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보험 재정 기금화, 무엇이 문제인가
상태바
건강보험 재정 기금화, 무엇이 문제인가
  • 이성복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11.24 09:3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정부와 여당이 오는 2024년부터 건보재정을 기금화하는 방안을 추진한다고 한다. 기금은 ‘특정 목적을 위해 특정한 자금을 신축적으로 운용할 필요가 있을 때 법률로 설치되는 자금’이다. 세입세출예산에 의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특별회계와 다르지만, 국가통합재정으로 관리되고 ‘국가재정법’의 적용을 받는다는 점에서는 일반회계·특별회계와 같다. 

건강보험은 전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국가사업이며 사회보험 중 지출규모가 가장 크고 막대한 국가 재정의 투입에도 불구하고 유일하게 국회 통제에서 제외돼 있다. 사회보험간 형평성 저해와 투명성 문제가 발생할 수 있으므로 기금화가 필요하다고 일부에서 주장한다. 건강보험이 기금화되면 기획재정부와 국회의 예산심의를 받는 등 통제가 강화될 것이다. 

건보재정의 기금화 논의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04년 5월 감사원에서 건보공단에 실시한 감사결과를 바탕으로 건보재정을 ‘국가통합재정’에 포함할 것을 요구한 것이 시초이며, 그 이후 같은 해 8월 국회예산정책처에서 건보재정에 대한 국회통제권 확보 차원에서 기금화를 주장하는 과정을 거치며 과거 정권에서도 줄곧 제기된 사안이다.

그러나 건강보험을 사회보험으로 운영하는 주요 국가에서는 정부재정통계에 건보재정을 계상하고 있지만, 기금화로 운영하고 있지는 않다. 건강보험은 다른 사회보험과 달리 건보공단을 보험자로 규정하고 가입자를 대리해 수입과 지출을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 국민연금과 산재보험은 해당 공단이 정부로부터 사업을 위탁받는 형태로 보험자는 정부이며, 고용보험은 국가가 직접 운영한다. 

현행 건강보험은 ‘당사자 자치·자율’의 원리에 따라 운영되지만 실제 운영에 있어 정부의 통제를 받고 있다. 정부의 통제는 보험료·급여결정 등 보험재정관리, 예산(안)의 편성과 운용, 경영정보 공개, 경영평가 등 건보공단 운영의 전반에 미치고 있다. 또 감사원 감사, 국회 국정감사 등 외부의 감사장치도 마련돼 있다.

보험 방식으로 ‘건강보험’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 독일, 일본, 프랑스, 벨기에, 대만 등 5개국 중 건강보험 재정을 ‘기금’으로 운영하는 나라는 없다. 대만은 보험자인 ‘중앙건강보험서’가 국가조직이어서 차이가 있으나 나머지 나라들은 보험자의 예산을 스스로 편성·운용하고 있으며, 건보재정의 주요사항인 보험료나 지출총액을 결정함에 있어 의회의 의결이 필요한 나라는 프랑스와 독일 두 나라이다. 프랑스는 건강보험 재정의 60% 이상을 조세로 투입하고 있고, 독일은 보험자(질병금고)간 형평성을 위해 연방법으로 ‘전국 단일 보험료율’을 정하도록 한 것일 뿐 두 나라 모두 연방의회의 건강보험재정 통제가 그 목적이 아니다.

기금화에 찬성하는 측의 주장은, 첫째, 4대 사회보험 중 국민연금, 산재보험·고용보험은 기금화해 국가통합재정에 포함 관리되는데 건강보험은 기금화돼 있지 않아 국회의 재정통제를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국가재정법’의 적용을 받게 한다면 국회의 심의·의결을 받음으로써 재정 운용에 효율성과 투명성이 확보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둘째, 건강보험은 저출산·고령화 사회에서 재정위험이 우려되는 주요 사회보험이므로 국회 차원에서 중장기 재정관리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 반면 건강보험 재정의 기금화에 반대하는 측의 논거는 첫째, 건강보험이 1년간 수입과 지출의 균형을 추구하는 ‘단기재정’으로 기금화보다는 재정상태에 따라 보험료와 수가의 인상·인하를 적시에 탄력적으로 할 수 있는 현행 방식이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초단기 재정운용’인 건강보험의 성격상, 보험료나 수가의 변동 시마다 기재부와 협의·조정, 국무회의 심의, 대통령 승인, 국회 심의·의결 과정을 거쳐야 하는 기금화가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또한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의 창궐, 세계금융 위기 같은 대공황의 발생 등으로 건강보험 급여비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거나, 보험료를 몇 달간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즉각적 대응이 어렵다는 것이다.

둘째, ‘보험의 방식’으로 운영되는 사회보험인 건강보험의 당사자 자치 원리가 훼손된다는 점이다. 기금화는 국가재정법의 적용을 받게돼 건강보험의 재정적자 등 발생 시 당사자 해결보다는 국가 책임과 국고 투입이 커지게 될 우려가 있다.

셋째, 현 시스템에서도 건보재정 운영의 민주적 운영과 투명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건보재정은 복지부와 기재부의 통제를 받고 있고, 건강보험의 주요사항은 ‘건강보험재정운영위원회’ 및 가입자와 공급자가 참여하는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충분히 심의되고 있으며, 국회 국정감사, 감사원 감사 등을 통해 관리·감독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므로 건강보험 재정 기금화는 건강보험의 특성과 기본원리, 해외사례 등을 충분히 고려하고, 각계각층의 의견수렴과 사회적 합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무엇보다도 건강보험재정에 대한 논의가 정치적 목적이나 이해관계를 떠나 건강보험제도의 발전과 지속가능성을 담보할 수 있는 방향으로 진행되길 희망한다.

이성복 <국민건강보험공단 이학박사·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