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번역하는 것은 우비를 입고 샤워를 하는 것과 같다” 〈1〉
상태바
“시를 번역하는 것은 우비를 입고 샤워를 하는 것과 같다” 〈1〉
  • 윤정용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08.04 08: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영화 <패터슨>(짐 자무시, 2016)은 《패터슨》(1946~1958)이라는 제목의 시집을 출간한 미국의 소도시 ‘패터슨’ 출신의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를 동경하는 영화 속 주인공 ‘패터슨’의 일상을 조명한 영화이다. 패터슨은 버스 기사이자 시인이다. 이 영화는 시를 통해 사물 그 자체를 조명하고자 했던 윌리엄스의 시도를 영화의 방식으로 새롭게 구현하고 있다. 질 들뢰즈는 시에서의 이미지와 영화에서의 이미지 개념을 다른 것으로 파악한다. 그에 따르면 영화 이미지는 무엇보다도 움직이는 이미지이기 때문에, 운동성과 시간성을 수반한다.

누군가는 <패터슨>을 시인 윌리엄 카를로스 윌리엄스의 시집 《패터슨》에 담긴 미학적 관점과 조응하는 영화로 규정한다. 이는 <패터슨>이 추구하고 있는 물질의 객관성, 혹은 그 실재에 대한 탐구라는 관점에서는 옳은 평가이지만, 물질의 지속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꼭 그렇지만은 않다. <패터슨>은 기존의 언어 양식을 영화라는 운동적인 매체를 통해 다른 방식으로 구현하고 있기 때문에 지속이라는 관점에서는 윌리엄스 시론에 대한 이율배반적인 영화이기도 하다.

<패터슨>은 주인공 패터슨이 매일 아침 비슷한 시간에 침대에서 잠을 깨는 장면으로 시작되는 일주일의 시간을 다루고 있다. 버스 기사인 그는 같은 이름의 도시 패터슨에 살았던 시인 윌리엄스의 시를 좋아하고 지하실에 마련된 서재에서 윌리엄스의 시를 읽는다. 그는 하루 종일 23번 버스를 운전하면서 틈틈이 시를 쓰고, 퇴근해서는 아내와 저녁을 먹는다. 식사를 마친 뒤에는 아내의 요청에 따라 반려견 마빈을 산책시키고, 동네 바에 들러 주인과 담소를 나누며 맥주를 마시다가 집으로 돌아온다.

<패터슨>은 패터슨의 똑같은 일상이 반복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반복의 차이가 이 영화의 주제이다. 그의 사소한 일상은 비슷한 것 같지만 조금씩 다르다. 일상적 행위의 반복처럼 보이는 일상에서 미세한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 곧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그 미세한 차이에서 의미가 발생한다. ‘헤테로토피아’는 일상 공간이면서도 구성원들이 꿈꾸는 비현실적인 유토피아를 가리킨다. 헤테로토피아는 일상에 실재하는 공간이면서 동시에 일상성에 매몰되지 않는 개인적인 공간이다. 헤테로토피아적 사고는 곧 창의적 사고이다.

패터슨은 버스를 운전할 때 승객들이 하는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인다. 그는 버스 안에서 만나는 인간 군상을 관찰하고 사색한다. 영화는 버스 안을 떠도는 말들과 그것을 경청하는 패터슨의 모습을 자세하게 보여줌으로써 영화를 보는 이들로 하여금 이런 자극들이 언젠가 그의 시가 돼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게 한다. 버스 기사인 패터슨은 승객을 선택할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승객의 말에 귀를 기울인다. 그는 버스 승객의 모든 이야기에 귀를 열고 그들과 혹은 그들의 삶과 접촉한다. 그는 버스 운행을 통해 평소에 주목받지 않는 사람과 사물을 주목하며 도시와 연결한다.

패터슨에게 시 쓰기는 위대한 작품을 제작하는 고독한 작업이 아니라 일상에서 접촉하는 사물과 타인의 이야기가 자기 안에 스며들어 의도치 않은 응답을 하게 되는 활동이다. 다시 말하면 그의 쓰기는 들려오는 모든 소리를 누락시키지 않는 성실한 청자로서 반응하는 활동이다. 그가 시를 쓰면서 갖게 된 민감한 감각은 다양한 목소리에 더 주의를 기울이고 경청하게 함으로써 타자들의 서사와의 접속을 더욱 용이하게 한다. 그 경청에 응답하는 활동과 그것을 음미하는 시 쓰기를 통해 그는 자신의 삶에서 자기 서사의 변화 가능성을 극대화한다. 그는 관념적인 것이 아닌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물에서 시의 이미지를 얻어낸다.<계속>

윤정용 <문학평론가·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