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좌우명은 "오늘이 최고의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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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좌우명은 "오늘이 최고의 날이다"
  • 전만수(본지 자문위원장)
  • 승인 2011.03.18 14: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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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수 갈산초등학교총동문회 신임회장

▲ 이문수 회장은 갈산면 취생리에서 부 이헌명(91년 작고), 모 최양순(2001년 작고)의 1남5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갈산초(46회), 갈산중(16회), 홍성고(26회)와 건국대학교(농화학)에서 학사ㆍ석사를 마쳤으며, 한남대학교에서 이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사)한국담배협회 상임부회장으로 재임 중이다. 아내 이계숙과는 1977년 결혼하여 1남1녀를 두었다. 충남대를 나와 국민대학교 교직원으로 근무하는 장녀 수진(34세)은 결혼하여 세 살 된 아들이 있다. 아들 현흥(29세)은 충남대학교 천문우주학과를 졸업하고 현재 취업준비 중이다.
오는 19일 갈산초등학교총동문회 회장으로 취임하는 이문수 (사)한국담배협회 상임부회장과의 인터뷰는 협회가 위치한 서울 남대문 옆에 위치한 우암빌딩 11층의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평소 너무 잘 아는 고향의 선배라서 새삼 인터뷰라는 형식이 거추장스러웠으나 워낙 프로라서 불편 없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우선 먼저 서울입성을 축하드립니다. 좋은 자리네요.
"국보 1호인 남대문을 앞에 두고 있으니, 애국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압력을 받고 있어요. 그동안 다닐 때는 별 관심 없이 다녔는데 막상 출퇴근을 하면서 보니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에스컬레이터에서도 거의 모든 사람이 뛰는 것을 알았습니다. 참 바쁘게 사는 것을 확인했죠. 나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연구직의 특성도 한몫했겠지만 특혜를 받고 살아왔음을 느꼈죠. 직전에 근무하던 광주공장에 가서 그런 얘기를 했더니 많은 공감을 받았지요."

이곳은 무엇을 하는 곳인가요.
"한국담배협회는 담배제조사들의 공동적 이익을 위해 만든 사단법인입니다. 1998년에 설립되었습니다. 잘 아시겠지만 국내 담배 소비시장을 분할하고 있는 한국의 KT&G, 미국의 필립모리스, 영국의 BAT, 일본의 JT가 모여 만든 단체로 담배산업의 지속적 발전을 위해 한 목소리를 내는 곳입니다."

일종의 담배 마케팅의 협동적 대응과 대변창구역할인가.
"그렇게 이해하셔도 좋습니다."

금연단체 등과는 대척점에 있다고 보나.
"그렇게까지 확대해석할 것까지야 없지요. 저희는 담배 소비자 연맹 등과 관계를 유지하지요"

기왕 얘기 나온 김에 묻는다면 흡연의 좋은점 이랄까, 아니면 강점이라면.
"편하다. 릴렉스(relex)시켜준다, 그런 거지요. 그리고 '터치감'을 들 수 있지요. 실제로 담배중독의 50%가 터치감 때문이지요. 아기가 엄마의 젓을 물고 만지는 것과 유사한 그런 거지요. 사람과 사람의 완벽한 소통이 이루어지는 상태라고 합니다. 그 이외는 완벽한 상태의 소통은 없답니다. 담배를 만지작 거리면서 엄마와의 소통을 경험한다고 할까요. 뭐 그런 겁니다."

말씀이 재미있네요. 비약 같기도 하고…
"다양한 연구결과의 한 예이지요. 그리고 담배연기를 빨았을 때 입안이 넓어지며 팽창(expention)하는 만족감 그런 것들이지요. 니코틴을 흡입했을 때, 뇌에 전달되는 시간은 48초 걸립니다. 뇌에 전달되었을 때 토파민을 분비시켜 '진정과 흥분' 작용을 합니다."

그렇다면 해롭지 않다는 말씀인가요.
"해롭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확히는 모릅니다."
다소 혼동을 일으킬 수 있는 애매모호한 답변이다. 기자의 질문은 계속 이어졌고, 대화는 길게 이어졌으나 적절성 여부가 애매하여 이쯤에서 자른다.

실례지만 하루에 얼마나 피우시나요.
"한 갑 정도 피웁니다."

뭐 사명감으로 피우시나요.
"(껄껄 웃으면서)그럴 리가 있나요. 뭐 기호이니까요."
인터뷰 중에도 이문수 회장은 간간이 담배를 아주 맛있게 피웠다.

그러면 담배를 잘 피우는 방법은 무엇인가요.
"첫째, 가능한 한 짧게 2분의 1 정도로 피우는 게 좋습니다. 둘째, 한 번에 너무 많이 빨지 않는 게 좋습니다. 셋째, 물을 많이 마셔야 합니다. 니코틴 배출도 좋지만 혈압을 낮춰줍니다. 넷째, 담배피우는 인터벌을 길게 가져야 좋습니다. 다섯째, '식전담배'는 치명적입니다. 중독성 체크의 기준이지요."

얘기만 들으면 담배를 권장하는 것 같기도 한데, 담배 굵기에 따른 위해성의 차이는.
"담배를 끊는 게 당연히 좋지요. 다만 끊기가 싶나요. 그렇게 피우면 위해성이 덜 하다는 게지요. 허허, 그리고 굵기와는 거의 무관합니다."

