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향 피워 부보상의 넋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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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한 향 피워 부보상의 넋 부르다'
  • 전상진 기자
  • 승인 2010.04.12 14: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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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홍주등 육군상무사, 요중 홍도원에서 속절제 거행




부보상들의 넋을 기리는 '원홍주등 육군상무사(접장 한상인)'의 한식 속절제가 지난 5일 보령시 청소면 죽림리에 위치한 상무사의 최고기관인 요중(僚中) 홍도원에서 거행됐다. 이날 제향은 한상인 접장을 비롯한 사속과 초대접장 임인손의 5대손 임세준 씨, 국립민속박물관 이관호 전시운영과장을 비롯해 마을 주민 등 2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게 거행됐다.

원홍주등 육군상무사는 150여년의 역사를 지닌 부보상 조직으로 홍주, 청양, 대흥, 보령, 오천, 결성 등 6군과 홍성, 광천, 옹암, 갈산, 용호, 결성, 옥계, 보령, 오천, 홍도원, 대흥, 광시, 청양, 운곡, 남양, 화성, 평촌, 합천, 대교, 백야 등 20개 임소로 조직돼 있다.

한상인 접장에 따르면 1851년 철종 2년 대흥에 사는 임인손이 그해 4월 조령을 받고 접장에 피선되면서 홍주, 결성, 보령, 청양, 대흥, 오천 등에 임방을 개설했고, 1901년 당시 접장인 최덕주가 전래돼오던 상무사의 모든 자료를 수집, 청금록을 보완·보수한 후 안주금이 영위에 취임하면서 원홍주등 육군상무우사로 이름 지어 부르게 됐다. 1907년 보령이 따로 분거하여 독자적으로 운영해 오다가 1915년 다시 합병하면서 육군상무사로 이어오고 있다. 또한 육군상무사는 토지부동산을 23필지 1만2000여 평을 소유하고 있는데 이는 1866년 다섯 읍의 도공원으로 있던 조덕중이 영위에 오르면서 임야와 복숭아밭 논을 보상소에 기증하고 홍주부로부터 완문을 받고 홍도원을 설치, 관리해 오다가 1926년 부보상 중 연고가 없는 사람들을 매장토록 했으며, 과부출신인 여자보상도 홍도원에 매장했다. 원래 홍도원에는 초즙으로 된 건물이 4동 있었는데 주막, 치료사, 관리사, 묘직제사 임소사무실이 있었다. 홍도원에서는 상거래도 이뤄졌으며 휴식장소, 정보교환, 상품시세 등을 교환하고 병에 걸리면 치료도 받고 장사밑천도 지원받아 건강해지면 행상을 다시 나가고 병사하면 홍도원 묘역에 묻어 주었는데 그 수가 200여명이 넘었다. 이들을 합장한 묘가 무한산이다. 특히 이 묘역에는 의병의 묘, 초대접장 임인손의 묘, 동학혁명 당시 군공을 세운 김병돈 비 등 여섯 기의 비와 열한기의 묘가 있다.

이날 제향을 지낸 홍도원은 홍성과 보령의 경계에 위치해 광천과 대천을 오가던 상인들이 들러 갈증을 풀며 쉬어가던 곳으로 상품의 시세를 알아보던 부보상들의 집합소로 전해진다. 또 홍도원 뒤편 묘역 한쪽에는 <선고인합동위령비>라는 비문과 함께 펑퍼짐한 봉분이 하나 있는데 이 안에는 수백의 이름 없는 부보상의 유골을 합장한 곳으로 명절이나 한식날에는 어김없이 제사를 지낸다. 특이한 것은 제사를 지낼 때 동이에 가득채운 술과 밥 등을 그대로 봉분위에 뿌려 놓는데 이것은 많은 영령들이 흡족히 먹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원홍주등 육군상무사는 1992년 7월 문화재청으로부터 청금록 등 부보상 자료 34점이 중요민속자료 30호로 지정받았다.

한상인 접장은 "홍도원 묘역이 문화재로 등록되고 부보상 역사유품전시관 건립이 조속히 이루어져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군자금 조달 ,병력동원 등 뒤에서 묵묵히 나라를 지켜온 부보상의 넋을 위로해 줄 수 있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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