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서 인생 2막… ‘향기로운 할아버지’로 늙어가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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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서 인생 2막… ‘향기로운 할아버지’로 늙어가고 싶어
  • 최선경 논설위원
  • 승인 2019.11.01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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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그맨 1세대에서 시인·화가로 사는 손철 씨
선경C가 만난사람-26

한글을 형상화한 작품 전시회 ‘세월 멈추기’ 개최
행복이란 마음먹기에 달려 있어 “서두르지 마라”


TBC ‘살짝이 웃어예’, ‘좋았군 좋았어’, ‘웃으면 복이 와요’ 외 다수의 방송 프로그램에서 맹활약을 펼치며 연예계에 화려한 명성을 떨쳤던 개그맨 손철 씨는 현재 청양 칠갑산 자락에 둥지를 틀고 시인이자 화가로 예술인의 길을 걷고 있다. 올해 홍성국제단편영화제 홍보대사 겸 자문위원장을 맡기도 한 그를 청양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고향인 이곳에 내려와 산 지 30여 년이다. 어렸을 적 언젠가 햇살이 환하게 비치는 이곳에 왔다가 홀딱 반해 나중에 나이를 먹으면 여기에다 꼭 집을 짓고 살아야지 결심했는데 그 소원을 이룬 셈이다.”

작업실은 그가 졸업한 초등학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해 있다. 그 이름하여 ‘해랑 달’. 무려 3000평에 다다르는 널따란 정원과 작업 공간에는 풍산개, 진돗개를 비롯해 닭, 염소, 토끼 등 동물들이 노는데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동화 속에 등장하는 숲속 작은 동물원에 온 것 같다. 그의 낭만적이고도 정겨운 예술 작품들은 아마도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영향을 받았으리라.

“자연에서 영감을 많이 얻는다. 숲속엔 나무랑 새랑, 아침 이슬이랑 풀이랑 대화가 있다. 낙엽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시로 쓴 적이 있다. 제목은 ‘낙엽’인데 ‘아내는 낙엽을 쓸라 하고 애인은 낙엽을 걷자 하네’. 또 다른 시 ‘구멍’을 소개하자면, ‘궁금해서 들여다보고 싶다’. 어떤가? 재미있나? 모두 일상에서 느끼는 것들을 시로 옮겼다.”

‘꿈과 이야기가 있는 색채의 마술사’로 불린다는 예술인 손철. 그의 화려하고도 절제된 그림은 보는 이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는다. 해마다 ‘세월 멈추기’라는 주제로 ‘한글’을 형상화한 작품들을 전시해 왔는데 벌써 30여 년이 넘었다. 내년엔 중국, 멕시코, 미국 등 해외 전시도 계획 중이다. ‘정, 사랑, 인연, 나눔’ 등 한글을 가지고 작품화하는데 왜 하필 한글일까?

“시인으로 등단하고 시집도 많이 낸 예술인으로서 한글을 많이 아끼는 편이다. 한글은 과학적이며 자연 친화적이다. 무엇보다 우리의 삶과 밀접한 언어이다. 예를 들어 ‘사람’이란 단어를 아래로 내려쓰면 ‘삶’이 된다. ‘사람은 곧 삶’이란 철학이 탄생한다.”

손철 씨는 개그맨 1세대이다. 당시 전유성, 임성훈, 최미나 같은 사람들과 활동했으며 서영춘, 구봉서, 배삼룡 씨의 전성기였다. 뭔가 신선한 것을 시도해 보자고 해서 ‘살짜기 옵서예’를 만들었고 당시 반향이 매우 컸단다. 그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다고 털어놓는다.

“사실 난 웃기는 개그맨이 못 됐다. 너무 점잖게 생긴 외모 덕분에 사또, 이방, 사장님 같은 역할만 했다. 차라리 배우를 하지 그랬느냐는 핀잔을 받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웃기지 못했던 개그맨이 시인으로, 화가로 활약하니 오히려 더 좋아해 주는 것 같다.”

막상 귀촌을 하고 시골에서 살아보니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었단다. 시골 사람들이 소박하고 정겹기는 하지만 생각의 차이가 많아 답답할 때도 있었고, 때론 갈등도 겪었다. 성공적인 귀촌 생활을 위해선 남을 배려하는 넉넉함이 두루 필요하다고 조언한다. 그가 생각하는 행복은 무엇일까?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 ‘일체유심조’라 하지 않았는가? 행복과 불행은 마음먹은 대로 달려 있다. 젊은이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너무 서두르지 말았으면 좋겠다. 정상에 급히 올라가면 빨리 내려오는 길밖에 없다. 사는 맛이 없다. 개울에 발도 담그고, 그늘 아래서 차도 한  잔 하고, 정겨운 사람들과 대화도 나누면서 천천히 오르다 보면 등산의 기쁨을 오롯이 만끽할 수 있다. 그리고 정상에 올라 완전히 어둡기 전에, 더 험하기 전에 내려오는 것, 그것이 인생이며 멋지게 사는 법이다.”

편안하게 작품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내조해 주는 아내가 정말 고맙고 소중하다고 속내를 내비치는 손철 씨. 앞으로의 꿈이 무엇이냐 물으니 주위 사람들에게 ‘향기로운 할아버지’로 늙어가는 것이란다.

먹고 살기 힘들었던 그 시절, 국민의 웃음을 책임진 대한민국 1세대 개그맨 손철. 누군가의 기억 속엔 ‘개그맨 손철’로 머물지 모르겠지만 이제 우리는 그를 시 쓰고 그림 그리는 예술인 손철로 기억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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