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멂을 통한 눈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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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멂을 통한 눈뜸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09.01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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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과거에 발생했던 사건을 다루는 반면, 문학은 인간에게 발생할 수 있는 사건의 개연성을 이야기해 준다. 문학에서 발생하는 사건은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들이기에 역사보다 더 철학적일 수 있다고 아리스토텔레스도 말했다. 문학은 극적인 성격을 띠고 있어서 우리(나)에게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사건들”을 보여준다. 우리에게 고전으로 남아 있는 문학 작품들은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것이 아니기에 더욱 흥미롭다. 등장인물들은 타자의 모습이 아니라 내 안에 숨어 있는 인간의 속성을 닮아 있다. 그러기에 남의 이야기이지만 나를 돌아보게 만든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이 인류의 고전으로 남아서 동서양의 필독서로 남아 있는 것도 그러한 연유에서 일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만 보더라도 이러한 특성들이 등장인물의 캐릭터 속에 진하게 배어 있다. 햄릿은 아버지의 원수를 갚을 순간이 왔는데도 머뭇거리기만 하는 우유부단한 인물로 그려져 있다. 복수가 아니라 무엇을 입고 먹을까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 오셀로는 이아고의 꼬임에 빠져 부인을 의심하는 의처증 환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맥베스는 스코트랜드 던컨 왕의 친척이자 장군으로 아내와 마녀들의 꼬임으로 던컨 왕을 살해하고 왕위에 오르지만 정작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지 못하고 인생이란 “배우처럼 무대에서 한동안 활개치고, 안달하다가 사라져버리는 것”이라며, 권력투쟁을 통해 얻은 왕좌에서 ‘인생무상(人生無常)’을 느끼는 인간으로 묘사돼 있다.

리어 왕은 왕국을 분할해 딸들에게 나눠줬지만 딸들에게 배신당하고, 한밤중 광야에 내쫒겨 비바람 속에서 자신을 알아가게 된다는 지혜롭지 못한 늙은이의 이야기다. 치매에 걸린 노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독선과 아집, 가부장적인 권력을 움켜쥐고 있던 노인이 권력과 재물을 손에서 놓았을 때, 자신의 주변에 무슨 일이 생기는지를 가늠케 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리어는 세 딸에게 누가 나를 가장 많이 사랑하는지 말해 보라면서, 제일 큰 사랑을 보여주는 딸에게 많은 영토를 주겠다는 일종의 효도 경연대회를 연다. 큰딸과 둘째 딸은 감언이설을 늘어놓으며 아첨하는 반면, 셋째 딸은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너무 크기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며 말하기를 거부한다. 그러자 리어는 셋째 딸을 프랑스로 추방하듯 시집보내며, 두 딸의 집을 오가기로 하고 왕국을 나눠준다. 남은 여생을 딸들 집에서 사냥이나 하면서 보낼 심산이었다. 

딸들의 애정 크기로 왕국을 분할하기로 내린 결정이 올바른 생각이었을까? 치매에 걸린 모습이라기보다는 현명하지 못한 늙은 노인의 모습이 리어에게 어른거린다. 왕국을 두 딸에게 분할해 주고, 자신의 시종 100명을 거느리며 사냥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겠다는 그의 판단은 나이브하다 못해 어리석어 보인다. 권력과 재물을 내려놓은 리어는 시종을 줄이라는 문제로 딸들과 갈등을 겪다가 결국, 비바람 몰아치는 광야로 쫓겨나 분노와 고통으로 광인이 되어간다. 리어는 거지나 다름없는 존재가 돼서야 타인의 가난과 아픔에 공감하게 된다. 모든 것을 잃음으로써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되는 셈이다. 리어가 광야에서 집도 절도 없는 신세가 되지 않았더라면 새로운 사람으로 재생할 수 있었을까?
‘리어 왕’의 플롯 속에는 두 눈을 잃음으로써 진정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 인물이 한명 더 등장한다. 클로스터 백작이다. 그에게는 적자(嫡子)인 큰아들 에드거와 동생인 서자(庶子) 에드먼드가 있다, 홍길동처럼 서자 신분인 에드먼드는 자신이 능력이 있더라도 알아주지 않는 세상을 원망한다. 에드먼드는 형과 아버지를 기회 있을 때마다 속이고 세상과 맞서려 한다. 에드먼드는 아버지와 형을 배신하며 입신출세하려다가 결국 형의 칼끝에 죽고 만다. 클로스터 백작은 리어의 편을 들다가 발각돼 둘째 딸 리건의 남편, 콘월 백작에 의해 두 눈이 뽑히는 극형을 당하지만, 자신을 처절한 궁지에 몰아넣은 인물이 에드먼드임을 알게 된다. 그도 두 눈을 잃음으로써 오히려 세상의 리얼한 모습을 보게 되는 인물이다.
얼마 전, 동대문에서 제화업체를 하며 많은 돈을 벌은 사람이 아들과 큰딸에게 수십억짜리 건물을 사주고 막내딸에게는 월세 600만 원씩을 받을 수 있는 고시텔을 물려주었는데도 아들과 딸의 집에서 쫓겨난 사정을 조선일보(8.23.)는 보도했다. 자신의 전 재산을 자식들에게 물려줬지만 자식들은 자기에게 더 많은 재산을 주지 않는다며 어머니를 문전박대했다. 막내딸이 몰래 이사 간 아파트 문밖에 쫓겨난 어머니 사진은 비바람이 몰아치던 광야에서 울부짖던 리어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이러한 비극의 모습을 보며 누구의 잘못이냐를 따지기 전에, 리어의 모습이 재현될 수 있음을 예견한 셰익스피어의 통찰력이 놀랍다. 재물 앞에서 부모도 몰라보고, 형제끼리 이전투구(泥田鬪狗)하는 모습이 인간의 속성임을 그는 간파했던 셈이다. 리어의 비극은 인간 속세에서 지속되겠지만, 이러한 참사를 빚지 않아야 하는 것이 이성을 가진 종(種)이 해야 할 일이다.
 

김상구 <청운대학교 영미문화학과 교수·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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