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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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에는 낙화암 -57
  • 한지윤
  • 승인 2020.09.09 08: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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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은 더 이상 속으려 하지 않았다. 이제는 별다른 뾰족한 수가 없었다. 내빼는 길밖에는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었다. 
도미의 아내는 순간적으로 방안을 휙 둘러보았다. 창문이 하나 열려있었는데 그 창밖에는 거무충충한 숲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이제는 죽기 아니면 살기밖에 없다. 뛰어 도망가다가 안되면 죽는 길밖에는 이제 도리가 없게 되었다.
“대왕이시여! 그러면 좋습니다. 소인이 지금 잠깐만이라도 대왕께서 즐기실 수 있도록 몸을 청결히 하겠나이다. 잠시만 몸을 깨끗이 할 동안만 옆방에 가계시면 소녀 바로 몸치장을 하고 대왕님을 맞이할 것이와요! 잠시만요?”
도미의 아내는 잔뜩 부끄러운 듯 수줍어하면서 임금의 등을 떠밀었다.
계속 몸이 부정하다고 고집하다가 혹시라도 몸을 벗겨 놓고 확인이라도 하면 금방 발각될 위험이 있어서 도미의 아내는 금방 둘러댄 것이었다.
“아이, 대왕이시여! 한 번 더 속는셈 치시고 고만한 청도 들어 주시지 못해요. 이제는 옆에 두시고 항상 즐기실 수 있는 몸이 되었는데요. 뭘……”
“그래, 그럼 한 번 더 속는셈 치고 고만한 청을 들어줄테니 얼른 물을 떠다가 몸을 청결히 닦도록 하거라.”
임금이 그 청을 허락하고 곁 방으로 나가자 도미의 아내는 곧바로 밖으로 나가서 대야에 물을 떠오는 척하면서 주변을 살펴보았다.
임금은 도미의 아내가 대야에 물을 떠가지고 방안으로 들어가자 안심하고 곁 방에 앉아 있었다.
도미의 아내는 대야에 물을 떠서 방안에 들여 놓고서 바로 밖으로 나와 또다시 수건을 들고 방안으로 들어갔다.
도미 아내의 행동으로 보아 임금은 분명히 몸을 청결히 하고 있는 줄로 굳게 믿고 있었고 도미의 아내는 임금이 곁방에 그대로 앉아있는가를 확실하게 살피기 위하여 혼자서 연극을 꾸몄던 것이다.

그 때 도미의 아내는 창문을 뛰어 넘어 숲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는 이를 악물고 뒤도 돌아보지도 않은 채 줄곧 앞으로 달음질쳤다.
돌부리에 채여 넘어지기도 하고 가시밭에 살갗을 찢겨 다리와 얼굴, 그리고 팔에서 피가 흘러도 그는 죽기 아니면 살기 식으로 정신없이 뛰었다.
이렇게 한동안 정신없이 내빼노라니 뒤에서 떠들썩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사들이 쫓아오는 것이었다.
그는 계속해서 죽기 살기 식으로 정신없이 내달아 뛰었다. 한참 뛰노라니 문득 가파른 절벽이 나타났다.
‘아! 이젠 붙잡히는구나! 차라리 붙잡혀 갖은 고초를 겪을 바에야 깨끗이 몸을 던져버리자!’
도미의 아내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절벽 밑을 내려다보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살아남을 운명인지 고목나무에 감겨있는 칡넝쿨이 절벽을 따라 저 아래까지 늘어져 있었다. 그는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칡넝쿨을 타고 절벽 밑으로 미끄러져 내려갔다. 아직 몸이 땅에 닿기도 전에 칡넝쿨이 툭하고 끊어지더니 도미의 아내는 나무등걸에 이마를 부딪치고 말았다. 순간 정신이 아찔했다. 그러나 그녀는 안감힘을 다해 정신을 차렸다.
어느덧 절벽 위쪽에서는 숱한 사람들이 뛰어오면서 와글와글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도미의 아내는 얼른 숲속에 몸을 숨겼다.
“여기로는 더 이상 도망칠 수 없는 곳이다. 저쪽으로 가보자!”
“너희들은 저쪽으로 계속해서 쫓아가보도록 해!”
무사들은 떠들썩하면서 어디론지 자취를 감추었고 떠들썩하던 소리도 점점 멀어져 가고 있었다.

도미의 아내는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더니 그만 그 자리에 까무러쳐 쓰러지고 말았다.
새벽녘이 되어 온몸에 한기를 느끼며 그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사방이 푸르스름하였다.
‘아니, 내가 어째서 이러고 있을까? 얼른 그이를 찾아야지! 그이를 찾아야 한단 말이야!’
도미의 아내는 비틀거리며 일어서더니 강기슭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 강의 끝까지 따라 가노라면 그이를 찾을 수 있겠지!’
‘바다 한 가운데까지라도 따라가서 그이를 꼭 찾고야 말테다.’
도미의 아내는 이렇게 마음속으로 다짐하면서 걷고 또 걸었다. 배는 고프고 상처는 아파도 그는 꼭 도미를 찾아야겠다는 굳은 각오로 이를 악물어가며 걷고 또 걸었다.
한참동안을 걷던 그는 갑자기 놀라면서 발걸음을 멈추었다. 저만치 보이는 강기슭에 자그마한 나룻배 한 척이 뒤집혀 있었다.
‘아니, 저게 배가 아닌가?’
도미의 아내가 정신없이 뛰어가 살펴보니 사람은 없었고 빈 배 뿐이었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나라에서 쓰는 배가 틀림없었다.
‘바로 이 배로구나. 그이를 실어서 떠내려 보낸 배가 이 배가 틀림없구나! 그런데 그이는 어디가고 빈 배만 남았는가? 죽었는가, 아니면 살았는가? 죽었다면 송장이라도 어디에 있을텐데……’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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