랑케의 약속과 유권자의 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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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케의 약속과 유권자의 선택
  • 반효섭(홍성군선거관리위원회 홍보담당)
  • 승인 2010.05.28 13: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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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기고]

독일의 역사학자 랑케에 대한 다음의 일화가 있다.

랑케가 연구에 몰두하다가 피곤한 눈을 좀 식힐까 하여 산책을 나갔다가 동네 골목에서 한 소년이 울고 있는 것을 보았다. 실수로 넘어져 우유병을 통째로 깨뜨린 우유배달 소년이 깨진 우유병보다도 그것을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 더 걱정되어 엉엉 울고 있었던 것이다. 랑케는 자신이 대신 배상해주어야겠다고 마음먹고 "얘야, 염려 말거라. 지금은 산책하는 중이라 내가 돈을 안 가지고 왔구나. 내일 이 시간에 여기로 나오면 내가 대신 우유 값을 배상해 주마"하고 소년의 어깨를 다정하게 두드려 주었다.

그가 집에 돌아오니 독지가가 보낸 한 통의 편지가 있었다. 랑케를 만나본 후에 역사학 연구비로 거액을 후원하고 싶으니 내일 당장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랑케는 기뻐서 어쩔 줄 몰랐지만, 순간 소년과 한 약속이 떠올랐다. 그 후원자를 만나려면 지금 당장 짐을 꾸려 바로 먼 길을 떠나야 하기 때문에 소년과의 약속을 지킬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랑케는 망설임 없이 "대단히 고마운 일이나 나는 그 시간에 다른 약속이 있어서 당신과 만날 수가 없습니다"는 내용의 편지를 썼다. 랑케는 역사학 연구보다 한 사람이 더 소중했기에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 작고 가난한 한 영혼과의 약속을 지킨 것이다. 랑케의 편지를 받은 독지가는 순간 기분이 나빠 화를 냈지만, 전후 사정을 알게 된 후 랑케를 더욱 신뢰하게 되어 만나본 일이 없는 그에게 처음 제안했던 액수보다 몇 배나 더 많은 후원금을 보냈다고 한다.

약속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는 일화다. 더구나 행복한 결말이어서 기분이 흐뭇해진다. 우리는 매일매일 수많은 약속을 하면서 살아간다. 혼자만의 약속이 있는가 하면 다른 사람과의 약속도 있다. 지킬 수 없는 약속을 하기도 하고 지킬 수 있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약속의 이행 여부에 따라 그 사람의 신용도라든지 신뢰도 심지어 인격을 평가한다.

지금 한창 지방선거 분위기가 뜨겁고 후보자들의 공약도 봇물을 이룬다. 랑케가 큰 손해를 감수하고 한 소년과의 약속을 지킨 훈훈하고 감동적인 이야기는 우리 선거문화를 다시 돌아보게 한다. 유권자들로부터 선거와 정치가 외면당하고 있는 이유 중에 하나가 혹시 악의적인 세금체납자, 고의적인 채무불이행자 같은 공약이행 불량자가 많았던 것 때문은 아닐까 하고 말이다.

공약은 후보자가 유권자에게 제시하는 공적인 약속이다. 또한 유권자가 후보자들을 비교 판단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어떤 후보자가 선거공약을 성실히 이행했나? 지금 후보자들의 선거공약은 구체적이고 실현가능한 것인가? 어느 후보자가 선거공약을 성실하게 잘 이행할 수 있을까? 등을 유권자들이 꼼꼼히 따져보고 옥석을 가려야 할 것이다.

선택은 유권자의 몫이다. 여기서 몫은 부담이나 책임이 아니라 권리이다. 공약이행 불량자 그리고 표를 얻기 위한 선심성 공약이나 지키지도 못할 허황된 공약을 제시하는 후보자를 퇴출할 수 있는 권리 말이다. 그리고 랑케와 같은 사람이 유권자로부터 선택받는다는 것을 후보자들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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