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회에 파괴적으로 작용하는 입시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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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사회에 파괴적으로 작용하는 입시경쟁
  • 최철수(전 천수한의원 원장)
  • 승인 2011.11.10 14: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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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철수의 삶·사회·소통

인류 평등의 대의에 따라 전근대적인 신분 제도가 타파된 현금에 와서 다시 이에 버금하는 새로운 계급으로 군림하게 된 학력, 20대 미만에 결정되어 일생을 통해 자기의 신분으로 과시되고 끼리끼리만 뭉치고 끼리끼리만 나눔으로써 이 사회에서 우월한 지위를 선점하는 기능을 가지는 학력, 해마다 입시철만 되면 마치 무슨 출전용사를 격려 환송이라도 하는 듯이 온 나라가 덩달아 들떠서 한 번의 홍역을 치른다.

영어·수학을 위주로 하여 점수를 따는 단 한 번의 이런 시험으로 한사람의 일생에 걸치는 인생을 자리매김하는 것이 우리 사회에서 과연 꼭 필요하고 바람직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이 학력은 능력으로 오인된다. 그 학력이라는 것은 그 사람이 일류대학에 들어가는 당시의 입시경쟁능력을 말하는 것이지 그 사람의 평소의 일반적 능력은 아닌 것이다. 사람의 능력은 그렇게 쉽게 평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 사람이 차후에 어떤 능력을 발휘하였다면 그것은 그가 꼭 일류대학을 졸업하였기 때문에 생긴 능력이라기보다는 그가 일류대학을 졸업하지 않았어도 그런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좀더 과장되게 말한다면 우리나라의 소위 일류대학이란 이런 능력이 있을 수 있는 사람을 모으는 데에 능력이 있는 기업이지 사람을 능력이 있는 사람으로 길러내는 우수한 교육기관만은 아닌 것이다.

단지 학력이라는 간판을 따기 위하여 사람의 사고력이 다양하게 성숙할 수 있는 인생의 황금기인 고등학교시절을 입시경쟁으로 내모는 것은 국력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우리사회에 파괴적으로 작용하고 우리의 삶을 더욱더 황폐해지도록 방치하는 것이다.

고등학교시절은 말 그대로 인생에 있어서의 황금기이다. 가장 정서적으로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이기도 하고 자기의 인생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에 대한 꿈이 있는 시기이다. 사회에 대한 다양한 가치관이 형성되고 삶에 대한 의문에서 철학적 사고도 성숙하고 다양한 예술적· 과학적· 창의적인 능력이 싹트기도 하며 자신의 개성과 인격이 형성되는 시기이기도 한 것이다. 이러한 중요한 시기에 정신을 오로지 입시경쟁에 빼앗겨 딴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게 한다면 우리의 젊은이들이 살아갈 앞날의 세상은 과연 어떠한 세상이 될 것인가? 공자말씀에 ‘배우기만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멍청해진다(學而不思則罔)’고 하시지 않았던가? 그렇게도 결사적인 교육열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가 노벨상에서 평화상 이외에는 한사람의 수상자가 없는 것도 출세를 목표로 하는 이 지식경쟁 교육에 원인이 있는 것이라고 한다면 지나친 말일까?

더구나 입시 경쟁이 끝나면 이제 공부는 끝난 것이다. 입시에 성공한 사람은 그것으로 일생을 유능한 사람으로 인정받으니 필요 없게 되는 것이고 실패한 사람은 어차피 인정받을 수 없게 되니 필요 없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성인의 독서비율과 독서량이 다른 나라에 비하여 현저히 낮은 것은 이러한 경향을 실증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이 퇴영적이고 맹신적인 학력 우대 풍조는 하루속히 타파되어야할 우상임에도 불구하고 대입위주의 지식경쟁 교육정책은 아주 잘못된 것이다. 개인의 입신출세를 위해서는 입시경쟁능력이 중요하겠지만 사람의 지역단위공동체인 국가의 경쟁력을 위해서는 입시경쟁력이 아니라 사람의 양심이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다. 양심이 없는 사람의 능력은 오히려 국가에 해독이 되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공동체의 이익을 팔아넘길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과 도둑, 애국자와 반역자가 이 양심에서부터 비롯된다.

이렇게 본다면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는 능력보다는 양심이 우선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양심은 경쟁하지 않는다. 우열을 다투지 않는다. 차별하지 않고 함께 즐거운 것이다. 다만 욕심에 의하여 훼손되기 쉬울 뿐이다. 교육은 마땅히 이 순수한 양심을 배양하는 데에 바탕을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정부가 교육에서 학력경쟁을 부추기는 것은 천만 부당한 일이다. 교육법에도 교육의 목적은 ‘인격을 도야하고 민주시민으로서의 필요한 자질을 갖추게 함으로써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게 하는 데에 있다’고 명시되어있지 않는가? 더구나 경쟁은 정부가 나서서 부추기지 않아도 인생은 태어나면서부터 어느 면에서든 스스로 경쟁을 하게 되어 있는 존재다. 그러므로 국가는 마땅히 자식을 돌보는 부모의 마음으로 경쟁이 지나치지 않도록 조절하고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에 대한 배려에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미래는 젊은이의 꿈과 창의력과 노력에 달려있다. 기성세대에 의하여 짜여진 틀에 맞춘 입신과 출세를 위한 살인적인 대입경쟁에로 젊은 학생들을 내모는 것은 엄청난 국력의 낭비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젊은 학생들을 불행으로 몰아넣는 것이다.

경쟁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나 사랑은 없다. 경쟁이란 승리를 위하여 서로 빼앗고 빼앗기는 관계이다. 이 빼앗고 빼앗기는 대상은 항상 뒤바뀌는 것이다. 그러므로 경쟁은 항상 불안하고 괴로운 것이다. 사람의 심성을 모질고 냉정하게 만드는 것이다.

더구나 공부라는 것은 새로운 지식에 대한 호기심에서 스스로가 즐거워서 일생을 통하여 해야 하는 것이다. 점수를 따기 위하여 단시간에 경쟁적으로 하는 입시공부는 괴로운 것이다. 성적을 비관한 나머지 자살하는 학생이 생기는 정도로 청소년을 내모는 우리사회가 과연 정상적인 사회인가? 이렇게 하여서는 우리의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다. 사회의 분위기에 따라 맞추어 살아 나아가게 마련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사회의 이 경쟁의 분위기를 한걸음씩만 낮추자. 있는 사람만이 행복한 것은 아니다. 없는 사람이 무시됨으로써 더 많이 갖기 위한 경쟁과 갈등의 세상이 아니라, 있는 사람은 없는 사람을 사랑으로 이끌고, 없는 사람은 있는 사람을 존경하여 따르며, 차별하지 않고 함께 어울려 서로 돕고 서로 나누며 싸우지 않고 화목하게 사는 세상, 서로 빼앗고 빼앗기는 동물의 세상이 아닌 사람 사는 세상을 만드는 길로 나아가자. 교육이란 사람마다 타고난 각자의 소질과 능력을 키워나가야 하는 것이기도 하겠지만, 그에 앞서서 마땅히 인격을 도야하고 바람직한 가치관을 갖는 선량한 사람을 만들어 내는 데에 그 근본을 두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좌우의 이념이 아닌 우리배달민족의 홍익인간의 이념이 아니겠는가. 인간 사회는 결국은 한 가족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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