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우정… “50여 년 전 입은 은혜 이제야 갚습니다”
상태바
영원한 우정… “50여 년 전 입은 은혜 이제야 갚습니다”
  • 황희재 기자
  • 승인 2022.09.29 08:3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성서 근무했던 ‘美평화봉사단’ 봉사자 2명 방한
故 이범진 회장의 못다 이룬 뜻, 아들이 대신 실현
지난 24일 광천읍 한밭식당에서 열린 환영만찬 기념사진. 앞줄 오른쪽부터 이승용 덕산실업 대표, Brewster Boyd(표철웅), Carol Asberom(배수연), 이명자·최순종 부부.

지금으로부터 54년 전인 1968년 1월, 배수연(1944년생, 본명 Carol Asberom) 씨와 표철웅(1945년생, 본명 Brewster Boyd) 씨는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의 뉴프런티어 정책 일환으로 창설된 ‘평화봉사단(Peace Corps)’ 소속 청년 봉사자로 처음 홍성 땅을 밟았다.

우수한 미국 청년들 사이에서 치열한 경쟁을 뚫고 개발도상국에 파견될 자원봉사자로 임명된 이들은 워싱턴주에서 4개월간 한국에 대한 교육을 받고, 충남 홍성군에 배치돼 교육, 농업기술, 지역개발, 공중위생 등의 분야에 종사하며 지역발전에 이바지했다. 이들의 한국식 이름은 워싱턴 교육기간 중 교관이 지어준 이름이라고 한다.

철웅 씨는 2년 8개월 동안 은하면에 근무하며 주민 전체를 대상으로 건강기록부를 작성했다. 철웅 씨는 시간이 날 때마다 농민들과 함께 모심기를 도왔다고도 전한다. 

수연 씨는 총 3년 3개월을 홍성에서 지내며 구항면과 홍성읍에서 근무했고, 지금은 사라진 재건중학교(1960년대 국가재건 시기에 설립됐던 교육기관)에 책걸상을 만들어 보급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했다. 수연 씨의 주 임무는 결핵 진단과 결핵 예방접종이었다. 특히 홍성읍에서는 보건소 검사실에 근무하며 검사 업무를 담당했다. 

미국인 봉사자들과 비슷한 시기(1968년 1월~1975년 8월) 홍성군 지방공무원으로 일했던 은하면 출신 故이범진 덕산실업 회장(광천중학교 14회)은 과거 미국 평화봉사단 일원으로 홍성지역에 근무했던 수연, 철웅 씨와 같은 봉사자들을 한국으로 초청해 이들의 헌신과 봉사정신에 감사를 표하고, 이들의 도움을 발판 삼아 발전한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전국일주 여행을 계획했다. 그러나 이 회장은 결국 뜻을 이루지 못하고 지난 1월 향년 7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대로 무산되는 듯했던 이 회장의 꿈은 자식들이 아버지의 유지(遺志)를 받들며 현실이 됐다. 이 회장의 아들들은 돌아가신 아버지의 뜻을 이어 연락이 닿은 수연 씨와 철웅 씨를 한국으로 초청해 지난 22일부터 전국일주 여행을 함께하고 있다.

지난 24일에는 은하면민 환영회와 환영오찬, 故이범진 회장 동기인 광천중학교 14회 졸업생들과 함께 만찬을 가졌다. 만찬에는 김정로, 배성황, 이관영, 이원갑, 강신욱, 편기범 등 이 회장의 중학교 동기들과, 감사패와 군수 표창 수여에 힘을 보탠 이종화 충남도의원 등이 참석했고 기독교 문화권에 속하는 미국인 방문자들을 위해 이필준 광천감리교회 담임목사가 식사기도를 맡았다. 

25일부터는 홍성에서 출발해 남해로 내려가 부산을 거쳐 강원도 삼척, 최종 목적지로 서울에 당도하는 전국일주 여행 코스를 돌고 있다. 미국에서 50년 넘게 살고 있는 故이범진 회장의 여동생 이명자 씨와 남편 최순종 씨가 통역을 담당하며 함께 여행 중이다.

이범진 회장의 아들 승용 씨(48)는 “‘참전용사들을 초청한 적은 있어도 평화봉사단으로 홍성에서 근무하셨던 분들을 초청한 적은 없다’며 사비를 들여서라도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려던 아버지가 자랑스럽다. 민간외교로 정말 큰일을 계획하셨다는 것을 이번 기회를 통해 절실히 느꼈다”며 “이 일에 도움을 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함을 느낀다. 아버지를 본받아 열심히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광천읍의 한밭식당에서 만난 철웅 씨는 “나를 한국으로 초청하고 싶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감격해서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로 기뻤다”면서 “50여 년 만에 근무했던 은하면을 방문해보니 역시 은하가 제2의 고향이란 것을 느낄 수 있었다”고 방한 소감을 밝혔다. 그러면서 “홍성에 근무할 당시 열이 나고 몸이 아플 때마다 차가운 물수건을 이마에 올려 주셨던 하숙집 주인아주머니 생각이 많이 난다. 마치 내가 하숙집 아들인 줄 알고 지냈다”며 옛 추억을 회상했다.

이어 “이범진 회장이 이 자리에 없어서 너무 슬프다. 오랜만에 한국에 방문한 나를 모두가 환대해주셔서 감사하다”며 애도와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철웅 씨는 지난 23일과 24일 홍성 방문 일정 중 과거에 거주했던 하숙집을 찾아가 주인집 자녀들과 환담을 나눈 것으로 전해졌다.

수연 씨는 “홍성과 한국에 정이 많이 들어서 오래전 미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에서 눈물을 많이 흘렸다”면서 “한국을 사랑하고 한국이 좋아서 지금도 화상수업을 활용해 한국과 관련된 강의를 수강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같이 근무했던 간호사를 비롯해 한국인 친구들과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고 있다”며 “친구들이 미국을 방문해 여행을 함께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홍주신문 2009.10.30.일자, 2010.7.23.일자 보도>

한편, 故이범진 회장은 은하초등학교, 광천중학교, 예산농고를 졸업하고 1960년대 후반부터 70년대 중반까지 군청 산업행정과에 재직했으며, 이후 공직을 떠나 덕산약품공업㈜ 공장장을 지내다 1993년 7월 경기도 안성시에 폐유기용제 재생 가공 등 기타 석유정제물 재처리업체인 덕산실업㈜을 설립했다.

이 회장은 덕산실업 CEO로서 △대한민국 新지식경영대상 수상 △사회책임경영 리더 선정 △대한민국 경제리더 대상 수상 △한국의 영향력 있는 CEO 선정 △1000만 달러 수출의 탑 수상 △한국 경제를 움직이는 CEO 선정 △환경부 장관 표창 2회 수상 등 눈부신 활약을 펼치며 회사를 성장시켰다.

특히 광천중학교총동문회 장학위원장, 광천중학교골프회장 등을 맡아 모교 후배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는 등 아낌없는 지원과 고향사랑을 실천해왔으며, 은하면체육회 명예회장, 광천중학교 14회 동창회장을 역임했고, 지난 2020년에는 은하면 명예면장으로 위촉된 바 있다.

약 54년 전 수연, 철웅 씨와 같은 해외 봉사자들에게 도움을 받던 아시아의 조그만 개발도상국은 이제 다른 나라에 원조를 제공하고 전 세계에 봉사자들을 파견하는 국가로 성장했다. 젊은 날 홍성을 위해 봉사했던 수연 씨와 철웅 씨는 지난 23일 일흔을 넘긴 노인이 되어 감사패를 전달받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