담배얘기를 너무 많이 했네요. 지금까지 인생과정에서 전환점이나 계기가 있었다면.
"대학에서 2년 동안 조교를 거쳐 1979년 입사이후 직장을 옮겨 본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3번째 자리 이동이지만 바운더리내에 있어서 세상을 잘 모릅니다. 대학교수를 하고 싶었는데 우회의 길을 택한 거지요. 1981년 일본 JT(일본 담배회사)연구소에 연수를 갔을 때 뭐랄까 문화의 충격이라고 하기엔 미온적인 모멸감 같은 걸 느꼈습니다. 한국은 올 때마다 사람이 바뀌느냐. 그래가지고 무슨 전문가가 되겠느냐. 당신도 언제 또 오겠느냐 라는 겁니다. 정말 창피했습니다. 자존심이 상했죠. 그때 약속을 했습니다. 최소한 10번 이상 오겠다고, 그리고 약속을 지켰습니다. 15회나 방문하여 교류를 지속했습니다. 지금은 JT산하 생명과학연구소장을 하는 후지모리와의 우정은 그렇게 시작을 했지요. 그리고 결심했지요. "일본을 넘어 중국에 팔겠다." 중국학자들을 끌어들여 교류를 긴밀히 했고, 지금도 하고 있으니 나와의 약속을 지킨 셈이지요. 그동안 해외출장을 75회 다녔습니다. 2000년부터는 매년 한두 차례 중국을 가서 강연을 하지요."

평소 업무추진 스타일은
"무섭다고 할 정도로 엄격합니다. 그리고 거짓말을 싫어합니다.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내가 필요해서 구입을 제안해 구입한 기자재가 200억 원이 되는데, 한 번도 구입제안이 리젝트(거절)된 적이 없습니다."

멘토는 누구.
"연구원에서 상사로 모셨던 김창호 부장님을 잊을 수가 없지요. 영주가 고향으로 서울대 출신인데, 10년간 혹독한 트레이닝을 받았지요. 그리고 석사학위 지도교수인 박면용 교수님입니다. 문리대 학장을 역임하시기도 하였습니다. 남다른 애정을 주셨지요."

어렸을 때 특별히 생각나는 추억이라면.
"초등학교 시절 김태산 친구가 생각납니다. 가정이 어려워서 진학을 못했죠. 세 살이나 나이가 위였는데, 학교 다닐 때 내 책가방을 들어다 주곤 했지요. 여태껏 고맙다는 말도 못해봤지요. 교육을 받았으면 크게 되었을 텐데....비위가 안 좋아서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지 못했어요. 막내 매월이 누나가 1년 선배인데 도시락을 배달해 주었지요. 누나 졸업 후에는 사촌 성자누나가 이어서 배달해주었습니다. 정말 신세를 많이 졌지요"

갈산초총동문회장 직을 맡으며 각오는.
"우리 기수가 맡아야 할 입장이라서 적극적 의지로 동의했습니다. 잘나가는 몇 사람이 꾸려가는 동창회가 아닌 즉 사회적 지위, 가방끈, 다 필요 없고 그저 순수한 동심의 집합체로 이끌 생각입니다."

의지와는 달리 그 대상이 될 수도 있는데.
"나는 늘 그렇게 실천해 왔습니다. 동창회체육대회 참석할 때 항상 노타이에 검정고무신, 그리고 모자차림이었지요"

그렇다 하더라도 해석은 다를 수 있지 않을까요.
"진정성을 알아주리라 믿습니다."
이 부회장의 초등학교동창회장 취임은 그에게는 일종의 사명의식으로 느껴졌다. 축하한다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이 기회에 남다른 러브스토리를 밝힌다면.
"아내와는 독특한 연이 있지요. 1년 후배로 앞서 언급한 성자누이 친구였어요. 도시락을 함께 갖다 주기도 하고, 누이집에 와서 만나곤 했지요. 고 2때 예산에서 기차를 탔는데, 서울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아내와 우연히 만났지요. 대학입학 후 아내가 다니던 고등학교 앞에서 무작정 기다려 본격적으로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1977년 스물넷에 결혼을 했지요. 그런데 아내와는 묘한 연이 있습니다. 아주 어렸을 때 오줌을 잘 누지 못해서 아버지가 약을 사러 다니셨는데, 당시 갈산약방을 운영하던 아내의 집인 갈산약방으로 다니셨어요. 당시 양가 부모들끼리 자녀들이 자라면 결혼을 시키자는 말을 주고받았다는 거예요. 아무래도 천생연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평소 이 회장 부부는 주변의 시샘으로 부러움을 사는 소문난 잉꼬부부다. 존경하는 사람을 꼽는다면.
"부모님을 존경합니다. 부모님은 교육열이 남달랐습니다. 교육에 모든 걸 쏟아 부으셨죠. 고등학교시절 홍성에서 하숙을 하는데 당시 혼자 사용하는 방의 하숙비가 한 달에 쌀 닷말이었는데, 일하시는 분을 시켜 달마다 40여 리를 배달시키는 정성을 보이셨지요."
감사의 마음이었는지 부모님 생전에 이 부회장은 주말마다 시골집을 찾아 부모님과 시간을 함께 보내는 소문난 효자였다.

은퇴 후의 계획은.
"선비답게 살고 싶은 꿈이 있습니다. 무슨 선비냐 하면, 시골집에 몇 명이 차 한 잔을 나눌 수 있는 사랑방을 만들고 싶습니다. 농삿일에 바빠서 정보접촉이 부족한 선후배들에게 사회적으로 필요한 일을 대신해 주고 싶습니다. 지식정보 메신저와 행정, 법률 등 어려운 일을 대행해 주고 싶습니다. 내가 태어난 시골집에서..."
그에게 어울리는 꿈이라는 생각이 든다.

인생의 좌우명은.
질문을 기다렸다는 듯이 "오늘이 최고의 날이다." 더 이상의 설명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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