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한 인간관계
상태바
진실한 인간관계
  • 범상 스님(오서산 정암사 총무스님)
  • 승인 2010.10.15 14: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람과 사람, 자연과 사람이 함께 만나 어우러지고 헤어짐을 반복하며 살아간다.

굳이 철학적 사유를 말하지 않더라도 부모도 다르고, 고향도 다르며, 전혀 연관이 없을 것만 같았던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너와 내가 마주해야만 하는 그 원인은 어디에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다면 지금과는 전혀 색다른 정신적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카페에서 친구를 만나 주스를 마시고 있다.'는 상황을 한 예로 들어보자. 우선 두 사람을 낳아주신 부모와 조상이 있어야 할 것이고, 과일을 키운 자연과 농부의 피와 땀, 그리고 카페라는 공간이 있기까지의 사연들 주스공장과 잔을 만든 장인(匠人)등등…,…. 음악이 나오고 전기불의 조명이 비추어지기까지 도저히 헤아릴 수 없는 인연과 인연들이 중첩되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이러한 만남들을 인연이라는 말로 쉽게 표현하지만, 일체 모든 것들은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로서의 '나󰡑이므로 하잖게 생각되는 작은 만남일지라도 우주적인 사건이 된다. 이러한 깨달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되면 매일 보아왔던 모든 사물들과 단조롭게 느껴지던 일상들이 매순간 새롭고 경이롭게 다가올 것이다. 이것은 '나'라는 한 인간도 우주에서 단 하나 뿐이고, '너'라는 한 인격체도 우주에서 유일하며, 하루를 산다는 '하루살이'도 똑같은 존재를 찾아 볼 수 없는 유일한 개체라는 것과, 사람에서부터 미물에 이르기까지 일체 모두가 평등한 가치를 지닌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몸소 체득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나'라는 개인뿐만 아니라 나와 인연하는 모든 사물들이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이며, 만나는 인연들과 사소하게 느껴지는 작은 일들에서부터 내딛는 발걸음 하나까지도 우주적인 사건임을 알게 된다면 점차 '나'에 대한 집착이 사라짐과 동시에 상대에 대한 분별과 차별도 함께 사라지며, 일체 모든 존재들이 '나와 모습이 다른 또 다른 나'임을 알게 될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는 자비(慈悲)는 이러한 인연을 바탕으로 설해지고 있으며, 앞서 말했던 것처럼 불자들이 지키는 오계의 첫 번째 항목인 불살생(不殺生)은 일체의 모든 존재는 '나와 모습이 다른 또 다른 나'라는 사실을 깨닫는 데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인과응보의 가르침에도 '지은 자도 너였고, 받는 자도 너였다'라는 구절이 있듯이 모든 인연의 주체 자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그러므로 나에게 다가오는 모든 인연들에 대해 그 어느 것 하나 소홀 할 수 없고, 어떤 것도 미워 할 수 없으며, 그렇다고 특별히 즐거워 할 일도 없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내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들에 대하여 크고 작다는 경중(輕重)의 구분이 아닌 모두가 소중한 '우주적 사건'이라고 생각 할 수 있는 인식의 전환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마음이 바탕이 될 때 선연(善緣)은 더욱 나은 관계로 발전되고, 비록 악연(惡緣)이라 할지라도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기회로 만들 수 있는 지혜가 생기게 된다. 그래서 만나는 사람마다 󰡐모두가 좋은 사람󰡑이 되고 하는 일은 󰡐모두가 좋은 일󰡑이 되므로 날마다 좋은날이요, 좋은 일들의 결과들이 이어지는 내일도 모래도 항상 행복한 삶이 될 것이다.

지금 사회를 '자본주의' 또는 '신자유주의'라고 말한다. 이것은 인간의 존재적 가치보다는 소유(물질)의 가치를 더 높이 평가하는 사회를 말한다. 이러한 사회구조 속에서 이루어지는 인간관계는 자칫 인연의 소중함보다는 처음부터 '깨어진 인간관계'로 출발하게 된다. '깨어진 인간관계'란 '서로의 이익'에 전착해서 약속과 인연의 소중함을 깨닫지 못한 만남을 말한다. 그래서 만남의 원인이 되었던 이익에 작은 문제라도 생기게 되면 동시에 모든 인간관계가 사라져버리는 관계를 말한다.

그래서 이러한 만남은 처음부터 인연과 약속이 아닌 자본을 목적으로 하는 한시적인 관계일 뿐이며, 새로운 악연을 만드는 원인이 된다는 사실에도 불구하고 눈앞의 이익에만 사로잡혀 모든 만남이 우주적 사건이라는 만고의 진리를 외면하는 결과를 낳게 된다. 잠시 한 발짝 물러서서 살펴보면 세상 모든 일들이 개인의 노력보다는 서로의 인연관계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금방 알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익을 우선하는 '깨어진 인간관계'나 자신의 욕심을 앞세운 '이기적인 노력' 보다는 인연을 소중히 하여 '사람이 좋아' 맺어지는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 나감과 동시에 개인적으로는 물질적 소유를 따르는 욕망추구형 인간이 아니라 자(自)와 타(他)를 존중하며 '우주적 유일한 존재'로서의 부처가 되길 간절히 소망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