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축제 포화시대,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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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축제 포화시대, 우리는 무엇을 남기고 있는가
  • <공동취재단>
  • 승인 2025.12.25 07:19
  • 호수 922호 (2025년 12월 25일)
  • 13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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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축제 포화시대, 지역성을 담은 축제로 변해야 한다⑯

<공동취재단>은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2025 공동주제심층보도지원사업’을 지원받아 한 해 동안 국내 지역축제와 함께 독일·스페인 등 해외 성공 축제를 취재했다. 이번 공동심층보도는 축제의 규모나 흥행 여부를 넘어, 왜 어떤 축제는 지속되고 어떤 축제는 소모되는지를 구조적으로 살펴보는 데 초점을 맞췄다.
<공동취재단>은 연재를 마무리하며, 지역축제를 일회성 행사가 아닌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는 정책으로 전환해야 할 필요성과 그 방향을 짚고자 한다. <편집자주>
 

과연 어떤 축제가 남고 어떤 축제들이 사라지는가
주민·경험·장소가 만든 축제의 결정적 차이를 묻다
국내·외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구조의 문제와 해법
행사가 아닌 ‘정책’으로 지역축제를 다시 묻는 이유

 

<공동취재단>이 독일 뉘른베르크 구시가지축제협회장를 만나 축제에 대한 인터뷰를 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올해 전국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축제는 1214개에 달한다. 등록되지 않은 소규모 행사까지 포함하면 그 수는 훨씬 많다. 그러나 축제의 양적 증가가 곧 질적 성숙으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유사한 프로그램 구성, 획일화된 콘텐츠, 바가지요금 논란, 주민 동원식 운영, 외주 업체 의존, 예산 대비 낮은 성과는 해마다 반복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한계가 단순한 운영 미숙이 아니라, 축제를 바라보는 행정 구조 자체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개별 축제를 조금씩 개선하는 방식이 아니라, 축제 운영 시스템 전반을 다시 설계하는 정책적 전환이다.

왜 이 지역에서 축제가 열려야 하는가
많은 지역축제는 이름과 특산물만 다를 뿐, 프로그램 구성은 크게 다르지 않다. 농산물 판매 부스, 연예인 초청 공연, 시식 체험이 반복되는 축제는 어느 지역에서 열려도 무방하다. 지역 고유의 역사와 문화, 산업적 맥락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공동취재단>은 축제 기획의 출발점으로 ‘지역 정체성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제안한다. 축제의 기획 단계부터 지역의 역사·산업·공동체 자산을 구조적으로 정리하고, 상징과 브랜드, 프로그램이 이 자원들과 유기적으로 연결되도록 제도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미다.

■ 관객을 넘어 주민이 만드는 축제로
국내 다수의 지역축제에서 주민은 여전히 ‘참여 대상’이거나 ‘동원 대상’에 머문다. 그러나 해외 성공 축제의 현장은 다르다. 스페인 타라고나의 ‘산타 테클라’와 바르셀로나의 ‘라 메르세’ 축제에서는 시민들이 1년 내내 모여 인간탑(카스텔)을 연습하며 축제를 준비한다. 독일 뉘른베르크 ‘구시가지 축제’ 역시 상인과 예술가, 주민이 축제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직접 기획과 운영에 참여한다.
이들 지역에서 축제는 외부에서 주입된 이벤트가 아니라 일상의 일부다. 주민이 주체가 되지 않는 축제에서는 지역성 역시 온전히 구현되기 어렵다.

