고 봐요. 그러려면 홍성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나서줘야 합니다. 속된 말로 누군가 총대를 메고 나서서 선거혁신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고문님께서는 이번 지방선거에 굉장히 적극적이신데요, 이유가 있습니까.
내가 작년에 모교 총동문회의 조그만 직책을 하나 맡게 됐어요. 그 직책 때문에 다른 때보다 고향에 자주 오고가게 되었지요. 그런 과정에서 만나는 선후배들로부터 지역에 대한 여러 고민을 듣게 되었습니다. 지역에 마땅한 사람(군수 후보)이 없다는 거였어요. 그것이 홍성신문에 기고를 한 직접적 계기가 되었을 겁니다. 글을 쓰고 나니 또 이번에는 '당신이 사람 좀 찾아보라'는 거예요. 그래서 작지만 조금이라도 내 힘을 보태볼까 해서 지금 이런저런 사람을 만나고 있는 겁니다. 솔직히 나는 충정심에서 하는데 자칫 손가락질 받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들어요.
▶타 지역 출신이든 홍성출신이든 간에 좋은 사람을 찾았다면 정당선택은 어떻게 하실 건가요.
그건 전적으로 당사자가 알아서 선택할 문제겠지요.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기초나 광역단체 모두 정당공천제를 하도록 만든 것은 잘못된 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건 국회의원들 이해관계 때문에 생겼다고 보는데요, 지역 일을 하는데 도대체 소속정당이 뭐 그리 중요한지 이해가 안돼요. 그렇지만 현실을 외면할 수 없으니까 후보가 특정 정당을 선택하는 것이 득표를 위해서나 혹은 다른 이유에서 (정당선택이) 필요하다고 판단한다면 그 의견을 존중해야겠지요.
▶만약 정당을 선택한다면 경선을 해야 할 것이고 경선을 할 경우 새로운 인물이 과연 승산이 있을까요.
현명한 당원들이라면 이 지역을 위해 어떤 리더가 필요한지 잘 가려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학력이나 경력 등 그 사람이 살아온 과정 그리고 정견, 비전 등을 찬찬히 살펴보고 비교하면 쉽게 가려질 수 있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또 진정으로 홍성을 아끼고 사랑하는 식견 있는 분들이라면 양보하고 힘을 합쳐 밀어주는 미덕을 발휘할 수 있는 것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경험이 풍부하고 훌륭한 사람이라면 중앙당에서 전략공천도 할 수 있는 것 아닌가요.
물론이겠지요. 지금 각 정당의 중앙당에서도 그런 사람을 찾고 있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내 개인 생각으로는 일단 무소속으로 나가는 것이 좋다고 봐요.
▶작년에 홍성군청에서 불미스런 일이 터져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만.
조직이란 크든 작든 제대로 된 리더가 올바로 끌고 가면 그런 사고 따위는 나지 않을 겁니다. 리더를 제대로 만나지 못한 그 조직원들이 오히려 안됐다고 생각해요.
▶고문님께서는 리더의 역할을 굉장히 강조하시는데, 솔직히 말씀드리면 군청 정도의 행정단위에서는 관리적 측면이 더 중요한 것 아닙니까.
사회비평가인 홍사중씨가 이런 말을 했어요. '관리자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만 지도자는 현실에 도전한다, 관리자는 당장 눈에 보이는 손익을 계산하지만 지도자는 먼 앞날을 계산한다, 관리자는 관리만 하지만 지도자는 개혁을 한다'고 했습니다. 지금 홍성에 필요한 사람은 관리자가 아니라 리더입니다.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기> 구항출신인 전병민 한국정책연구원 고문은 세상이 다 아는 선거 전문가다. 그런 그가 이번 홍성 자치단체장 선거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겠다는 것이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밝혀졌다. 그가 어디까지 개입할지는 확연치 않으나, 그의 개입은 이번 6·2 홍성군수 선거에 커다란 변수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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