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소통 2차 방정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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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소통 2차 방정식
  • 변승기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2.12.09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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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회사에서 퇴근하고 돌아온 아내가 화난 얼굴로 남편에게 말했다. “여보, 나 회사 때려치우려고. 그 김과장 알잖아. 그 인간 때문에 도저히 못다니겠어. 사사건건 사소한 것으로 괴롭히고, 짜증나서 일도 못하겠고.” 남편은 아내의 말을 듣고, “여보, 당장 때려치워. 나 혼자 벌어도 충분히 살 수 있고. 그런 회사를 뭐하러 다녀. 당장 내일 때려치워.”

상상을 해보자. 과연 이 부부에게 차후에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남편이 아내의 불만에 공감을 해줘서 아내는 기분이 풀렸을까? 이때 아내가 원하는 것을 남편이 제대로 알아차렸는지 궁금해진다. 추측해보면 아내는 감정이 풀리지 않았을 것 같다. 아내는 자신의 현재 감정을 표현한 것이고, 남편이 나와 감정소통을 원하는 것이지, 실제로 회사를 관둔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아내에게, “그동안 당신이 아내, 어머니, 며느리, 직장인, 딸 역할 하느라고 많이 힘들었지. 오늘 저녁은 외식하는게 어떨까?”라고 말하는 것이 더 불편한 감정을 풀어줄 수 있는 말이다.

불편하고 불쾌한 감정은 시간이 지나면서 계속 쌓이고, 어느 한계점에 도달하면 한 번에 폭발하는 특성이 있다. 그러나 그 감정을 드러내고, 표현하고, 전달하면 약해진다. 필자는 몇 년 전에 좀 특이한 상담을 경험했다. 어느 내담자가 상담을 요구했고, 만나서 1시간 정도 그 사람의 말을 듣기만 했다. 필자는 말할 시간이 없었다. 폭포수처럼 흘러내리는 내담자의 연속적인 말을 그냥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1시간 정도 지나자 내담자는 상담을 잘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떠났다. 내담자의 힘든 감정 상태를 압력밥솥에 가득 찬 압력으로 비유한다. 그 내담자는 언어를 통해 그 강력한 압력(감정)이 빠지니까 혼돈상태가 정리되고, 여유 공간이 생겨 다시 이성적인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사람으로 돌아온 것이다.

특히 청소년은 감정을 먹고 성장한다. 청소년과 감정소통이 선제적으로 정리되지 않으면 의사소통은 이뤄지지 않는다. 청소년이 어른에게 공격적인 말과 행동을 하는 이유는 그 어떤 일과 관련된 감정이 아직 소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말을 듣지 않는 청소년은 지금 앞에 있는 어른과 감정소통이 안 됐다는 뜻이다. 아무리 올바른 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 그만큼 감정소통은 청소년에게 중요한 요소다. 청소년과 올바른 의사소통을 하려면 먼저 나를 좋아하는 감정을 만들어줘야 한다. 좋아하면 판단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불편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 힐링이 필요하다. 힐링은 대부분 감정을 전환하고 감정에 관해 새로운 경험을 통해 해소하는 과정이다. 모든 연령대가 다 힐링이 필요하다. 스트레스가 쌓여가는 청소년은 더 힐링이 필요하다. 몇 주 전에 K-POP 청소년 페스티벌이 있었는데 많은 중학생이 관람했다.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소리 지르고, 호응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그 순간, 학생들이 스트레스가 많고 뭔가 답답한 감정을 해소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소리를 지르거나 통곡을 하면 카타르시스가 생긴다. 빠져나가는 것이 생기므로 다시 뭔가를 채울 공간이 생긴다. 직장생활에 휴가라는 제도가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잠시 휴식을 통해 재충전하고 현재 하는 일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함이다. 

청소년에게도 소리 지르고, 웃고, 공통화제를 만들어주는 것이 일종의 힐링이다. 청소년과 관계된 학교나 청소년 기관, 가정은 청소년에게 맞는, 청소년이 원하는 힐링 프로그램을 시행하는데 음악을 매개로 하면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음악이 감정을 해소하고 정화하는 역할을 할 수 있다. 음악이 청소년의 감정을 잔잔하게 만들 수 있고, 그래야 소통할 수 있는 기초가 조성되며 그 후 타인과 소통할 수 있게 된다. 내 옆에 있는, 나와 같이 살고 있는 청소년과 의사소통을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감정소통이 선행돼야 한다.

변승기 <한국K-POP고등학교 교사·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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