■ 사람들은 무엇을 경험하러 오는가
<공동취재단>이 2025년 한 해 동안 국내 지역축제를 취재하며 확인한 공통점은 분명했다. 지속 가능성이 있는 축제는 반드시 하나의 ‘핵심 체험’을 중심에 두고 있었다. 반면 공연 일정과 부스만 나열된 축제는 방문객의 체류 시간과 기억 모두에서 한계를 드러냈다.
‘한산모시문화제’는 전통 섬유를 전시하는 축제가 아니라, 모시풀 재배부터 태모시 짜기까지 전 과정을 직접 체험하는 데 초점을 둔다. 관람객은 손으로 만지고 시간을 들여야 완성되는 노동의 과정을 통해 한산이라는 지역의 역사와 삶을 몸으로 이해하게 된다.
‘대구치맥축제’는 특정 공연보다 도심에서 치킨과 맥주를 함께 소비하는 집단적 경험에 경쟁력이 있다. 무더운 여름밤, ‘대구의 여름’이라는 장면 자체가 축제의 기억으로 남는다.
‘장흥물축제’는 탐진강이라는 구체적 장소에서 물을 온몸으로 경험하는 축제로 자리 잡았다. 축제의 중심은 무대가 아니라 강이었고, 자연환경 자체가 콘텐츠가 됐다.
‘통영한산대첩축제’는 전투를 ‘보는’ 축제가 아니라, 바다와 항구라는 공간 속에서 역사적 서사에 ‘들어가는’ 경험을 제공한다. ‘남해독일마을맥주축제’ 역시 단순한 맥주 판매를 넘어, 독일식 일상과 공간을 체험하는 축제로 발전할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들 축제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축제를 대표하는 핵심 체험이 명확하고, 그 체험은 특정 장소와 분리될 수 없다. 공연과 이벤트는 어디까지나 핵심 체험을 보조하는 요소에 머문다. 공동취재단은 취재 과정에서 같은 질문을 반복해 던질 수밖에 없었다. 이 축제가 사라졌을 때, 이 지역에 무엇이 남을 것인가라는 질문이었다.
 

<공동취재단>은 10여 곳의 국내 지역축제 현장을 찾아, 축제가 지역에 남긴 흔적을 살폈다.

■ 지역축제, 구조 전환 없이는 지속 어려워
지역축제를 정책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기본적인 운영 기준부터 다시 세워야 한다. 인파 관리, 비상 동선 확보, 의료 인력 배치 등 안전 체계는 여전히 지자체별 판단에 맡겨져 있다. 
독일 옥토버페스트처럼 안전 기준을 법에 준하는 수준으로 관리하는 사례는 시사점이 크다. 문화체육관광부를 중심으로 ‘지역축제 안전 기준 국가 표준’을 마련하고, 이를 축제 인허가 요건으로 반영할 필요가 있다.
지역경제와의 연계 역시 구조적으로 재설계돼야 한다. 외주 업체 중심의 운영 구조에서는 예산의 상당 부분이 지역 밖으로 유출된다. 축제 용역의 지역 업체 참여 비율을 높이고, 식재료와 부스 운영권을 지역 상인과 농어민에게 우선 배정하는 제도적 기준이 요구된다.
상설 조직 구축도 필수 과제다. 담당 공무원이 수시로 교체되고 외주 업체에 의존하는 구조에서는 축제 노하우가 지역에 축적되기 어렵다. 
독일 뮌헨시처럼 전담 조직을 통해 축제를 연중 관리하고, 중장기 로드맵을 수립해야 한다. 정치적 변화와 무관하게 축제가 지속될 수 있도록 조례 등 제도적 안정장치도 필요하다.
기후 위기 시대에 환경·사회적 지속가능성 역시 핵심 기준이 되고 있다. 무더위와 폭우, 출하 시기 변화는 더 이상 예외가 아니다. 다회용기 사용, 폐기물 감축, 탄소 배출 관리와 함께 장애인·고령자·아동의 접근성을 보장하는 기준을 마련하고, 이를 충족하지 못한 축제에 대해서는 지원을 재검토하는 평가 체계가 요구된다.

■ 이벤트 반복을 넘어 정책 전환이 필요해
대한민국의 지역축제는 지금 근본적 전환의 기로에 서 있다. 더 많은 축제를 여는 것이 목표가 아니라, 지속 가능한 축제를 설계하는 것이 지역의 미래를 좌우한다. 해마다 비슷한 이벤트를 반복할 것인가, 아니면 다음 세대에 물려줄 문화유산을 만들어 갈 것인가는 정책 결정자와 지역 주민의 선택에 달려 있다.<끝>
 

<공동취재단>은 국내외 축제 현장은 물론 지역축제 전문가를 만나 심층 취재를 진행했다.
공동취재단.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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