융합과 창조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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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과 창조적 상상력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2.02.16 10:33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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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융합’이라는 글자는 요즘 우리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는 단어이다. 안철수 교수도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다. 그가 의학, IT, 경영학 등을 공부했으니 직함이 그의 경력에 걸맞아 보인다. 그의 성공에서 볼 수 있듯이 ‘우물을 파도 한 우물을 파라’, ‘두 마리 토끼를 쫓다가 한 마리도 잡지 못 한다’라는 격언은 우리시대에 유효하지 않아 보인다. 사회에 진출하는 젊은이들도 여러 분야를 두루 ‘통섭(統攝)’해야 성공할 것 같다.

융합의 사전적 정의는 ‘다른 종류의 것이 녹아 서로 구별 없게 하나로 합하여지거나 그렇게 만들어 지는 것’이다. 20세기만 하더라도 학문 분야들이 세분화되었지만 21세기에는 학문들이 새롭게 융합되어 태어나고 있다. 학문의 경계를 뛰어넘어 융합되는 분야들이 생겨나는 것은 산업사회적 구조에서는 해결할 수 없는 복잡한 문제들이 지식정보사회에서 발생하고 컴퓨터가 눈부시게 발전하기 때문이다. 특히 클라우드 컴퓨팅은 다양한 정보를 가상의 구름 속에 올려놓고 상상력을 통해 하나하나 뽑아 쓸 수 있게 해준다. 지식은 창고에서 꺼내 융합하여 쓰는 역사적 자료물이 되었다.

이십년 이전만하더라도 조선왕조실록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어느 왕이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보기 위해 한자를 공부하고 카드목록을 만들어 놓아야 했지만 이제는 컴퓨터에서 몇 초 안에 해결한다. 미·적분으로 댐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계산했지만 3D입체영상으로 미리 댐을 만들어 보고, 치과에서는 임플란트를 하기 전에 입체영상으로 치아를 심어 보기도 한다. 새로운 공부방식이 요청된다. 창조적 상상력을 통한 융합이다. 이질적인 두 물질이 섞여 하나의 새 물질로 되기 위해서는 창조적 상상력이 그 밑면에 깔려있어야 한다.

단순히 두 물질이 물리적으로 섞이는 것은 합병일 뿐이다. 19세기 초 영국 낭만주의 시인이었던 코울리지는 ‘상상력’(The Imagination)이라는 글에서 상상력은 ‘고정되고 죽은 것에 생명력(vital)이 넘쳐나게 하고’, 공상(fancy)은 ‘경험적 현상(empirical phenomenon)들을 섞어놓거나 수정하는 일’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이미 죽은 듯이 보이는 것들에 숨결을 불어넣어 융합하는 것이 상상력이고 기계적으로 섞어놓는 것은 공상이라는 견해다. 창조적 상상력만이 새로움을 창출하는 리비도(libido)라 할 수 있다.

융합은 이질적인(heterogeneous) 것들이 결합되어 새로운 것으로 전환될 때 가치가 크다. 진화학과 경제학이 만나 ‘진화 경제학’이 되기도 하고, 야구와 경영학이, 손자병법과 경영학이 만나 베스트셀러로 탄생되기도 한다. 최근에는 금강경이 주식투자와 만나 대박을 터뜨리기도 한다. IT와 디자인 분야와의 결합은 이제 스티브 잡스를 통해 상식처럼 되어버렸다.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된다는 자연과학적 사고방식과 얼음이 녹으면 꽃이 피고 새가 지저귄다는 봄을 연상하는 인문학적 사고의 만남은 ‘멋진 신세계’로의 여행을 가능하게 해줄 것이다. 어떤 분야들이 어떻게 융합되느냐가 중요하다.

한 우물만 파면 실패할 것 같지만 그래도 한 우물을 먼저 깊게 파야 성공한다. 여기저기 깊이 없이 기웃거리다 보면 하나도 제대로 알지 못하여 전문가가 되기 어렵다. 열 가지 재주 가진 사람이 팔도를 빌어먹는다는 옛말은 그래서 지금도 유효하다. 불확실한 미래와 평균수명의 연장 때문에 우리시대는 또 다른 우물파기가 요구된다. 우물들끼리 네트워크를 형성해야 한다. 다양한 방면에 관심을 표명하며 그 분야에 능숙한 인간형을 우리는 ‘르네상스형 인간’이라고 부른다. 역사 속에서 이런 인물들을 만날 수 있다. 음악, 미술, 건축, 군사공학, 도시계획, 비행기계의 디자인, 해부 등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레오나르도 다빈치, 건축, 미술, 조각, 시에 탁월했던 미켈란젤로, 정치가, 과학자, 악기발명가, 외교가, 저술가였던 벤저민 프랭클린, 맥나라마(최연소 하버드대 경영대학원 교수, 44세에 포드자동차 회사 사장, 장관, 예술에 박식하고 베트남 전쟁에 깊이 관여한 사람. -다큐멘타리 영화 ‘전쟁의 안개’중에서-), 정약용, 홍대용 같은 인물이 여기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은 다방면에 일가견을 이룬 인물들이다.

‘르네상스형 인간’의 저자인 마거릿 로벤스타인은 한가지에만 몰두하는 모짜르트보다는 벤자민 플랭크린 같은 팔방미인이 현대에는 성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는 인간형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다양한 독서를 통해 창조적 상상력을 키워야 할 것이고 학교도 그렇게 교육해야 한다. 그러나 요즘 대학들이 학생유치를 위해 학과의 이름을 섣불리 바꾸는 경향이 있는 듯싶다. 어느 분야의 학문을 어떻게 융합하여 어떻게 시너지 효과를 낼 것인가 하는 구체적 매뉴얼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이름부터 바꾸어 버린다면 맛없는 ‘섞어찌개’를 만드는 선무당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조만간 그 이름은 어느 정당의 이름처럼 역사 속에 사라질 것이다. 에드워드 윌슨 교수가 강조하는 학문 간의 ‘통섭’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그 분야의 우성인자를 끄집어내고 어떻게 짝짓기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깊은 성찰과 소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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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ppyman 2012-03-05 23:25:30
창조적 상상력을 통한 융합...
융합은 이질적인(heterogeneous) 것들이 결합되어 새로운 것으로 전환될 때 가치가 크다.
잘 읽고 갑니다.

홍민정 2012-03-05 11:52:31
사람과 사람의 융합으로 배웠던 기억이 있었는데
과학의 융합...모든것들의 융합
아이 공부방향도 힘들고...모든것들이 편안하게는 하지 않습니다.
아, 독서의 중요성이 더욱더 강조되어가는데...독서를 하기에는 아이들한테
유혹이 너무 많습니다.
융합과창조력...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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