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은 인생 끼니 걱정 없이 살다 가면 바랄게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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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인생 끼니 걱정 없이 살다 가면 바랄게 없어"
  • 이은주 기자
  • 승인 2010.08.06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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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폐지 줍는 이표호 할아버지

빛바랜 군복에 하얀 수염, 폐지를 가득 실은 리어카를 힘겹게 끌고 가는 한 노인을 지역민이라면 누구나 한번 쯤 보았을 것이다.

낮 기온이 36도에 육박하면서 무더위로 인해 모두들 시원한 그늘을 찾아 산과 들로 떠날 때 구부정한 허리로 리어카에 의지한 채 읍내 전 지역을 순회하며 폐지 줍기에 여념이 없는 이표호(88) 노인.

하루 종일 폐지를 모아 판 돈으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이 노인에게 여름 휴가는 사치일 뿐이다.

무더위에 많이 지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노인은 "더워도 어째, 방 값 내고 남은 인생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 살려면 해야지"라며 구부정한 허리를 한번 편다.

이른 새벽 5시 30분. 혹시라도 밤새 쌓여있을 폐지를 찾아 리어카를 끌고 나서는 것으로 이 노인의 하루는 시작된다.

"요즘엔 경제가 어려운 탓인지 폐지를 줍는 노인들이 많아지는데 폐품은 한정돼 있어 경쟁이 심혀."

그렇게 20여년간 하루도 빠짐없이 읍내를 돌며 폐지를 수집한 후 아무도 없는 빈집으로 돌아온 이 노인의 아침식사는 식빵이 전부다. 더운 날씨 탓도 있지만 기력이 쇠진해 식사를 일일이 챙겨먹기에 버겁기 때문이다.

"배곯던 어린 시절 미군부대에서 생활하며 지낸 탓에 빵 먹는 것에 익숙해서 괜찮혀. 끼니를 거르지 않는 것만도 다행이지."

서울시 서대문구가 고향인 이 노인은 기억력이 흐려져 언제인지 모르지만 어릴 적 부모ㆍ형제와 헤어진 후 생사조차 알 수 없다고 한다. 이후 용산 미군부대에서 온갖 허드렛 일을 하며 지냈다고 한다. 지금 이 노인이 입고 있는 군복도 그 당시 부대에서 입던 옷이다. 하지만 미군부대가 철수하면서 이 노인은 한동안 떠돌이 생활을 했다. 그러다 정착하게 된 곳이 바로 홍성이다. 당시 이 노인의 연세가 예순을 훌쩍 넘겼을 때이다. 부모 형제 없이 혈혈단신 혼자가 된 이 노인은 현재 살고 있는 집 주인과 마을 이장의 배려로 월 5만원의 사글세를 내며 생활하고 있다. 그래서 월세만큼은 밀리지 않으려 한다며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고마운 사람들은 또 있다. 할아버지 사정을 안타깝게 여긴 대한통운과 홍성의료원 등에서 정기적으로 폐지를 수거할 수 있도록 해준 것이다. 하지만 요즘엔 재활용 박스를 사용하다보니 수거량이 예전에 비해 많이 줄었다고 한다. 해서 하루 수입이 적게는 몇 천원에서 운이 좋을 경우 2만원 정도라고 한다.




식사를 마친 이 노인은 또다시 리어카를 끌고 나선다. 이 노인의 시야에 들어온 도로가에 떨어진 폐휴지, 폐품 등은 영락없이 리어카에 실린다. 어찌 보면 이 노인은 생계를 위해 폐지를 줍지만 자연스레 도로환경 미화를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읍내를 돌며 리어카 한가득 폐지를 수거해 온 이 노인이 잠시 들른 곳은 한 마트 앞이다. 마트에서 폐지를 수거하기 위함인 줄 알았던 기자는 잠시 후 식빵 두 봉지를 들고 나오는 이 노인을 볼 수 있었다. 오늘 점심도 역시나 식빵으로 해결하려는 것이다. 리어카 위의 박스 안에 가지런히 빵을 담은 이 노인은 의료원 폐지를 빨리 치워줘야 한다며 또다시 길을 나선다. 건강 생각해서 쉬어가며 하시라는 기자의 철없는 질문에 이 노인은 "집에만 있으면 몸도 아프고 조금씩이라도 움직여야 산다"며 "오늘 죽으면 그만인데 질긴 목숨이라 그런지 쉽게 놓아지지 않는다"고 한숨 짓는다. 리어카를 끌고 길을 나서는 이 노인의 뒷모습에서 결코 녹록지 않은 고단한 삶이 배어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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