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삶을 열고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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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삶을 열고 닫는다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01.27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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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학에서 길(道)에 대한 철학적 함의는 매우 깊고 포괄적인 것으로서 이치, 근원, 덕행 등 여러 가지로 해설 되고 있으며 최종적으로는 인간이 이루고자 하는 궁극의 경지를 뜻한다. 철학적 의미는 접어두더라도 단순한 이동경로로서의 길 역시 인간생활에 수많은 변화와 사건들을 만들어내며 흥망성쇠의 바탕을 이룬다. 

길은 우리 몸에 온갖 영양분을 실어 나르고 노폐물을 거두어가는 핏줄과 같다. 핏줄이 막히면 생명을 유지할 수 없듯 인간은 길을 통해 서로 소통하고, 문명이 오가며, 적군이 쳐들어오면 막아야 살 수 있고, 살기 위해 밖으로 나갈 때는 열어 젖혀야 하며, 소통의 중심이 되는 곳은 번화한 도시를 이룬다. 

토목기술의 발전과 자동차가 일반화되면서 전국 도로는 거미줄처럼 얽혀있어 고속도로를 이용 할 때도 내비게이션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낭패 보기 십상일 만큼 방방곡곡이 사통팔달로 변하고 있다. 이 같은 도로망의 변화는 여행의 방식에도 영향을 미쳐 출발지와 목적지라는 매우 단순한 구조로 자리 잡았다. 예를 들면 같은 자동차 여행이라 할지라도 구불구불 국도를 돌아다닐 때는 작은 소도시를 거쳐 가며 자연스럽게 그곳의 풍물을 접하게 되고, 책에서만 보아온 역사적 사건의 장소를 만나는 것 등은 예기치 않은 재미를 보탰다.

그러나 요즘은 어느 곳 할 것 없이 고속도로와 진배없는 자동차 전용도로가 도시 외곽으로 뚫리면서 국도변에서 성황을 이뤘던 휴게소, 길옆 구멍가게, 토속음식점 등은 더이상 외지인들이 찾지 않아 빈집으로 방치된 것은 벌써 오래 전의 일이 됐다.

지난해 12월 보령~태안 간 해저터널 개통으로 우리 홍성은 잠시 들러가는 중간 기착지에서 아예 지나쳐 가는 도시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여기에 태안군이 중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태안 이원면과 서산의 대산항을 연결하는 가로림만 해상교량이 완공되면, 보령~태안~서산~당진~수도권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도로망이 구축될 것이고 홍성의 관광사업에 막대한 타격을 줄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이뿐만 아니라 가까운 시일에 대한민국의 정치, 경제, 문화 중심인 서울까지 한 시간 안에 닿는 2개 노선의 철도가 개통된다. 이것 역시 도시 쏠림현상을 가속화 시킬 것이다. 현재 홍성역과 도청을 잇는 외곽도로가 완공됐고, 역사(驛舍) 주변에 역세권 개발과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하지만 대도시가 가지고 있는 문화적 역량, 산업의 다양성, 유흥을 즐기는 사람들의 익명성 등은 여전히 극복하기 어려운 난제임은 분명하다.

따라서 우리 홍성의 관광산업은 홍성만이 가지고 있는 특색을 살려내 여행의 목적지로써 탈바꿈해야 한다. 흔히들 관광은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라는 세 가지 요소를 말한다. 문제는 대부분의 지자체들이 같은 고심을 하고 있고, 그 결과 전국 곳곳에 출렁다리, 케이블카 등이 만들어지고 있다. 홍성도 다를 바 없어 선거철만 되면 오서산, 용봉산, 남당리 등에 출렁다리나 케이블카를 놓겠다는 공약이 떠돈다. 

코로나 여파도 있겠지만 인근 예산 예당호 출렁다리, 청양 천장호 출렁다리 등에서 보듯이 인위적 시설물들은 거의 일회성 관광으로써 기대효과는 오래가지 못하며, 지자체는 시설물 관리라는 엄청난 재정적 부담을 떠안아야 한다. 그러므로 다른 지자체에서 인위적으로 만들 수 없는 유일한 사례를 중심으로 관광거리를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강원도 춘천이 수도권을 겨냥해 ‘춘천막국수’, ‘춘천닭갈비’로 성공했듯이 다소 복원이 늦어지고 있지만 홍주성과 연계해 ‘한우’, ‘한돈’을 바탕으로 하는 홍주의 특별한 먹거리를 만들어 냈으면 한다. 

그리고 전국에서 유일하게 마애불 3구, 입불 2구의 노천불이 있는 용봉산과 그 주변은 하루에 10구 이상의 불상을 만날 수 있는 곳으로써 인근 수덕사와 간월암, 서해안 고속도로상에 있는 관광 사찰들과 연계한다면 새로운 활로가 모색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범상스님 <석불사 주지·칼럼·독자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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