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붙고 보자' 선심성·황당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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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붙고 보자' 선심성·황당 공약
  • 김혜동 기자
  • 승인 2011.04.08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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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23일 이른 아침, 학생회장 선거유세가 한창인 홍남초등학교를 방문했다. 각 기호의 번호와 공약을 큼지막이 적은 피켓을 들고, 손가락으로는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의 숫자를 내세우는 모양이 마치 어른선거의 축소판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학생들이 내세우는 공약도 눈여겨 볼만했다. 학생회장에 입후보한 이민희(13) 학생은 "3달에 1번 축구대회를 열고 공기대회를 개최할 것"이라며 애교 있는 공약을 내세우기도 했고, 안창혁(13) 학생은 건의함 활성화, 친구·동생 친절하게 대해주기, 겸손한 자세 잃지 않기 등의 다소 고전적이면서도 무난한 공약을 내세웠다.

이처럼 새 학기를 맞이해 홍성을 비롯한 전국의 초등학교에서 뜨거운 선거바람이 불고있는 가운데, 광주의 Y초등학교에선 모 학생회장 후보의 '콜팝(콜라+치킨) 간식 제공'이란 공약이 논란이 되어 회장선거가 원천무효가 됐다는 기사가 보도된 바가 있다. '콜팝 제공'을 내세운 한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학생회장에 당선이 되자, 학부모들이 이의를 제기해 결국 재선거를 실시하게 됐다는 내용이다.

서울에서도 어른선거를 떠올리게 하는 공약이 선거판에 등장한 사례가 적지 않았다. 'ㄱ'초등학교 전교 어린이 회장 선거에 나선 한 후보자는 화장실 시설을 현대화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고, 'ㄴ'초등학교에는 축구부를 창단하고, 각 반에 축구공과 피구공을 돌리겠다는 후보도 있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어린이의 힘만으로는 지킬 수 없는 어른(학부모)용 공약뿐만 아니라 '한턱 내겠다'는 선심(善心)성 공약까지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사태에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다. 이미 대도시에는 초등학교학생회장선거전문 컨설팅업체가 등장했다고 하니 어린아이들의 선거라고 해서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닌 것이다.

문제는 '일단 붙고 보자'라는 황당 공약을 내세웠던 후보도 후보지만 인기 끌기 발언에 '혹'하는 학생들이 대다수라는 것이다. 이 아이들이 자라나서 정작 유권자가 되었을 때 올바른 정치의식을 가지길 바란다는 무리이지 않을까.

초등학교 어린이회장선거의 '콜팝 제공'이란 공약은 애교 수준으로 넘어 간다 쳐도, 총선이나 대선을 1년이나 앞두고 벌어지는 사전선거운동과 같은 위법활동이 교묘하고 조직적으로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옛 말에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된다'고 했다. 뇌물수수, 공직선거법위반, 공무집행방해 등 지난 선거를 얼룩지게 했던 어른들의 잘못은 일일이 열거하기가 낯 뜨거울 정도이다. 모범을 보여야 할 어른부터 공공연히 선거법위반을 일삼는 판국에 자라나는 어린이들이 무엇을 보고 배우겠는가.

사전선거운동이다 뭐다 삐걱대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니 '선거의 계절이 다가왔구나' 하는 염려섞인 생각부터 든다.

하루라도 빨리 제대로 된 선거교육을 실시해서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을 때는 유쾌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선거를 맞이하길 기대해 본다. 후보자들은 실현가능하고 책임질 수 있는 공약으로 정정당당히 경쟁하고, 유권자들은 금권·관권에 휘둘리지 않고 비판적인 시선을 유지해 후보자들을 긴장시킬 수 있는, 그야말로 민주주의의 꽃다운 선거를 맛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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