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변화로부터 화엄의 세계를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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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변화로부터 화엄의 세계를 만들자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1.04.15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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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산천에 꽃이 핀다.

꽃들은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뽐내지만 결코 남의 아름다움을 시샘하거나 방해하지 않는 가운데 개개(箇箇)의 개성을 지키는 동시에 전체의 조화에 기여한다. 여기에 빗대어 불가(佛家)에서 우주법계를 화장장엄(華藏莊嚴)의 세계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우리라고 할 때 '나'를 부정하면 전체가 부정되듯이 삼천대천세계라 불리는 우주 역시 작은 입자들의 집합체로서 미세한 알갱이 하나도 부정되거나 소홀할 수 없는 존귀한 존재이다.

그래서 나는 우주의 본질인 동시에 개체로서 존재한다. 마치 "파도와 바닷물은 서로 모양은 다르지만 본질은 같고, 바닷물이 바람을 만나 파도를 일으키고 파도는 바닷물에 의지해서 일어나듯이 나와 전체는 언제나 상의상즉(相依相卽)의 관계"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꽃이라고 말하는 지방자치는 정치(법과 제도)와 문화에 있어서 화장장엄의 세계를 말하며, 복지국가가 여기에 속한다 하겠다. 요즘 들어 한낱 정치구호로 전락해버린 감이 있지만 '작은정부', '지역균형발전', '지방분권' 등의 본래 취지는 지역과 중앙의 구분과 격차를 점차 줄여나가자는데 있다. 이때의 구분과 격차는 '같음의 평등'이 아니라 '다름의 평등'을 말한다. 이것은 같은 종(種)의 새라도 사는 환경에 따라 집을 짓고 먹이를 구하는 방법이 다르듯이 모두가 행복해지려는 마음과 노력이 '같음'이라면 '다름'은 구체적인 실현방법에 있어서 지역특성에 맞는 정치와 행정을 펼치는 것을 말한다.

필자는 최근 들어 사회적 트랜드로 급부상한 웰빙(참살이)은 "잘 먹고, 잘 살자"라는 말에 근원을 두고 있다고 본다. "육체와 정신의 조화를 통해 행복하고 안락한 삶을 지향하는 삶의 유형'이라는 웰빙의 정의에 비추어보면 '잘 먹는다'는 것은 건강한 육체를 의미하고, '잘 산다'는 것은 정신적 행복을 말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것을 자본주의 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정치와 경제는 '잘 먹는다'에 속하고 문화ㆍ예술 등은 '잘 산다'에 속한다고 본다.

자본주의 사회라는 전제를 두었지만 정치를 '잘 먹는다'로 분류하는 것은 우리 사회가 경제전문가에게 정치를 맡기면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고 착각하여 경제전문가를 대통령으로 뽑을 만큼 비정상적이기 때문이다. 마치 기름진 산해진미를 잔뜩 먹고, 또다시 다이어트를 한답시고 스포츠센터를 찾거나 유명상표의 운동복을 폼 나게 차려입고 운동에 나서는 것처럼 말이다.

자본주의 국가에 있어서 참다운 정치는 자본권력을 견제하고 자본의 횡포로부터 서민을 보호하며 복지정책을 통해서 빈부의 격차를 줄여나가고 사회안전망을 구축하여 전 국민의 안락한 삶을 보장하는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정치는 모든 재원을 동원하여 이익을 창출하는 경제논리와 상반되는 것으로 수익만큼의 세금을 징수하고 그것을 국민 전체의 이익으로 전환하는 분배의 실천에 있다. 따라서 참다운 정치란 웰빙이 육체와 정신의 조화로운 삶을 말하듯이 경제와 정신활동(문화ㆍ예술ㆍ복지)의 조화의 매개체로서 중간자적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서울 경기지역에 전체 인구의 50%가 살고 있고, 상위 3%가 사유토지의 95%를 소유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자본(경제)은 서울, 그것도 특정의 3%가 모두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국가)가 개인들의 존엄성을 보장하고 권리를 보호해 줄 수 없게 되었고 상부로부터, 자본의 분배로부터의 변화와 개혁은 불가능하게 되어버렸다. 이제 남은 것은 지방으로부터 개혁, 개인으로부터의 개혁뿐이다. 왜냐하면 나를 부정하면 전체가 부정된다고 말했듯이 우리 사회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개개인 '나'시 문제의 근원에 기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혁에 있어서 거대자본과 자본에 종속되어 있는 정치권력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잘 산다'에 속하는 정신활동에 지금보다 더 많은 투자와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같은 고향을 가졌다거나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에게 더욱 친밀함을 느낀다. 이것은 인간이면 당연히 가지게 되는 동류의식 때문이다. 그런데 동류의식이 정치(선거)에 있어서는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작용하여 엉뚱한 사람이나 정권을 탄생시킨다는 것이다.

화엄의 세계는 반목과 투쟁이 아니라 '나'부터의 변화를 통해 전체의 조화를 만들어가는 일이다. 그래서 이때의 개혁은 변화를 말하며, 외부로부터의 변화가 아니라 개인으로부터의 변화를 말한다. 왜냐하면 일체 모든 것은 상대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봄, 봄꽃이 아름다운 것처럼 '나'의 변화를 통해 온 세상을 화장장엄의 세계로 꾸며보면 어떨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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