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뀌니 아이가 바뀌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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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뀌니 아이가 바뀌네요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0.09.03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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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몸의 세포는 매일 100억 개가 죽고 태어난다. 장 내벽 점액은 5일마다, 피부는 30일마다, 간은 6주마다 새로운 세포로 거듭난다. 이렇게 우리 몸이 날마다 새롭게 변화하는 것처럼, 우리의 마음도 자신의 선택과 노력에 의해 변화할 수 있다.

J는 40대 중년 여성이다. 10여년 동안 남편과 함께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늦은 시간까지 손님들에게 서빙하다 보니 몸은 쉴 틈이 없다. 겨우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온 몸이 욱신거리지만 아들을 위해 밥상을 차린다. 하루 종일 게임을 하거나 웹툰을 보는 아들은 몇 번을 불러야 방문을 열고 나온다. 아들을 보면 자기도 모르게 화가 나서 큰 소리를 내고 만다. 그러면 아들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방문을 쾅~ 닫고 들어가 버린다. 서글픔이 폭풍처럼 밀려온다. 지금까지 힘들어도 버텨냈던 이유는, 아들이 돈이 필요할 때 지원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춘 능력 있는 부모 역할을 다하기 위해서였다. J는 어린 시절, 돈 때문에 잦은 다툼을 벌이는 부모를 보면서 어떤 요구도 하지 않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동생들을 위해 밥상을 차리고, 빨래와 청소 등을 도맡았다. 부모님께 부담 드리지 않기 위해 대학 진학도 포기했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모아둔 목돈도 부모님의 집을 짓는데 아낌없이 내놓았다.

부모화(Parentification)는 정신과 의사이자 맥락적 가족치료자인 이반 보스조르메니 나쥐(Ivan Boszormenyi-Nagy)에 의해 제시된 개념이다. 성장기에 있는 자녀들이 부모 역할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 성인 역할이나 과도한 책임을 떠맡게 되는 상황을 의미한다. 부모화 된 자녀는 부모의 정서와 융합돼 부모의 불안과 스트레스를 내면화하고, 가족들의 불안감을 낮추는 기능을 하지만 과도한 책임감으로 타인에게 의지하는 것을 어려워하고,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킬 때마다 죄의식을 느끼기도 한다. 

J는 어린 시절부터 큰딸로서 한 쪽 다리를 절뚝거리시는 아버지와 항상 아프신 어머니의 신음소리를 들으면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했다. 결혼 후에는 아들에게 잘 먹이고, 잘 입히면, 동생들처럼 잘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들은 성장할수록 엄마인 J를 적을 대하듯 차갑게 대했고, 고슴도치 털처럼 신경질적으로 반응했다. 혼란스러웠다. 중년 여성이 될 때까지 자신을 위해서 돈을 써본 적이 거의 없고, 시간을 내어 여행을 가본 적도 없다. 주변 사람들과도 단절한 채 억척같이 일만 했다. 상담을 하면서 J는 아들을 위해서 자신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성장할 때의 자신과 청소년기 아들을 비교하면서 비난하고 공격해서는 안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아들이 현재 원하는 것은 돈보다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엄마를 더 기대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어색했지만 자신의 말과 표정, 태도를 바꾸는 연습을 시작했다. 그 예로 집을 PC방으로 생각하고 아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했다. 쟁반에 밥과 반찬을 차린 후 아들 방으로 갖고 들어가서 게임하고 있는 아들 옆에 내려놓고 웃으면서 아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퉁명스럽던 아들은 J가 원하는 것을 해주자 J가 말하는 것들을 들어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J와 이야기를 나눌 때 웃기도 하고 친밀함을 표현하는 작은 변화들이 나타났다. 이러한 변화를 몸으로 경험하면서 J는 ‘내가 바뀌니 아이가 바뀌네요’라고 상담자에게 고백하면서 활짝 웃었다. 

우리 몸의 기능 중 변하기 어려운 것은 어린 시절부터 축적된 반복된 습관이다.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맺어진 자신의 방법을 따라 자녀를 양육하면 자녀는 우리가 부모에게 반발한 것처럼 부모에게 저항한다. 자녀와의 갈등을 해결하고 싶다면 먼저 부모가 변해야 한다. 부모가 변하면 자식도 변한다. 자식과 잘 지내기 위해 노력하다 보면, 자녀가 부모를 변화시키는 은총의 도구라는 말의 의미를 삶으로 체험하게 된다. 부모와 자녀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하는 노력은 빨리 효과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경우도 있다. 내가 변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것처럼 자녀가 변하는 데도 시간이 걸린다. 이 사실을 깨닫고 자녀를 사랑하는 만큼 참고 노력하다 보면 자녀가 변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오늘 자녀와의 작은 변화를 시도해 보면 어떨까요?

 

최명옥 <한국정보화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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