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유가족들이 바라는 것, “진상규명·안전사회 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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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유가족들이 바라는 것, “진상규명·안전사회 건설”
  • 최선경 논설위원
  • 승인 2019.10.25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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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도청 내포신도시로 이사 온 준영엄마 임영애 씨
선경C가 만난사람-25

스스럼없이 ‘엄마’라고 불러준 홍성여고 학생들에게 고마움
노란리본은 대한민국 안전의 리본 “잊지 말고 기억해주길”


세월호 참사로 아들을 잃은 준영아빠(오홍진·58), 준영엄마(임영애·50)를 만난 건 서초동 검찰개혁 촉구를 외치는 촛불문화제에서였다. 부부는 여전히 아스팔트 위에 있었다. 세월호가 침몰한 지 벌써 2000일을 훌쩍 넘겼지만 유가족들은 지금도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위해, 그리고 더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한 연대의 힘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 함께 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이곳 내포신도시로 이사를 왔다는 준영이 부모를 만나기 위해 인터뷰 요청을 했더니 흔쾌히 집으로 초대해줬다. 준영엄마를 만난 건 늦은 오후, 준영이 집은 곳곳에 준영이 물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준영이가 지금 당장 입고 뛰어도 될 옷가지들, 책상, 컴퓨터, 모든 것이 그대로지만 안타깝게도 준영이만 없다. 홍성으로 이사 온 이유를 물었다.

“지난해 4월 홍성여고 아이들이 ‘추모와 기억’ 행사를 열고 우릴 초대했는데 그날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엄마’라고 불러줬어요. 잊지 않고 행동해줘서 너무 고마웠고, 큰 위로가 됐어요. 준영이 납골당이 있는 안산이나 팽목항 중간 지역이기도 했고, 지금까지도 집회를 열고 기억해주는 홍성문화연대를 비롯한 주민들에게 감동을 받아 아무런 연고도 없는 홍성에 둥지를 틀었어요.”

준영엄마 영애 씨는 교복을 입은 준영이 모습, 차가운 바다에서 올라왔을 때의 준영이 모습, 군대에 간 준영이를 상상해 수십 개의 클레이 인형을 만들어 거실 한쪽을 꾸몄다. 누군가는 지금도 줄기차게 그 일을 이쯤에서 덮자고, 이제는 잊자고, 그만하자고 말한다. 준영엄마는 싸움을 멈출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당시 저는 집에 있으면 죽을 것 같아서 살려고 세상 밖으로 나왔어요. 숨을 쉬려고요. 너무 억울해서, 너무 가슴이 아파서 미칠 것 같았어요. 왜 구하지 않았을까요? 유가족협의회 엄마들은 주로 살림만 했던 분들이세요. 저도 이번 일을 겪지 못했다면 그냥 그렇게 가족의 안위나 걱정하며 살았겠죠. 그러나 밀양 할머니들, 광주의 어머니들을 만나 연대를 해가면서 더 많이 배우고 희망을 봤습니다. 우리 부모들이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반드시 진실 규명이 될 거라 확신해요. 하나라도 더 알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불러주는 곳 어디든 열심히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준영이는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 지 8일 만인 지난 2014년 4월 23일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준영이의 생일이었다. 준영이를 제왕절개로 낳은 시간이 오전 11시, 바로 그 시각 준영이의 주검을 눈앞에서 확인했다. 그렇게 준영이는 세월호 304명의 희생자 중 149번째로 돌아왔다.

“그날 이후 준영이 생일 때만 되면 온몸이 아프고 허리가 끊어질 듯한 고통이 찾아와요. 아마도 제 마음의 고통이 너무 클까봐 그 고통을 잊으라고 우리 아들이 육체적 고통을 준 것 같아요. 몸이 아프면 마음이라도 덜 아프라고 말이죠.”

인터뷰 내내 우리는 서로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행여 눈이라도 마주치면 불쑥 눈물이 흘러버릴 것 같았기 때문이다. 준영이 또래 아들을 군대에 보낸 나도, 준영엄마도 모두 같은 심정이리라.

“2014년 대통령을 만나겠다고 청와대에 가려는데 그때 전경들이랑 많이 싸웠죠. 제가 가슴에 ‘오준영’ 명찰을 달고 갔는데 어떤 전경이 제 옷을 잡으면서 ‘어머니, 저도 준영이에요’ 하는 거에요. 울먹이면서 저도 스무살인데 이러시면 다치신다고, 우리도 시켜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거니까 물러나시라고 간곡히 말하는 겁니다.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것처럼 울먹울먹하면서 ‘다쳐요, 다쳐요’ 하는데 그 눈망울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걔네 엄마는 TV에서 세월호 집회를 보면서 자기 아들 걱정에 얼마나 힘들까? 아들을 하늘에 보낸 오준영 엄마가 청와대로 가겠다며 김준영의 멱살을 잡았을 때 그 엄마가 생각나 정말 미치겠더라구요.”

세월호 엄마가 된 이후 사람을 만나는 것이 무척 힘들었다는 준영엄마. 홍성에 자리를 잡게 되면서 훨씬 여유롭고 안정을 찾아가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국민들이 세월호 희생자들을 잊지 말고 기억해주길 바랍니다. 그리고 필요할 때 우리와 함께 행동해줬으면 해요. 우리가 나눠주고 있는 세월호 리본은 이제 더 이상 세월호만의 리본이 아니에요. 대한민국 안전의 리본이죠. 앞으로 다시는 세월호와 같은 참사가 벌어져서는 안 되며, 더 안전한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작은 힘이라도 보탤 생각입니다.”

세월호 참사 2000일이 지났다. 세월호 유족들이 바라는 것은 우리 아이들이, 우리 가족이 왜 그렇게 희생됐는지, 누가 그렇게 죽음으로 내몰았는지 그 이유를 알고 싶다는 것뿐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그저 잊지 말자, 그리고 기억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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