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막걸리’ 화려하게 부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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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막걸리’ 화려하게 부활하다
  • 정세인 디트뉴스 편집위원
  • 승인 2011.05.13 14: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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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암효과 발표로 품절사태까지 빚고 있다는데...


초등학교 다니던 어릴 적, 농사일을 하시던 어른들은 새참이 올 때쯤이면 ‘아가야! 막걸리 한 되 받아오너라’하고 심부름을 시키셨다. 그러면 달려간 곳은 동네에 한 곳씩은 있었던 주막이다. 주막 부엌 한쪽 땅에 묻어놓은 장독은 막걸리를 보관하던 천연 냉장고였다. 막걸리를 주문하면 인정 많던 주막 아줌마는 찌그러진 누런 주전자에 철철 넘치도록 부어주었다. 주전자를 들고 들길을 가다보면 막걸리가 넘쳐 주전자 꼭지로 흘러내리기 일쑤였다. 넘쳐 흐르는 주전자를 들고 가기도 불편하고 농사일을 도와주었으니 출출한 김에 한 모금 두 모금 홀짝홀짝 마시다 보면 얼굴이 빨갛게 익어서 어른들이 일하는 곳에 도착했던 기억이 새롭다. 어른들은 이를 알면서도 모른 척 해주셨고...

이같이 1960~70년대 농촌에서 들일을 할 때면 등장하는 것이 새참이었고 새참에 빠지지 않는 것이 막걸리였다. 지금처럼 농기계도 많지 않고 오직 몸으로 농사일을 해야 하던 시절, 막걸리는 농민들의 어려운 시름을 달래주는 주요 메뉴였다. 그래서 막걸리는 탁한 술이어서 탁주(濁酒)라고 했지만 농사일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마셔 농주(農酒)라고도 불렸다. 막걸리는 농민들에게만 인기가 있었던 것이 아니다. 건축공사를 하는 공사판에서도 힘든 노동자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서민들의 술이었다. 이와 함께 호주머니가 얇았던 대학생들이 캠퍼스에서 우정을 다지며 먹었던 술이 바로 막걸리였다. 이 때문에 중·장년층이라면 막걸리와 관련한 추억이 하나쯤 없는 사람도 별로 많지 않을 것 같다.


농촌 들녘에서 새참과 함께 빠지지 않았던 막걸리의 추억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애용하던 막걸리는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술시장의 70%를 차지했었다. 수요가 많다 보니 각 읍면 마다 양조장은 하나씩 있었다. 막걸리 판매에 힘입은 양조장 사장님은 초등학교 운동회 때 기부금 명단 앞쪽에 꼬리표가 붙는 유지였고 양조장집 아들은 부잣집 귀공자로 대우를 받았다. 그렇지만 박정희 대통령 시절 식량부족을 이유로 이른바 ‘양곡관리법’이 시행되면서 쌀로 술을 빚지 못하게 하면서 밀가루나 고구마 등으로 막걸리를 빚게 되어 그 맛을 잃어 갔고 인기도 서서히 하락하게 된다. 한 때 왕대포라는 말이 주막의 간판을 대신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막걸리가 주당들의 외면을 받기 시작한 것이다.

1990년대 들어 쌀이 남아돌면서 원료도 고구마 등에서 쌀로 환원되고 옛 전통방식 그대로 쌀 막걸리가 나오기 시작했지만 한 번 빼앗긴 맛을 되찾는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여기에 격동의 현대사를 지나면서 외국문화와 함께 들어온 맥주나 양주의 입맛에 잠식돼 막걸리는 푸대접을 받아야 했다. 막걸리하면 왠지 농민이나 서민들만 먹는 싸구려 술로 인식되면서 국민들로 부터 괄시(?)를 당해온 것이 사실이다.




외국문화에 빼앗겼던 막걸리, 한 동안 주당들에게 푸대접 받는 신세
이같이 설움을 받던 막걸리가 부활하기 시작한 것은 2009년부터이다. 이른바 웰빙열풍 속에서 발효식품인 막걸리가 건강에 좋다는 입소문이 퍼지면서 전주를 비롯한 일부 지역에서부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으로까지 전파됐고 한국과는 달리 값이 싼 서민들의 술이라는 이미지를 탈피해 건강에 좋은 고급술로 알려져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일본에선 한 병에 1800엔(한화 2만원)정도나 한다니 한류열풍의 한 자리를 차지할 정도가 되었다. 부활의 붐을 타기 시작한 막걸리가 최근엔 한국식품연구원의 연구결과 항암물질이 포도주나 맥주보다 무려 25배 이상 많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 막걸리를 만드는 회사들마다 주문량이 40~50% 이상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고 밝히고 있고 일부 음식점과 소매점에선 품절사태까지 빚고 있다며 막걸리를 찾지 못해 아우성이다. 주식시장에선 막걸리 관련주들이 강세를 보이고 있는 등 요즘 막걸리 열풍이 새로운 분위기를 맞고 있는 모습이다.

우리의 전통술인 막걸리가 인기를 끌고 있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그동안 주당들에게 외면을 받으며 민속주점 한 구석에 처박혀 있던 막걸리가 건강주로 새롭게 부활하고 있어 우리 전통주를 살리는 계기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붐을 타고 과일 막걸리에서부터 막걸리 셔벗, 막걸리 칵테일까지 변신에 변신을 거듭하며 인기절정을 누리고 있다.


항암효과 발표로 폭발적인 인기... 세계적 명주로 발전시켜 나가야
그렇지만 막걸 리가 건강에 좋다고 무조건 과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항암효과가 있다고 과신하는 것도 금물이다. 막걸리도 술이다. 전문가들은 막걸리는 하루에 종이컵 3잔 정도가 적당하다고 권하고 있다. 안주도 콩류나 해산물, 채소와 과일 등을 충분히 섭취하며 마시는 것이 좋다고 한다. 먹고 나서는 콩나물국이나 조갯국 등으로 숙취를 해소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부분이다.

막걸리가 새롭게 부활하고 있는 만큼 이에 대한 연구를 보다 체계적이고 심층화해 세계의 명주로 살리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 우선은 품질을 높이고 다양화 해 고급화해가고 있는 입맛에 맞추어 나가야 한다. 우리 조상들의 전통방법에 과학적인 방법까지 가미해 한 단계 업그레이드 된 새로운 전통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막걸리는 발효주이기 때문에 위생적인 문제나 포장에 어려움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요즘엔 캔이나 다양한 용기를 이용해 포장이 다양화되고 위생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이를 발전시켜 오랫동안 변질되지 않고 보관하고 휴대하기 편한 방법을 더 연구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단순히 국내용이 아니라 세계를 겨냥한 명주로 발전시킬 방법들을 연구해 나가야 한다. 로마자 표기 문제나 영문 애칭 등이 아직 공식화되지 않고 있어 논쟁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리고 있다. 정부가 나서서 공식표기를 정해 이 같은 논란을 잠재우고 우리 전통술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주는 일도 시급하다. 이제 막걸리는 농민들이나 서민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싸구려 술로 남아있을 수는 없는 일이다. 과거 농촌 들녘이나 공사판에서 먹었던 추억을 간직한 막걸리가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인의 건강에 도움을 주는 명주로 거듭나기 위한 보다 체계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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