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강에는 낙화암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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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강에는 낙화암 -60
  • 한지윤
  • 승인 2020.09.30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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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서 역사를 중지하오. 백성들의 원성이 높아가고 있소.”
“역사를 중지하지 않다간 무슨 변고라도 날 듯하니 대왕께서 굽어살피소서.”
신하들은 왕을 만날 때마다 이런 말로 간곡히 간하였다.
왕도 차차 겁을 먹게 되었다.
‘이러다간 정말 안되겠는걸. 도림이가 극구 권고하지 않았어도 일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걸.’
왕의 원망은 드디어 도림에게로 돌아갔다.
“혹시 그놈이 나를 망치려고 그런 것은 아닐까?”
왕은 생각할수록 도림이가 원망스러웠다.
“도림이 이놈을 당장 불러들여라!”
왕은 추상같은 명령을 내렸다. 도림이가 병을 핑계로 바둑 두러 들어오지 않은지도 벌써 며칠째 되었으니 왕은 더욱 더 그를 의심하게 되었다.
군졸들은 도림의 집으로 불이 나게 달려갔다. 그러나 집은 텅 비어있었고 도림은 간데 온데 없었다. 그제야 개로왕은 도림에게 속은 줄 알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를 잡아오라고 하였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이 때 도림은 벌써 고구려에 돌아가 장수왕 앞에 앉아 있었다.
“갔던 일이 어찌되었소?”

장수왕이 묻자 도림은,
“대왕, 지금 백제의 국고는 텅 비어있고 백성들은 못살겠다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지금 들이치면 백제왕의 목을 베는 것이 여의반장일 것입니다.”
하고 서두를 뗀 다음 그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보란 듯이 아뢰었다.
“수고했소, 수고했어. 대사는 고구려를 위해 큰 공을 세웠소.”
장수왕은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도림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본디 도림은 장수왕의 명령을 받고 백제로 간 사람이었다. 백제왕이 바둑에 정신이 팔려 있다는 것을 안 장수왕은 고구려의 바둑대왕 도림을 몰래 백제에 파견하여 백제의 형편을 살펴보도록 하였다.
“백제왕의 신임을 얻고 그 나라 형편을 잘 살피고 돌아오도록 해주오.”
장수왕은 도림을 보내면서 이렇게 당부하였다.
“형편을 살피고 오는 것만으로는 아직 부족할 줄 압니다.”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럼 또 무슨 수가 있는가?”
장수왕의 귀가 번쩍하였다. 도림은 자신만만하게 말하였다.
“그 어리석은 임금의 힘을 빌어 백제를 뒤죽박죽하게 하여야 합니다.”
“그렇게 되겠는가?”
“신에게 맡겨주십시오.”
도림은 이렇게 다짐하고 백제로 들어가더니 개로왕을 실컷 주물러 놓고 돌아온 것이다.
장수왕은 지체 없이 군사 3만을 거느리고 백제국경을 넘어섰다.
고구려 군사들이 쳐들어온다는 소식을 접한 개로왕은 태자(훗날의 문주왕)를 불러놓고 가슴을 치며 통탄하였다.
“과인이 불민하여 간사한 도림에게 속아 오늘 나라꼴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원통하도다. 이제 고구려가 대거로 쳐들어오니 어찌할 것인가?”
“부왕, 과히 염려 마십시오. 지금 우리의 형편으로는 싸워 이기기 어려우나 신라에 구원병을 청해 함께 싸우면 적을 물리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태자가 이렇게 말하자 개로왕은 그대로 허락하였다.

“그러면 태자는 곧 신라로 가서 구원병을 청해오도록 하라!”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대왕께선 구원병이 올 때까지 성문을 닫고 굳게 지키되 절대 나가 싸우지 마십시오. 신라 군사들이 오기를 기다려 앞뒤로 들이치면 적들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태자는 몇몇 장졸들을 거느리고 그 길로 신라로 들어갔다.
그러나 고구려 군사들은 파죽지세로 쳐들어와 어느덧 수도 한산을 깨뜨리고 이어 북성을 함락시켰다. 개로왕은 수하장졸 몇 사람만 거느리고 남쪽으로 도망가다가 나중에는 필마로 한수에 이르러 우왕좌왕하고 있었다.
이 때 두 장수가 왕의 앞을 막아서며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
“대왕, 그만 말에서 내리시오.”
개로왕이 깜짝 놀라 바라보니 재증걸루(再曾傑屢)와 고이만년(古爾萬年)이라는 그전의 백제 장군이었다. 그들은 개로왕의 미움을 받고 고구려에 항복한 후 이번에 장수왕의 선봉장이 되어 나오게 된 것이다. 어쨌든 지난날에는 백제 사람이었으니 왕은 다소 안심이 되었다.
“이 국난의 관두 싸움터에서 장군들을 만나게 되니 기쁘오. 과인이 오늘 궁지에 빠졌거늘 한 번만 살려주면 후일 결초보은 하리다.”
왕은 전날의 신하에게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였다.
“퉤, 퉤, 퉤! 왕은 왜 제 죄를 모르오?”
걸루와 만년은 개로왕의 얼굴에 세 번 건침을 뱉더니, 
“어서 결박을 받으시오!”
하고 왕을 꽁꽁 묶었다.
이리하여 어리석은 ‘바둑임금’은 고구려 군사들에게 묶여 아차성(阿且城)에 이르러 마침내 목이 잘리게 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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