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틀대는 욱일기와 찾지 못한 이름 ‘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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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틀대는 욱일기와 찾지 못한 이름 ‘홍주’
  • 황희재 기자
  • 승인 2022.07.14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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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년 전 친척 동생 하나가 이름을 바꿨다. 가족들이 동생의 새로운 이름에 적응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아직도 예전 이름으로 동생을 부르는 가족들이 남아 있다. 오랫동안 불러 친근했던 이름인데, 설은 개명에 낯설기도 하고 옛 이름의 기억들이 적지 않았다.  
 
동생은 중학교 시절 극심한 학교폭력에 시달리다 자퇴를 선택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겠다는 의지를 담아 개명을 신청했다. 개명사유서에는 학교폭력이라는 이유 대신 사주팔자 때문이라는 내용이 기재됐다. 학교폭력에 대한 내용은 이유를 막론하고 개명에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는 변호인의 조언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동생은 개명 이후 아픔을 극복하며 새 삶을 살아가고 있다.

‘전쟁 가능한 일본’을 필생의 숙원으로 삼았던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가 지난 8일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괴한의 총격을 받아 숨졌다. 이틀 뒤인 10일 일본의 공영방송 NHK는 참의원 선거 투표가 종료된 후 개헌세력이 전체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는 출구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아베의 갑작스런 죽음은 평화헌법이라고 불리는 일본헌법 9조를 개정하는 도화선이 될 분위기다. 군국주의 일본에서 만주국을 통치했던 압제자이자 A급 전범 용의자인 기시 노부스케의 외손자는 그렇게 자신의 조국에서 순교자가 됐다.  

1914년 조선총독부는 식민지 조선에서 부군면 통폐합을 실시했다. 당시 전국의 여러 군과 면지역이 통폐합돼 사라졌고, 오늘날까지 우리나라 행정구역의 명칭과 영역에 그 영향이 미치고 있다.

1000년의 역사를 간직한 ‘홍주’는 1914년 총독부령 111호에 의거 결성군과 통폐합되며 홍성이라는 새 이름을 갖게 된다. 이후 우리민족은 1945년 8월 15일 일제의 패망과 함께 광복을 맞이했다. 그리고 77년이 흐른 지금, 지명을 되찾으려는 움직임은 ‘시 승격’이라는 현안과제와 함께 발이 꽁꽁 묶여 있다.  

홍성에서는 지난 2015년 홍주지명되찾기범국민운동본부가 공식 출범하며 민간 차원의 지명 찾기 운동이 본격화됐고, 관련 학술세미나와 간담회, 토론회가 연이어 개최됐다. ‘홍주시’로 지명을 되찾자는 지역 정치인들의 힘찬 구호도 있었다. 그러나 현재 홍주지명 찾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지지부진하게 시들어 버린 실정이다.

한 지역 정치인은 “지명 변경은 지방의회의 의결을 거쳐 법률로 정하는 사항으로 단순하게 지명만을 변경하는 것은 실익이 없다고 생각하며, 홍성군이 시로 승격되는 시점에 맞춰 지명에 대한 논의와 함께 지명 변경에 수반되는 여러 가지 문제점을 다각적으로 검토해 추진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된다”라고 했다. 다른 정치인 대부분도 마찬가지였다. 시 승격이 동반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명을 변경하면, 추후 시 승격 시 또 한 번 명칭을 바꿔야 하기 때문에 비용을 두 번 지출해야 한다는 게 그들이 말하는 요지였다. 

반대로 말하면 ‘시 승격 없이 지명 변경도 없다’는 의미가 된다. 당초 10만 인구를 목표로 홍성군과 예산군에 조성된 내포신도시는 전체 공정률 99%를 기록하고 있는 현재, 목표했던 10만 인구에 한참 못 미치는 2만 9000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시 승격을 위해서는 홍성군과 예산군이 통합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예산에서는 “엄밀히 따지면 홍주 명칭은 단절된 지명이고 예산은 1100년이 이어진 지명”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홍주라는 지명을 그다지 달가워하지 않는 모양새다.

홍성읍 대교리에 있는 홍주의사총은 무장 항일투쟁 중 홍주성 전투에서 희생된 홍주의병들의 유해를 모신 묘소다. 1949년 지금의 의사총 자리에서 의병들의 유해가 발견되며 홍주의사총이 조성됐다. 매년 6월 1일(의병의 날)이 되면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모여 이들의 묘소 앞에 고개를 숙인다. 

그러나 전쟁이 가능한 일본을 만들기 위해 꾸준하게 담론을 형성해온 그들과, 아직도 일제가 달아준 지명에서 유순하게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의식차이는 비교하기도 민망한 수준이다. 나는 일본의 절치부심보다 무뎌져 버린 우리의 역사의식이 더 무섭다. 아베는 허망하게 세상을 떠났지만 살아 꿈틀거리는 유산을 자국민의 가슴 속에 새겼다. 다시 욱일기가 펄럭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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