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주의사총, 홍성의사총으로 둔갑 “홍주의병 두번 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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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의사총, 홍성의사총으로 둔갑 “홍주의병 두번 죽다”
  • 최선경 편집국장
  • 승인 2012.08.23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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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 홍주의사총’으로 변경 추진…홍성군 ‘뒷북’ 주민들 ‘비난’


문화재청이 지난해 국가지정문화재 사적 지정명칭을 변경하면서 ‘홍주의사총’을 ‘홍성의사총’으로 바꾼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군민들이 반발하고 있다.

문화재청은 지난해 3월 국가지정문화재 중 전국의 사적 444건의 지정명칭을 변경 예고했다. 이는 그 동안 사적 지정명칭의 부여방법이 통일된 기준이 없어 혼란스러웠던 것을 국민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명칭부여 기준을 마련하여 사적 지정명령 개선사업을 추진하기 위함이라고 공시했다.

이번 사적 지정명칭 변경의 특징은 역사적 문헌, 고증, 유적명 또는 전래되어 오는 ‘고유한 명칭’ 등에 지역명을 병기하여 문화재의 이해를 높이는 것을 기본원칙으로 삼고 명칭을 한글로 표기하되 한자를 병기하도록 했다.
그러나 군민들은 역사적 의미는 뒤로 한 채 단지 행정의 편의성만 강조해 ‘홍주의사총’을 ‘홍성의사총’으로 바꾼 것은 ‘홍주의병’의 역사적 의미를 훼손한 결과라며 이의를 제기하는 등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문화재청 담당자는 홍성군의 이와 같은 이의제기에 “지정명칭 변경은 문화재가 소재한 지방자치단체, 관계전문가의 자문, 문화재위원회의 검토 등을 거쳐 진행됐다. 또한 사적지의 역사성과 특성 등을 고려해 인접지역의 고분군과 도요지 등을 통합하여 명칭을 부여함으로써 문화재의 광역적 관리를 강화하고자 했으며, 사적의 역사적 성격 회복을 위해 명칭을 부여했다. 예고한 사적 지정명칭 변경은 30일 동안 지방자치단체, 소유자, 관리자 등 각계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최종적으로 확정한 것이라 절차상 문제는 없다”고 밝혔다.

홍주향토문학연구회 전하수 명예회장은 “제2차 홍주의병은 1905년 을사조약의 강제 체결에 대한 격분으로 일어난 홍주성전투를 말한다. 일제에 의해 희생된 수백 명에 달하는 의병들의 유해는 지금 ‘홍주의사총’에 묻혀 있다. 이들의 나라를 위한 희생을 기억해야 한다. 당시 매장된 분들은 ‘홍주’에서 싸우다 돌아가신 것이다. 홍주의병은 1905년에 일어난 사건이며, 이후 1914년에 ‘홍주’가 ‘홍성’으로 행정구역상 명칭이 바뀐 것이므로 현재 ‘홍성의사총’은 역사적 의미가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1914년 일제에 의해 홍주와 결성이 합쳐 만들어진 지명 ‘홍성’을 천년 이상의 유구한 역사를 이어오며 지역명으로 불려진 ‘홍주’로 되돌려야 한다. 만해 한용운, 백야 김좌진, 홍주의병 등 홍주의 반일 분위기를 잠재우고, 같은 충남지역에 위치한 ‘공주’와 일본어의 발음구별이 어려워 행정적 불편을 피하기 위해 1914년에 일제에 의하여 홍주군·결성군 및 보령군의 일부를 통합하여 홍성군이 됐다”고 덧붙였다.

문화재청 담당자는 “홍주의사총 뿐만 아니라 전국의 수백 개 사적을 동시에 기준에 맞게 바꿨다. 이미 고시한 부분은 임의적으로 바꾸기 어렵다. 홍성군에서 이의신청 소견서를 제출하면 문화재심의위원회를 열어 안건을 상정해 재검토의 과정을 거칠 수는 있다”고 밝혔다.

군 담당자는 “당시 문화재청에서는 공문을 통해 협조를 요청했을 뿐이다. 군에서 이 부분을 간과해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 잘못은 인정한다”며 “늦었지만 홍주의병의 역사적 의미를 되살려 고유 명칭인 ‘홍주’라는 이름을 되찾기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충청남도 및 문화재청의 담당자에게 문의한 결과 예고기간 등이 경과됐으나 이의 신청은 가능하다는 답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군은 ‘홍주의사총’ 명칭의 당위성을 충분히 설명하여 당초 문화재명인 ‘홍주의사총’에 홍성을 추가, ‘홍성 홍주의사총’으로 지정명칭이 변경될 수 있도록 이의신청을 제기하는 등 원래대로 명칭을 되돌리기 위한 방안 마련에 골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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