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아이들도 다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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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수첩] 아이들도 다 알고 있다
  • 황희재 기자
  • 승인 2022.05.2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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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홍성공업고등학교 정문 앞 정류소에 승강장 시설이 조성됐다. 학생들은 시설이 생기기 전까지 갓길 한 구석에 서 있거나 옹벽에 걸터앉아 버스를 기다려야만 했다. 홍성공고 정류소처럼 시설이 전무해 사고 위험이 도사리고 있던 곳으로는 갈산고등학교 학생들이 이용하는 ‘갈산교앞’ 버스 승강장도 있었다.

갈산교앞 승강장은 지난해 5월 홍주신문 1면에 보도된 이후 시설 조성까지 6개월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다. 그해 7월에는 홍성군의 정기 인사가 있었고, 갈산교앞 승강장 문제는 사람들의 관심에서 다시 멀어진 듯 했다. 

새롭게 발령 받은 관계부서 공무원들은 해당 내용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다시 설명해야 했다. 추진해보겠다는 대답이 돌아왔지만, 결국 토지 소유주의 반대로 조성할 방법이 없다는 소식을 듣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지역구 기초의원을 찾아가 노트북을 펼쳐놓고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처음 갈산교앞 승강장 문제를 보도할 때만 해도 면단위 지역 중 비교적 승하차 인원이 많은 학교 앞 승강장을 대상으로 지자체의 전수조사가 실시될 줄로만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고, 승강장에 대형 그늘막을 갖다 놓는 것으로 상황은 일단락됐다. 

얼마 후 버스승강장 설치와 관리에 대한 조례가 홍성군에 없다는 것을 파악하고 “홍성에 ‘버스승강장 관련 조례’ 없다” 기사를 보도했다. 그리고 한 달 뒤인 9월 ‘홍성군 버스승강장 설치 및 관리 조례’가 제정됐다.

11월, 드디어 갈산교앞 승강장 시설이 조성됐다. 장장 6개월이 걸렸고 5번에 걸쳐 관련 기사가 보도된 나름의 장기 프로젝트였다. 지역신문기자로 일하며 큰 보람을 느낀 순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학생들의 안전을 위해 기본적인 인프라를 갖추는 일이 이렇게까지 힘든 일인가?’ 씁쓸한 기분이 든 것도 사실이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3월 업무차 결성면을 다녀오는 길에 인도도 없는 도로 가장자리를 따라 줄지어 위태롭게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홍성공고 학생들의 모습이 포착됐다.

바쁜 일정 때문에 다음을 기약하고 학생들 옆을 지나치면서 면단위 소재 학교를 다니던 한 고등학생의 말이 뇌리에 스쳤다. 그 학생은 지역과 관련된 대화를 하던 중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에요. 홍성이랑 내포신도시에만 사람이 사는 게 아니잖아요. 우리도 다 알고 있어요”라며 격앙된 목소리로 불만을 표출했다.

학생에게 알고 있다는 게 무엇인지 구태여 묻진 않았다. 다만 ‘상황이 이렇게 되도록 보고만 있었던 당신도 똑같아’라고 말하는 것만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시간이 조금 더 흘러 이들이 어엿한 어른으로 성장했을 때 홍성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갖게 될지는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어른들에게 달려있다. 아이들도 다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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