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력 펼치며 새로운 도전 위해 노력하는 다문화가정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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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 펼치며 새로운 도전 위해 노력하는 다문화가정 여성
  • 최선경 편집국장
  • 승인 2011.07.0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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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 사회복지학 수료, 자녀교육 위해 검정고시 공부하는 카자흐스탄 출신 김갈리나 씨 … “열정과 욕심이 아름다워”

 카자흐스탄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한 달 만에 한국으로 들어와 보름 만에 결혼식을 마쳤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부끄럽게 웃는 김갈리나(39·사진) 씨는 영락없는 우리네 아줌마였다. 결혼한 지 이제 11년째라는 김 씨는 슬하에 아들 하나를 두고 있으며 현재 평택대 일반대학원 사회복지학을 수료하고 논문 준비 중이다.

“카자흐스탄에서 잔수구로브 사범대학교 심리학과를 졸업하고 5년 동안 상담교사로 근무하고 있었어요. 우연히 사업차 카자흐스탄에 와 있던 남편을 소개받았는데 첫눈에 반한다고 하나요? 제가 평상시에 꿈꾸던 이상형이랑 너무 똑같았어요. 그래서 아무런 미련 없이 고향을 떠나 오로지 남편 하나만 믿고 먼 타국으로 건너 왔답니다”

한국어가 유창한 김 씨가 처음 한국에 왔을 땐 지금처럼 다문화센터나 다문화가정에 대한 정책이 전무했다. 제대로 된 한글 교재도 없었고 한글학당도 없었다. 유창한 한국어 실력의 비결을 묻자 아무래도 ‘고려인 3세(요즘엔 해외동포 3세라고 칭한다)’이다 보니 한국인의 피가 흘러서인지 남들보다 언어습득력이 빨랐던 게 아닌가 싶다고 김 씨는 답한다.

“아무리 고려인이라 하더라도 언어나 문화, 전통은 차이가 많이 나는 것 같아요. 소위 저는 어릴 때 공산주의식 사상이나 교육을 받았지만 남편은 자유주의, 자본주의 나라에서 자랐고 당연히 사고방식이나 관점이 조금 다르겠지요. 남들은 무엇 때문에 부부싸움을 하는지 모르지만 우리 부부는 사상이나 뭐 이런 것 때문에 가끔 의견 차이가 나기도 합니다.

예를 들면 아들에게 아빠가 어렸을 땐 매우 가난했지만 열심히 노력해서 잘사는 나라가 됐다. 그런데 엄마 나라는 아직 경제가 어려운 나라이다. 이런 식으로 교육을 시키면 아직 판단력이 없는 아들이 객관적으로 생각하기 어려울 것 같아요. 아무리 남편이 잘해줘도 내 나라를 무시하는 듯한 말은 듣기가 싫어요”

다문화가정 여성들이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에서 온 것처럼 비하하는 태도 버려야

요즘 ‘무상교육이다, 무상급식이다’라는 문제로 한국이 들썩거리지만 김 씨는 어릴 때부터 국가로부터 무상으로 모든 교육을 받았다고 한다. 테니스나 악기도 배웠고, 러시아를 썼지만 영어도 완벽하게 배울 수 있어서 지금처럼 사교육비를 전혀 들이지 않고도 다양하고 질 높은 교육을 마음껏 받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가끔 다문화가정 여성들은 모두 가난하고 못사는 나라에서 온 것처럼 비하하는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있는데 그것은 잘못된 편견이라고 김 씨는 단호히 말한다.

또한 만약 카자흐스탄에서 계속 일을 했더라면 아마도 한국의 교장선생님의 위치 정도는 갈 수 있었을 거라는 말도 한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이 곳 한국에 와서는 김 씨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었다. 그러다가 2007년 전국 다문화가정 여성들 대상으로 평택대학교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는데 김 씨의 학력과 유창한 한국어를 인정받아 대학원에 합격할 수 있었도 2년 만에 수료할 수 있었다. 그 이후 러시아어 번역이나 통역 등 재택근무를 하다가 두 달 전부터 홍성군다문화가정지원센터에서 사회복지사로서 아이돌보미 일을 시작하게 됐다.

“2006년부터 한글교육, 방문교육, 언어치료발달과정 등 다문화가정에 대한 지원이 시작됐고 지금은 애만 낳고 키우기만 하면 여러 기관에서 많은 도움을 주는 시대가 된 것 같아 감사해요. 언어는 스스로의 노력이 많이 필요한 부분이지만 10년을 살아도 말을 잘 못하는 사람들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자녀를 잘 가르치기 위해 지난 3월부터 초등학교 과정 검정고시를 공부하고 있다는 김 씨는 다른 엄마들처럼 똑같이 자녀교육에 많은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다문화가정 엄마들이 구구단을 몰라서 자녀들을 못 가르치는 게 아니에요. 이번에 공부를 하면서 사다리꼴이나 마름모, 평행사변형이라는 단어의 개념을 새로 배웠어요. 또한 기체, 액체, 고체가 뭔지도 배웠구요. 이제 아이가 4학년이 되다 보니 혼자 힘으로 가르치는 게 좀 어려웠어요. 그런데 이렇게 아이랑 똑같은 공부를 하니까 요즘엔 참 즐거워요”

전문직에 종사할 수 있는 여러 통로 마련해 주길
다문화가정 여성들이 맞벌이를 한다는 건 참으로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언어가 통하더라도 문화와 생활습관이 다르다보니 세심하게 신경을 써야 하는 부분에서 차이를 느끼고 실수를 하게 되기 때문에 전문직을 갖기는 더더욱 어렵다. 김 씨처럼 교사로 근무하다가 식당에서 설거지를 계속 한다는 것도 사실 어려운 일이다. 김 씨의 친구들 중에는 독일로 이민 간 사람들이 많은데 독일에서는 카자흐스탄의 교사자격증을 인정해줘서 유치원교사 정도는 할 수 있다고 한다. 3년만 지나면 연금도 나오고 한국의 직업훈련소 같은 곳에서 직업 훈련을 따로 받을 수 있다고도 한다.

“이 곳에 나와 근무를 하면서 참 행복해요. 집에서 재택근무를 할 땐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고 웃고 수다 떨고 맛있는 음식도 나누어 먹고 소통을 하니 일상이 아주 즐거워요.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앞으로 논문도 열심히 써서 대학원 졸업장도 받고, 할 수 있다면 박사 과정에도 도전하고 싶어요. 부족하지만 지금의 자리에서 나의 능력과 힘을 보태어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을 할 수 있어 무엇보다 행복합니다”

작고 가녀린 김 씨의 몸 어디에서 저런 열정과 욕심이 나오는지 궁금했다. 김 씨와 대화를 나누면서 다문화가정 여성들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갖게 됐으며, 완전한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자리잡기 위해 어떤 관심과 지원을 해 줘야 하는지 다시금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지난 4월 고국을 방문한 김갈리나 씨 가족, 남편 김영길, 아들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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