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을 다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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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을 다시보자
  • 조남민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11.19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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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살아가면서 단풍을 몇 번이나 볼까. 쉽게 생각해서 백세 인생을 살아간다고 할 때 단풍 구경 백 번 하면 죽게 된다는 것인데 과연 그러한지 한번 살펴보자. 태어나서 학생 때까지는 단풍이고 뭐고 없을 것이고, 20~30대도 취업과 결혼문제 등으로 단풍 구경은 쉽게 엄두를 내지 못한다. 40대도 자녀 양육, 내 집 마련 등으로 한숨 돌릴 틈이 없는 것이 현실이며,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나이 80세가 넘어가면 보행이나 건강상의 문제로 쉽게 멀리 나서지 못한다.

결국, 가을 단풍을 제대로 보면서 인생과 자연, 그리고 앞으로 다가올 겨울을 생각하는 연령대는 대략 50~70대 정도라고 봐야 한다. 횟수로는 30번. 즉, 이 숫자가 의미있게 단풍을 즐기며 진지하게 삶을 돌아보는 우리네 인생의 ‘단풍관람가능’ 횟수인 것이다. 물론, 아차 하면 놓치는 단풍이기에 일상이 바쁘거나 자연 따윈 TV로만 감상하는 사람도 있을 터이니 어쩌면 이보다 더 적을 수도 있다. 

그런가 하면 ‘인생 백년 사계절 설(說)’도 있다. 25세까지가 ‘봄’, 50세까지가 ‘여름’, 75세까지가 ‘가을’, 100세까지가 ‘겨울’이라는 것이다. 이 논리에 따른다면 70세는 단풍이 가장 아름다운 만추쯤 되고, 80세는 초겨울에 접어든 셈이 되는 것이다. 이렇다고 볼 때도 역시 75세까지가 단풍을 가장 잘 이해하는 나이라고 할 수 있으며, 동양에서와 같은 회갑 개념이 없는 서양에서도 대체로 노인의 기준을 75세로 보는 것을 감안하면 단풍은 어쩌면 인생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단풍(丹楓)은 기후 변화로 인해 식물의 잎에 생리적 변화가 일어나 녹색 잎이 붉게 변하는 현상을 말하며, 광범위하게는 황색 및 갈색으로 변하는 현상까지도 포함한다. 가을이 되면 나무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나뭇잎으로 가는 물과 영양분을 차단한다. 이 때문에 나뭇잎에 들어 있던 엽록소는 햇빛에 파괴되어 양이 줄고, 결국 나뭇잎의 녹색은 점차 사라지게 되는데, 대신 종전에는 녹색의 엽록소 때문에 보이지 않던 다른 색의 색소가 더 두드러져 나뭇잎이 다양한 색을 나타내게 되는 것이다.

어느 학자는 단풍이 붉게 물드는 이유에 대해, 숲에 있는 경쟁자를 제거하고 자신의 종족을 보존하기 위해 ‘안토시아닌’이라는 성분이 있는 단풍잎을 떨어뜨려 주변에 다른 종의 나무가 자라지 못하도록 방어막을 펴는 것이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그 성분이 어떠한 방법으로 다른 수종의 생장을 막는가에 대해서는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이지만, 우리가 주목할 것은 단풍의 그 화려한 아름다움 속에 이처럼 생존과 종족 보존을 위한 숨겨진 이면이 있다는 점이다. 관점을 사람이 아닌 나무 중심에서 보면 특히 그렇다.

해마다 가을이 오면 세상의 모든 나무는,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몸을 감싸고 있던 제 살 같은 나뭇잎을 강제로 떨궈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그야말로 찬 바람이 불 때마다 살기 위한 처절한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나뭇잎의 색깔이 변하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것을 즐기기 위해 전국의 명소를 찾아 다니고 있는 셈이다. 나무가 볼 때는 자신의 아픔을 즐기러 오는 많은 사람들이 이해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이 인간에게 주는 또 하나의 고마움이 가을 단풍이라는 것을 너무나 잘 알기에 계절의 한복판으로 들어가 단풍을 기어이 보고야 마는 것이다. 

바야흐로 만산홍엽(滿山紅葉). 말 그대로 온 산의 나뭇잎이 붉게 물드는 때다. 단풍이 주는 강렬한 유혹 때문에 문화예술인이 아니더라도 나무 그늘 아래서 시 한 수 짓고, 사진 한 장 멋지게 찍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는 시점이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홍성지역에서는 아기자기한 단풍명소들이 많이 있다. 

용봉산과 오서산은 숲속 곳곳이 울긋 불긋하고, 내포지역의 잔잔한 단풍도 제법이다. 청운대와 혜전대의 교정도 아름다움을 뽐내는 중이고, 홍성12경에 포함된 백야 김좌진 장군 생가, 만해 한용운 선사 생가, 이응노의 집도 어느새 물들고 있다. 홍성군청 느티나무도 ‘가을가을’스럽고, 홍주읍성 전체도 깊은 가을속으로 접어들었다.

기후 변화로 인해 우리나라의 계절이 점차 변하고 있다고 한다. 특히 봄과 가을이 짧아지고 혹독한 더위나 추위가 빈번할 것이라는 것이 기상청의 우려다. 실제로 사계절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는 것이 동네 어르신들의 말씀이다 보니 앞으로는 제대로 된 가을이나 봄날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또 하나의 가을이 우리 곁을 지나고 있다. 며칠 지나면 가을 ‘단풍관람가능’ 횟수가 또 하나 사라지게 될 것이다. 살면서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살 수는 없겠지만, 집 근처 단풍나무에게 잠깐 시간 내주는 건 약간의 성의만 있으면 되지 않을까? 다리가 떨릴 때 돌아다닐 게 아니라 가슴이 떨릴 때 돌아다녀야 한다. 이번 주말엔 마음껏 단풍을 봐야겠다.

조남민 <홍성문화원 사무국장·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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