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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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에는 낙화암 -43
  • 한지윤
  • 승인 2020.05.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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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왕은 늦도록 자리에 눕지 않고, 안석(案席)에 기대 눈을 감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했다.총명한 왕비 보과부인에게 이야기하면 좋은 의견이 있을 것 같지만, 이 일만은 왕비와 의논할 일이 못되었다.
왕비의 친정 나라를 쳐야 되겠느냐, 안 쳐야 되겠느냐 하는 일을 어떻게 왕비에게 물을 수 있느냐.
왕비의 처지로선 아버지의 나라를 치는 일에 나서십시오. 하기도 싫을 게고, 남편의 나라인 백제에게 도움이 될 일을 하지 마십시오. 할 수도 없을 게다.
아버지 나라도 소중하고, 남편의 나라도 소중한 것임을 모를 리 없는 총명한 왕비 보과부인이 아니냐.
그 왕비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으냐고 물을 수 있으랴.
“세상에 이렇게 난처한 일이 어디 또 있겠는가?”
밤은 깊어 가건만 왕은 앉은 채 자리에 누울 생각을 아니하고 눈을 감고 있었다.
생각을 하고 생각을 해도 어떻게 해야 좋겠다는 결정이 나서질 않았다.
“대왕마마!”
임금이 자리에 들지 않았으므로, 역시 자리에 눕지 못하고 있던 왕비 보과부인이 나직히 왕을 불렀다.

왕은 감았던 눈을 뜨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성체(聖體)에 해롭사옵니다. 성려(聖慮) 놓으시고 자리에 드시옵소서.”
“과인은 생각하는 바 있어 앉아 있으니 비는 먼저 자리에 드오.”
“대왕마마 눕지 않으시는 앞에서 뉘 감히 자리에 누우오리까?”
“과인은 생각하는 일이 있어 눕지 않거늘, 비까지 않아 있을 까닭이야 있소. 어렵게 생각지 말고 자리에 드오. 과인도 생각이 끝나는 대로 자리에 들겠소.”
“대왕마마 성려하오심 어찌 모르오리이까.”
“비가 과인의 근심을 안다고?”
“대왕마마의 성려하오심 모르고 어찌 대왕마마를 모시고 백제의 어머니가 되겠사오리이까?”
“그러면 비는?”
“오늘 고구려에서 사신이 왔사옵지요?”
“알았구려.”
“군사를 보내 힘을 합치자 하였삽지요?”
고구려에서 사신이 온 것 쯤은 소문으로 왕비가 알 수 있는 일이겠으나 사신이 온 까닭을 구중궁궐(九重宮闕) 깊은 곳에 있는 왕비가 어떻게 알았으랴 싶어 왕은 눈을 크게 떴다.
“아니 비가 어떻게 그것을……”
의아한 마음으로 묻지 않을 수 없는 왕이었다.
왕비 모르게 이 일을 해결하려던 왕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왕비에게 알릴 수도 없고, 의논할 수도 없는 일어있기에 홀로 걱정만 하고 있던 왕이었다.
그런데 왕비가 먼저 고구려에서 사신이 온 까닭을 알고 있다니 신기하고도 의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물어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비록 어리석사오나, 백제 백성의 어머니로서의 몸이옵니다. 오랜 동안 왕래가 없던 고구려에서 사신이 왔사오니, 어찌 짐작이 가지 않겠사오리까. 그만한 일이 아니고서야 고구려에서 사신을 보냈을 리가 있겠사오리까. 짐작으로 안 바이옵니다.”
왕은 또 한번 왕비의 뛰어난 총기에 감탄했다.
왕은 그대로 있을 수가 없게 되었다.

왕비에게 알리기 어려운 일이기에 혼자 근심만 하던 왕이었다. 사실을 알고 난 왕비의 처지가, 왕보다 더 난처하게 될 것을 짐작하기에 왕비의 처지가 왕보다 더 난처하게 될 것을 짐작하기에, 왕비의 총명한 지혜를 믿으면서도 말하지 못했던 왕이었다.
그런데, 왕비 보과부인은 왕이 말하기 전 이미 알고 있었다.
총명한 머리로 짐작을 하고 있어 숨겨서 될 일도 아니고, 숨길 수도 없게 되었다. 사실대로 이야길 하고 왕비의 총명한 지혜를 얻는 편이 나을 것이다.
왕은 조용히 고구려 사신이 찾아온 까닭을 이야기했다.
“신하들은 고구려의 청을 듣는 것이 옳다고들 대왕마마께 아뢰었지요?”
“그것은 또 어떻게?”
“고구려에서 사신이 온 까닭을 짐작하면서 우리 백제 신하들의 마음을 어찌 짐작치 못하겠사오리까.”
이 말 또한 왕비 보과부인의 거짓말이었다.
대방국의 밀사가 다녀간 뒤, 고구려 사신이 올 것을 알고, 고구려 사신이 왔을 때, 백제 신하들이 어떤 태도로 나오는가를 알기 위해, 정청지기를 매수해서, 정보를 듣고 있었던 것이다.
몸과 정은 책계왕에게, 그리고 백제 사람으로 살고 있지만, 몸속에 흐르고 있는 한족의 피만은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이것을 모르는 책계왕은 왕비 보과부인의 총명만을 감탄할 뿐이었다.
“비의 짐작에 틀림이 없소.”
“그러하온데 대왕마마께오선 어찌 결정을 내리지 않으셨사옵니까?”
“모든 것을 다 짐작해 내는 비로서, 어이 과인의 마음만은 짐작하는 총명이 없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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