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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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에는 낙화암 -44
  • 한지윤
  • 승인 2020.06.0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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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을 다 짐작해 내는 비로서, 어이 과인의 마음만은 짐작하는 총명이 없소?”
“대왕마마 성지 아옵기 안타까와 올리는 말씀이옵니다.”
“과인의 뜻 짐작하고 안타까이 여기다니 무슨 뜻이오?”
“공과 사는 엄연히 다른 것이옵니다.”
“그야……”
“그러하온데 대전께오선 공과 사를 혼동하시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계시온 것이 아니오니이까.”
“그렇소. 비의 말 그대로요.”
“커가는 백제의 대왕으로서, 어이 공과 사를 혼동하시와, 나라의 큰 일을 결단치 못하시옵고 성려하오십니까. 사정은 사정, 국사는 국사이옵니다. 결단을 내리시옵고 성려 놓으시옵소서.”
“어떻게 결단을 내리란 말이오?”
“어이 결단을 내리지 못하시옵니까?”
“고구려가 힘을 합해 치자는 곳이 낙랑군 변방 여러 나라요. 그 가운데는 비의 아버님이 다스리는 대방국도 있소. 과인이 어떻게 비의 친정 나라 치는 것을 고구려와 함께 할 수가 있겠소.”
“신하들은 하나같이 고구려와 힘을 합하는 것이 옳다하지 않사옵니까?”
“그는 과인의 처지를 생각지 않고, 백제만을 생각하고 하는 말이 아니오?”
“그들 신하들의 말을 어찌 그르다 하시옵니까. 대방국을 생각하오심은 대왕마마 한 분의 사정이올 뿐, 백제 전체의 국사는 아니옵니다.”
“그러면 비는 과인에게 고구려와 힘을 합해, 비의 친정 나라를 치란 말이오?”
“백제로서 그렇게 해야 될 일이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백제 대왕마마로서의 마땅히 해야 될 일이 아니옵니까.”
“그렇지만 비의 친정 나라를 과인이 어떻게 칠 수가 있겠소.”
“대방국은 저의 친정 나라임에 틀림없사옵니다. 그러나 대왕마마의 나라는 아니옵니다. 또한 저의 나라도 백제이옵니다. 대방국은 친정의 나라일 뿐, 저의 나라는 아니옵니다. 지금 저의 나라는 백제일 뿐, 나른 나라가 아니옵니다.”
“그런 줄이야 모르지 않지만……”
“거리낌없이 결단을 내리소서. 고구려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이 백제를 위하는 일이오면, 백제를 위해 고구려의 뜻을 받아들이소서.”
“……”

왕비 보과부인의 말이 너무도 당연하기에 왕은 더 할 말이 없었다.
왕비 보과부인의 말이 너무도 공사를 갈라놓는 말이기에 할 말이 없는 왕이었다.
왕은 다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왕비의 마음이 이럴진대, 왕비에겐 미안한 마음이 있더라도, 고구려와 힘을 합해 한반도에서 한족의 세력을 뽑아버리리라.
이윽고 왕은 눈을 떴다. 마음의 결정을 내린 것이다.
“비!”
“네.”
“서운히 생각지 마오. 백제를 크게 키우기 위한 일이니.”
“국사를 해결하옵시는 대왕마마의 크신 뜻, 서운한 마음 지니겠사오리까. 대왕의 나라 백제는 곧 저의 나라 백제가 아니옵니까.”
“고맙소, 비.”
왕은 진정 왕비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친정 나라 대방국보다 남편의 나라 백제를 더 아껴주는 왕비의 마음이 더 없이 고마웠다.
왕은 무거운 짐을 벗어 놓은 듯 홀가분한 마음이었다. 내일 고구려 사신을 불러 들여, 고구려 왕의 요청을 들어 군사를 일으키겠노라 선선히 대답해 보내리라 여기니 마음과 몸이 함께 가벼워졌다.

왕은 웃옷을 벗으면서 자리에 들려는 것이었다. 마음의 결정을 본 왕은 근심과 긴장이 풀려 온몸이 노곤해짐을 느꼈다.
“대왕마마.”
웃옷을 벗으려는 왕을 도우며 왕비는 나직이 왕을 불렀다.
목소리에 야무짐이 있었다.
임금을 자리에 눕히려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아님이 또렷했다.
“?”
왕은 벗으려던 옷을 잡은 채 왕비를 바라보았다. 의아한 눈길이었다.
“한 말씀 더 아뢰올 말씀이 있사온데……”
“말하오.”
“백제를 위해 고구려와 힘을 합하는 것은 옳고 마땅한 일이옵니다.”
“……”
순간 왕의 의아함은 커졌다.
“그러나 한 가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있사옵니다.”
“무엇이오?”
“고구려와 힘을 합해서 싸우고 난 뒤의 일이옵니다.”
“뒤에 오는 일이라면, 혹시나 싸움에 지게 되면 하는 말이오?”
“아니옵니다. 고구려의 강한 힘과 커가고 강해가는 우리 백제의 힘을 합치오면 싸움에 질리는 만부하옵니다.”
“그런데?”
“승리를 거둔 뒤의 고구려의 태도이옵니다. 고구려는 거센 나라이옵니다. 싸움을 즐기는 나라이옵니다. 전에도 수없이 우리 백제를 침공해 왔던 나라이옵고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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