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쪽 선비와 일본판사(日本判事), 그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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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쪽 선비와 일본판사(日本判事), 그리고…
  • 김주호 <광천제일장학회 이사장>
  • 승인 2021.02.25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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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대쪽 같은 어떤 선비가 20리 정도 떨어진 친구 부친의 문상을 갔다가 다른 친구들과 대작을 하던 중에 한 선비가 말했다. “여보게들 옆 동네 아무개의 부친께서도 별세하셨다는 소식이 왔네. 우리 여기서 한 잔만 하고 이 참에 그 친구네 문상을 가세 여기서 한 茶頃(15분)이면 가니 그리들 함세.” 

그러자 대쪽선비가 “이 사람들아 그러면 못쓰네. 우리는 지금 이 댁에 문상을 왔는데 그리로 가면 성의가 없으니 그러면 안되네. 마땅히 집에 다시 돌아갔다가 그 친구 댁에 문상을 가는 것이 도리네”라면서 다시 집에 왔다가 마음가짐을 새로 하고 20리를 걸어 그 친구네 문상을 다녀왔다.

1947년 일본 동경지방법원 판사 ‘야마구찌 요시타다(山口良忠)’가 34살의 이른 나이에 요절했다. 사인(死因)은 좋게 말하면 영양실조이고, 나쁘게 말하면 아사(餓死)였다. 당시 일본은 패전 후 ‘식량관리법’에 따라 쌀, 밀가루 등 식품을 배급제로 운용하고 있었다. 겨우 연명할 정도의 식량배급에 시중의 불만이 하늘을 찔렀고 정부의 단속을 피해 암시장이 성행했다.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로 인해 암시장이 늘어나자 정부가 불법유통을 금지했으나 암시장은 수그러들지 않았고, 그런 법령을 만든 고위직이나 부자들까지 암시장을 이용하는 상황이었으나 야마구찌는 식량관리법위반으로 재판에 넘겨진 많은 사람들을 법의 이름으로 심판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자기는 배급 외의 어떤 음식도 먹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부인이 어렵사리 구해온 식량을 당장 내다 버리라고 호통쳤다. 자신이 암시장 유통품을 먹는 것은 양심에 어긋나는 일이며 판사로서 부끄러움이 없는 재판을 하고 싶다는 게 그 이유였다. 그렇게 양심을 지키던 야마구찌는 8개월 후에 영양실조로 쓰러졌고 요양 중 다른 병까지 겹쳐 끝내 숨을 거두고 말았다.

대쪽선비나 야마구찌 판사나 참으로 융통성 없는 도덕군자라 할 수 있겠으나 오늘날 현대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고 생각한다.

한적한 시골 지방법원장(차관급)에 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주군의 부름을 받아 일약 국가 의전서열 3위인 대법원장에 임명됐으니 이 얼마나 성은이 망극한 일인가!

코드가 맞는 주군이 쇼통을 잘하는걸 알고 한양에 올 때 버스타고 전철타고 오는 쇼통 시범까지 보여 주군에게 점수를 따자 좌의정(左議政)도 따라하고 최근에는 우승지(右承旨)까지 거들었다. 그래놓고는 예산항목이 없는데도 다른 예산을 전용해 공관 리모델링은 물론 손자들 놀이터까지 만들었다.

그런 다음 철저하게 주군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하고 코드인사를 단행해 주군의 신임을 듬뿍 받게 됐다. 경기도 관찰사가 거짓말한 죄로 1, 2심에서 유죄를 받았으나 3심에서 적극·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할 의사가 있었다고 볼 수 없다는 희한한 논리를 개발(?)해 무죄를 선고하고 다른 건들도 그런 식으로 판결했으며 곧 있을 경상감사의 드루킹 사건도 비슷한 맥락의 판결이 나올 것으로 기대(?)된다. 

최근에는 후배판사를 탄핵의 제물로 내놓고는 거짓말을 하다가 들통이 나자 또 다시 거짓말을 해 사퇴 압력을 받자 별의별 궤변을 늘어놓으며 사퇴를 거부하고 있는데 차라리 이렇게 답변하는 것이 조금 나을 듯(?)싶다.

“소인은 30년 동안 올곧이 재판에만 몰두한 공로가 지대해 성군(聖君)의 패초(牌招)로 의금부 최고 당상이 됐으니, 분골쇄신(粉骨碎身) 주군의 성은에 보답하고자 법과 양심을 짓누르고 주군의 입맛에 맞는 판결을 하는 데에 심혈을 기울여 왔습니다. 근자에 아주 경미한 부주의(?)로 백성의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만 워낙 소인이 감투를 좋아해 의전서열 3위를 내놓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없습니다. 대대손손 가문의 영광을 길이 후손에 전하고 싶으니 널리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 저보고 사법부(司法府)를 詐法府로 개명해 신장개업했다고 비판하시는데 사실이 아닙니다. 개명원조(改名元祖)는 형판대감이 법무부(法務部)를 法無部로 개편하고 신장개업했으며 소인은 그저 정치권의 눈치를 보며 슬금슬금 뒤를 따라가다가 法無部로 개편하는 것을 보고 소인도 잽싸게 詐法府로 개편했을 뿐입니다. 그런 와중에 이웃집(法無部)에서 정권의 충견(忠犬)들을 전면에 배치하는 내로남불, 조로남불, 문로남불 하는 것을 보고 소인도 용기를 내어 미운 놈은 제물로 내놓고 예쁜 놈은 승진시키거나 6년, 4년씩 두는 김로남불의 쾌거(?)를 이뤘습니다. 또한 가급적 지록위마(指鹿爲馬)처럼 흰 것은 검다고, 검은 것은 희다고 판결해 주군의 환심을 살 수 있도록 불철주야 노력하겠습니다. 그러하오니 민초들께선 아무 말씀 마시고 굿이나 보고 떡이나 잡수시기 바랍니다.”

차라리 이렇게 말했으면 조금은 정직(?)하다고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주군을 비롯한 정권의 충견들이 대쪽선비와 야마구찌 판사의 반에서 반의 반만 닮았어도 삼천리 강산이 이렇게 망가지진 않았을 것이다. 

판사의 임무가 무엇인가? 참과 거짓을 판별해 유무죄를 내리는 사람인데 금부당상은 얼굴에 철판을 몇 겹 두른 사람인 것 같다. 허긴 주군부터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고 언행이 다르니 누구를 탓하랴 비난은 일시적이고 영광은 천만년 후세에 전해질테니 참새들 지껄여봐야 아무 소용없다는 뜻일 텐데 과연 그럴까!     

우선 먹기는 곶감이 달더라고 잠시는 좋겠지만, 그 더러운 이름이 준엄한 역사의 심판대에 머지않아 오르리라는 것이 동서고금(東西古今) 만고불변(萬古不變)의 진리라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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