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해 한용운 선사라 부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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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한용운 선사라 부르자”
  • 한기원 기자
  • 승인 2020.07.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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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해 스님·선생·선사’ 등으로 불리는 명칭‘선사’로 통일했다
이상선 전 군수, 생가지 기공식서 공식 명칭으로 명명 발표해
지난달 29일 입적 76주기, 묘 이장 생가지성역화 마무리 과제
만해 생가지(1).
만해 생가지(1).

우리민족의 역사와 정신의 주역으로 지금까지도 홍주인의 가슴엔 물론 우리 민족의 가슴에 살아있는 시인이자 승려이며 독립운동가로 우리의 뇌리에서 영원히 잊히지 않을 만해 한용운 선사. 

지금으로부터 141년 전인 1879년 8월 29일(고종 16년, 기묘 음력 7월 12일) 충청도 홍주군 결성면 성곡리 박철동에서 이양공 한명진의 19세손인 충훈부도사 응준(韓應俊)과 온양 방씨(方氏)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난 만해 한용운 선사가 지난 1944년 6월 29일 그토록 그리던 조국광복과 민족독립을 눈앞에 두고 입적했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지난달 29일로 입적 76주기를 맞은 우리 민족이 낳은 위대한 승려이자 저항시인이요, 독립투사인 만해 한용운 선사는 그동안 ‘만해 한용운 스님’이니, ‘만해 한용운 선생’ 또는 ‘만해 한용운 선사’등으로 불려왔다. 그런데 언제부터 우리에게는 ‘만해 한용운 선사’라고 공식적으로 불리기 시작했을까?

만해 생가지(2).
만해 생가지(2).

홍성군 결성면 만해로 318번길 83의 만해 한용운 선사의 생가지(1989. 12. 29. 충청남도기념물 제75호 지정)에 대한 성역화 사업을 위한 첫 삽을 떴던 이상선 전 홍성군수에게 그 사연을 들어봤다. 

이 군수에 따르면 “애초엔 생가지임을 알리는 나무 팻말만이 하나 외롭게 서있을 뿐 이었다”는 게 당시의 상황설명이다. 1990년 당시 홍성군의 최대 현안은 ‘홍성읍내 전역의 주차장 부족문제’와 ‘홍주초 한양병원~조양문~홍성역 구간의 좁은 도로 확장’문제와 함께 ‘충절의 고장’으로 불리는 대표적인 인물인 ‘만해 한용운 생가 복원’과 ‘백야 김좌진 장군 생가 복원’문제가 대두됐다. 이와 함께 ‘홍주의사총 성역화 사업’이 지역의 최대 현안이자 해결해야 할 과제로 떠올랐다고 소개했다.

당시 역대 홍성군수 중에서 처음으로 홍성출신인 이상선 군수가 홍성군 제31대 군수로 1991년 1월 14일 부임했다. 당시 천안출신인 한청수 충남도지사가 홍성발전의 중요성을 피력하면서 홍성출신인 이상선 충남도청 초대 공보관을 발탁해 보낸 배려였다고 한다. 한 지사의 응원으로 이상선 군수는 고향 군수로 부임하자마자 ‘홍성발전이 정말로 말이 아니라는 생각’에 ‘홍성의 변화와 발전을 위해 홍성의 대 변혁을 위한 기획’을 구상했다고 한다.

우선 물이 잘 흐르지 않아 썩는 냄새가 나는 홍성천의 시내(오관교~소방서)구간에 대해 부족한 홍성읍내 주차장 해결을 위해 ‘복개주차장공사’를 시작하고, 비포장 도로였던 광천통 도로포장, 생가지임을 알리는 나무 말뚝푯말만 서 있던 만해 한용운 선사 생가지와 백야 김좌진 장군 생가지에 ‘생가복원 등 성역화 사업’을 시작한 것이 홍성출신 군수로서의 첫 행보였다고 설명한다.

특히 만해 한용운 선사 생가지 복원공사는 1991년부터 전액 군비로 성역화를 위한 첫 삽을 뜨기 시작해 생가지 복원을 위한 기공식을 가졌다. 기공식에 광복회 회장과 조계종 총무원장등을 초청했다. 기공식에 참석한 이강훈 광복회장과 조계종 총무원장을 대신해 참석한 강석주 스님은 만해 선사와의 인연을 소개하며 “정말로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인사를 나누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전했다. 후일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법장 스님은 서산의 절에서 조직한  불교합창단을 이끌고 수덕사의 큰 스님들과 함께 기공식에 참석했다고 이상선 전 군수는 회고했다.

이 자리에서 이상선 군수는 ‘만해 한용운 스님, 만해 한용운 선사, 만해 한용운 선생’ 등으로 불리고 있는 명칭에 대해 이날 초청한 스님들과 참석자들에게 “지금까지 스님, 선생, 선사 등으로 부르던 명칭을 불교계의 의견과 고증에 입각해 이제부터 ‘만해 한용운 선사’로 통일해 부르자”고 제안해 참석자들이 만장일치 박수로 동의하면서 “생가지 복원 당시부터 ‘만해 한용운 선사’로 명칭을 통일해 명명하기로 결정했다”고 사연을 소개했다.

당시 기공식 행사에 참석했던 불교계 인사들을 비롯한 참석자들과 만해의 딸인 한영숙 등은 “서울 망우리공원묘지의 만해 한용운 선사의 묘도 고향으로 이전해야 한다는데 뜻을 같이하고 생가지 옆의 자리를 함께 둘러보면서 참 좋은 훌륭한 묘 자리라고 찬탄을 했던 기억인데, 아직도 이뤄지지 못하고 있어 아쉬움이 크다”며 “앞으로 만해 한용운 선사의 생가지 성역화사업이 마무리되는 과정에서는 꼭 실천해야 할 필수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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