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간 아들의 묘비를 닦아준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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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년간 아들의 묘비를 닦아준 어머니
  • 김주호 <광천제일장학회 이사장>
  • 승인 2022.09.22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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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연평해전의 호국영웅 한상국 상사의 모친 문화순 여사가 지난 9월 5일 별세했다. 연평해전 당시 북한의 불법 기습공격으로 357호 초계정이 반파되고 사상자가 속출하는 가운데 조타장 임무를 수행하던 한상국 상사는 부하 사병들에게 ‘나는 배를 살릴테니 너희들은 부상병을 살려라!’라고 외치면서 왼팔을 운항키에 묶고 사투를 벌이다 배와 함께 침몰, 장렬히 산화해 호국의 별이 됐다. 

이때 전사한 여섯 용사 중 다섯 용사는 시신을 찾아 영결식(2함대사령부 주관)을 치렀지만 한 상사는 연평해전 종료 42일 후에야 참수리357호정을 인양할 때 운항키에 왼팔이 묶인 채 산화한 시신으로 발견됐다. 이미 다른 다섯 용사의 영결식이 치러진 탓에 한 상사는 아무도 와주지 않은 가운데 별도로 쓸쓸히 장례식을 치렀다. 

한 상사의 부모님은 어려서부터 수영에 소질이 있었던 한 상사가 혹시 어느 무인도에라도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희망고문까지 당했으니, 문화순 여사는 이중으로 고통을 받았었다. 참으로 애통하기 그지없는 일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당시 김대중 정부에선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건성으로 유감 표명만 했고, 당연히 영결식에 참석해야 할 대통령, 총리, 국방부장관, 합참의장, 참모총장 등 그 누구도 참석하지 않았고 조문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여섯 용사를 전사자가 아닌 순직자로 처리하는 어처구니없는 우를 범하고 말았으니 이게 어디 제대로 된 나라였던가! 

미국은 전사자의 뼛조각 하나라도 찾아서 알링턴국립묘지에 안장할 때 대통령이 1분간 거수경례를 하는 등 국가와 민족을 위해 목숨을 바친 충혼들을 최상으로 예우하는 것에 반해 우리나라 대통령은 조문조차 하지 않았다. 오죽하면 한 상사의 미망인 김한나 씨가 울화통이 터져 이런 나라에서 못 살겠다며 이민을 갔다가 돌아오기도 했다. 그런데 문화순 여사는 필자와 여러 번 대화하는 중에도 정부에 대해 싫은 내색을 하지 않고 아들을 비롯한 여섯 용사의 충혼을 위무하는 데 노력을 했다. 

순직 처리를 전사처리가 되도록 힘썼고 연평해전 여섯 용사와 서정우 하사, 안관욱 일병(연평도 포격)이 국립묘지 같은 옆자리에 안장되도록 힘썼고, 여섯 용사의 이름을 딴 함정을 진수시켜 동해바다를 지키게 했는데, 우리 아들들이 지키던 서해바다로 옮겨달라고 요청해 그리 되게 했다. 아들을 저세상에 보내놓고 무슨 신명이 나서 그러고 다닌 게 아니었다. 다시는 우리 아들들과 같은 일이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문 여사의 뜻이었다. 가히 연평해전의 대모(大母)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다. 천안함 46용사의 대모(大母)인 윤청자 여사(민평기 상사의 모친)와 쌍벽을 이루는 분이다. 윤청자 여사는 국가에서 준 전사 보상금을 총 한 자루라도 더 만들어 나라를 지키는데 보탬이 되게 해달라며 국방 성금으로 내신 분이다. 

현충일 추념식 때 문재인 대통령을 붙잡고 천안함 폭침이 누구 소행인지 밝혀달라고 하자 ‘북한의 소행이라는 것이 정부의 공식 입장’이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서해 수호의 날’이나 현충일 추념식 등에서 북한의 소행임을 천명하고 항의 한 번이라도 했었나! 아니었다. 북한의 눈치를 보느라 말 한마디 못하고 밍기적 거리다 누가 물어보면 마지못해 건성으로 북한의 소행이라고 남의 일처럼 말했을 뿐이다. 요즈음 엘 여왕 서거에 대통령이 조문을 간다고 하니까 김건희 여사가 영국에 가고 싶어서 그런 결정을 했다고 민주당에서 물고 늘어지는데 설사 그것이 사실이더라도 민주당은 그런 말 할 자격이 없다.

자고이래로 경사는 같이 못 해도 애사는 같이하는 것이 사람의 도리라는 게 우리의 정서다. 그런데 연평해전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조문이나 영결식 참석을 팽개치고 월드컵 경기 참관차 일본에 갔다 월드컵은 경사(축제)이지만 연평해전은 애사이니 당연히 영결식에 와야 하는데 본인은 그만두고라도 총리나 장관도 못 가게 했다. 그때 민주당에서 대통령에게 ‘그러시면 아니 되옵니다’라고 말한 사람이 하나라도 있었나! 그런 민주당이 엘 여왕 조문을 문제 삼고 있으니 참으로 참담하기 그지없다.

‘부모가 죽으면 산에다 묻지만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옛말이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사랑하는 자식을 먼저 보내고 쓰라린 가슴을 움켜쥐고 매년 대 여섯 번씩 아들의 묘비를 닦고 끌어안은 채 오열하던 문화순 여사! 20년 동안 100여 번을 그렇게 하다가 애타게 그리던 아들 곁으로 갔지만 왜 이렇게 답답하고 가슴이 미어지는 듯한 심정이 비단 필자만의 심정은 아닐 것이다. 

김남용 충남서부보훈지청장과 한 상사의 모교인 충남드론항공고등학교 하헌상 교장을 비롯한 한 상사 동기생들이 문상을 가서 부친(한진복 선생)과 미망인 김한나 씨를 위로하고 왔다. 충남서부보훈지청은 충남 서부지역 8개 시군을 관할하는 기관이라 국가 유공자와 유족을 일일히 방문하기가 쉽지 않은데 바쁜 시간을 쪼개 문상을 하고 유족을 위로했으니 그저 고마울뿐이다. 언젠가 보훈청 직원과 대화를 하는 도중에 똑같은 장관급이면서 국무위원이 아닌 보훈처장을 장관(국무위원)으로 격상시켜야 된다고 말했더니 우리는 정치권과 떨어져서 국가 유공자와 유족을 보살핀다는 자부심과 긍지로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이라는 보훈처 직원의 결연한 의지에 더이상 언급을 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 공직자가 이 직원처럼 공무를 수행한다면 공수처나 감사원이 무슨 필요가 있겠나 싶다. 필자가 현직 교사 시절에 기회 있을 때마다 그런 교육을 시켰다. 애국자가 따로 있는 게 아니다. 경찰이나 검찰, 법원, 교도소를 이용하지 않는 사람이 바로 애국자라는 얘기다. 죄를 짓는 사람이 없어서 경찰서나 검찰이나 법원 교도소에 가는 사람이 없다면 그런 기관이 필요 없고 그런 기관을 운영하는데 들어가는 막대한 국가 예산을 국민 복지비로 쓴다면 그런 나라가 복지국가이고 그렇게 되도록 살아가는, 법이 없어도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애국자라는 얘기다. 당연히 맞는 말이지만 세상이 그렇게 되지 않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

문화순 여사님! 부디 푸르른 하늘에서 이 땅을 굽어보시며 아드님과 함께 극락에서 후생을 맞이하시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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