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능의 어깨에 올라탄 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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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능의 어깨에 올라탄 자들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0.05.07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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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욕을 억제하지 못한 정치인들(오거돈, 안희정) ‘n번방 범죄자’들, 전 유도 국가대표 왕기춘 등이 패가망신하고 있다. 이것은 지금만의 일이 아니고 인류가 사회를 형성하고 살아온 이후 모든 문명권에서 반복되는 문제다. 성적 본능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프로이트는 인간 욕망(Desire)의 근원 속에 리비도(Libido)라는 성본능(instinct)을 상정하고 인간이 살아가는 근본 에너지로 이해했다. 그는 이것을 성욕으로만 관련지어 설명하려는 탓에 칼 융(Carl Jung)을 비롯한 주변사람들이 그의 곁을 떠나고 말았다. 그러나 그는 죽을 때까지 욕망의 실체를 파헤치며 정신분석학을 발전시켜 나갔다. 

인간의 욕망에 자리 잡고 있는 성본능이 이성이라는 초자아(superego)의 감시아래 통제되지 못하고 아무 때나 불쑥불쑥 튀어나오면 그가 속한 어느 공동체라도 이를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문명은 금지와 제한을 필연적으로 동반한다. ‘사회화(socialization)’를 형성하기 전 개개인의 행복은 본능을 만족시키는데 있다. 프로이트 정신분석학의 출발선상에는 그 본능의 구현자인 어린아이가 있다.

어린아이는 구강기, 항문기, 남근기 등을 거치면서 주체적 이성을 가진 어른으로 성장한다.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다. 어머니와의 이자(二者) 관계에서, 행복했던 아이는 아버지라는 제 삼자(三者)를 만나게 되고 어머니와의 관계를 청산하라는 요구를 받는다. 아버지 말을 거역할 때는 거세(castration)라는 위협이 도사리고 있음도 감지한다. 이 요구를 받아들이며 ‘아버지라는 법’(law of the father)을 따라 사회화의 과정을 거친다. 아버지의 법은 실제의 아버지라기보다는 사회의 관습, 법률, 도덕과 같은 그 시대의 질서 같은 세계관이다. 어머니의 세계를 떠나 아버지의 세계로 이행한다하더라도 억압당했던 근원적 본능은 만족스러웠던 어머니의 세계로 회귀(回歸)하고 싶어 한다. 

개인의 본능추구와 공동체적 인륜의 골이 깊을수록 인간은 정신적 질환을 앓을 가능성이 높다. 인간은 억압되어 있는 이 본능을 해소하고 싶어한다. 이것을 프로이트는 ‘승화’(sublimation)라는 개념으로 업그레이드 했다. 억압된 에너지를 예술, 스포츠 등으로 전환하는 것이 그 예라 할 수있다. 본능이 초자아의 검열을 받지 않고 나온 그 ‘날 것’(raw)의 모습을 백주대낮에 바라보기란 역겹다. 손버릇 나쁜 사람들의 습관, 거친 언행으로 타자를 불쾌하게 하는 추한모습 등은 공동체의 품격을 떨어뜨린다. 날것의 본능을 허용해서는 그 사회의 공공질서가 유지될 수 없다. 공동체의 윤리, 도덕이 필요한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사람들은 퇴행적 모습을 보이며 본능의 세계로 돌아가려다 파멸한다. 

개인의 행복추구와 공동체적 인륜을 조화롭게 유지하며 살아간다는 것이 지난(至難)한 일지만 그래도 ‘공동선’(公同善)을 추구해야 한다. 헤겔도 이러한 본능적 행복추구와 공동체적 인륜사이의 조화를 강조했다. 헤겔은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이며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인 것이라고 말한다.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가정에서 이미 존재하는 이 세상의 질서, 라캉(Lacan)이 말하는 ‘상징질서’를 받아들이게 하고 본능을 승화시키는 방법을 가르쳐야 한다. 이것이 잘 안될 때 본능에 올라탄 ‘호래자식’들의 출현은 반복된다.

 

김상구<청운대학교 영어과 교수·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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