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양임 씨 고향은 원래 논산이나 아이들 대학 보내놓고 1992년 남편 고향인 장곡에 정착했다.
아들 다섯에 막내딸로 태어났다. 바로 위의 오빠와 10살 차이가 나니 한참 늦둥이인 셈이다. 태어나 첫돌이 되던 해에 전쟁이 터졌고 어려운 시대에 태어나 공부할 수 있는 상황이 안됐다.
사실 중학교 시험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을 해 놓고도 결국 가정형편으로 진학할 수 없었다. 당시엔 장학제도가 없어 그냥 포기했다. 신 씨의 가슴 속엔 살면서 ‘내가 중학교만 나왔어도 뭐든 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운 마음이 늘 자리 잡고 있었다. 비록 진학은 포기했지만 평소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잡지든, 광고전단지든, 신문이든 뭐든 열심히 읽었다. 공부를 새로 시작하면서 이런 습관들이 많은 도움이 됐다고 밝힌다.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늘 가지고 있었지만 막상 아이들 키우고 살림 하느라 자신에게 투자할 여유는 없었다. 어느 정도 아이들 키워 놓은 50대가 되니 ‘이제와 무슨 공부’라며 포기하고 살았다고 한다. 그러다 신 씨는 가족들을 위해 요양보호사 자격증이라도 따 놓자는 생각으로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하는데 벌써 머리가 텅 빈 게 ‘큰일났다’ 싶어 그 길로 요양보호자 자격증, 운전면허 1,2종을 다 따고 말았다. 그리고 곧장 검정고시 준비도 시작했다.
우연히 광고를 통해 홍성사회복지관에서 검정고시반을 운영한다는 걸 알게 돼 어렵게 문을 두드렸다. 지난해 5월 15일 처음으로 공부를 시작해 8월에 중졸검정고시에 합격하고 지난 4월 15일 고졸검정고시에 합격했다. 11개월 만에 모든 과정을 통과한 셈이다.
신 씨를 지도한 사회복지관 김은경 사회복지사는 “어머님이 워낙 이해력이 좋고 열심히 노력하셨다. 지난해 중학교 과정 중에서 수학은 한 문제밖에 틀리지 않았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부모가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면 아이들이 결코 삐뚜루 나가지 않는다”라고 믿는 신 씨는 평소 생활이 어려웠어도 자녀 교육만큼은 포기하지 않았고 남편과 함께 월급 1원 하나 허투루 쓰지 않고 애들 가르치는 걸 우선으로 삼았다.
“큰 딸이 지금 45살인데 당시 없는 형편에 딸을 대학에 보내니까 다른 사람들이 분수도 모른다고 손가락질 하더라. 그러나 열심히 공부한 우리 딸이 교원대를 졸업하고 지금은 교편을 잡고 있다”고 감회를 밝힌다.
앞으로 신 씨는 방송통신대 식품영양학과에 진학하겠다는 계획을 가지고 있다.
“식품영양학은 평생 아이들 밥 먹이고 알뜰하게 살려고 노력한 엄마로서 가장 자신 있는 학문일 것 같아 선택했다. 노후에도 필요한 학문이고 주부로서 평생 많이 해온 거, 쉬운 거,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게 바로 이 분야”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마지막으로 신 씨는 “사회복지관에 너무 좋은 프로그램이 많다. 나처럼 늙은 사람들도 부담없이 배울 수 있는 다양한 과정이 준비돼 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나와서 함께 공부도 하고 사람들도 만나고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냈으면 좋겠다”며 더불어 “환경이나 부모, 가정 형편 등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젊은이들에게 열심히 노력하면 결과는 꼭 노력한 만큼 나온다는 걸 말해주고 싶다. 나처럼 너무 늦지 않게 시작하라고, 포기하지 말라고 전하고 싶다”고 당부의 말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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