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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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대하겠습니다”
  • 황희재 기자
  • 승인 2022.12.29 08:32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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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기자들은 왜 기업으로 떠나는 것일까” 지난 8월 언론비평지 <미디어 오늘>에 실린 기사 제목이다. 기사 본문에는 “기자라는 직업을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혹은 ‘콘텐츠 전문가’가 되기 위한 ‘인생 커리어’의 한 부분으로 바라보는 측면도 있다”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나 역시 그랬다. 기사를 통해 세상을 조금 더 나은 곳으로 바꾸겠다는 야심보다는 기자로 일하며 쌓게 될 경험과 글쓰기 노하우를 통해 안정적인 인생의 항로를 개척하려는 욕심이 더 컸다.  

이미 사양길로 접어든 언론계, 그중에서도 조그만 지역사회의 소식을 담아 매주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풀뿌리 언론. 정성을 쏟아 일을 하면서도 ‘정말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구심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았다. 몇 날 며칠을 공들여 작성한 기사보다 지역에 유명 프랜차이즈 매장이 들어섰다는 짧은 기사 한 편이 더 큰 인기를 끌었고, 인구도, 사건 사고도 그리 많지 않은 지역에서 매번 기삿거리를 찾아야 한다는 부담감은 베갯머리까지 쫓아와 나를 괴롭혔다.

신문 마감일인 매주 화요일에는 늦은 밤까지 출력된 교정지를 보며 오류를 바로잡고 편집기자의 모니터 앞에 옹기종기 모여 썩 괜찮은 제목이 나올 때까지 온갖 단어와 표현들을 수집했다. 이따금씩 나는 모두가 잠든 시골마을에서 일에 몰두해있는 동료들을 유리창 너머로 바라봤다.

그동안 수많은 밤을 고민으로 지새웠을 선배 기자들의 잔상도 눈앞에 스쳐 지나갔다. 답답함의 한숨, 안도의 한숨, 후련함의 한숨, 여러 감정이 뒤섞여 허공에 뿜어진 담배 연기를 떠올렸다. 때로는 ‘지금 이 순간보다 의미 있는 일을 할 기회가 내 인생에 다시 주어질까?’라고 자문하기도 했다.

순진하게 자꾸 정이 들었다. 아무 연고 없는 지역에서 깨진 유리병이 나뒹굴고 밤마다 고성방가가 난무하는 건물의 단칸방에 살고 있으면서도 어느 순간부터 ‘홍성’이라는 공동체 속에 내가 포함된 것만 같았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홍성에 얼마나 특산물이 많은지, 홍성이 얼마나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한 지역인지 자랑스럽게 떠벌리곤 했다.

내가 생각하는 지역사회의 공익적 가치를 우선순위로 삼고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힘들다고 징징거리는 사이 해는 넘어갔고 올해 가장 큰 이슈였던 대통령 선거와 지방선거도 순식간에 지나갔다.

올겨울 가장 매서운 한파가 불어닥친 요즘, 몸에 경고등이 들어왔다. 애써 외면했지만 부쩍 증가한 체중과 흡연량, 나이 서른에 얻게 된 흰머리와 고혈압, 무좀으로 갈라진 발이 보내는 경고 신호였다. 내가 가장 먼저, 그다음이 관계, 맨 마지막이 일이 돼야 한다는 행복한 삶의 기본수칙을 깡그리 무시한 대가였다.

군대에서 지정된 장소를 지키는 경계근무는 아주 오래전부터 끊임없이 교대를 반복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영속되고 있다. 이름 모를 어느 병사가 지키고 있는 초소는 한때 내가 서 있던 초소였고, 누군가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버지가 발을 딛고 있던 장소였다.

나는 기자라는 직업을 우리 사회와 공동체를 위해 두 눈 부릅뜨고 감시하는 ‘경계근무’로 이해하기로 했다. 쉼 없이 보초를 설 순 없으니 교대가 필요하다. 열정과 체력이 전부 소진된 채 욕심만 가지고 기자생활을 고집하는 것은 나 자신에게도, 독자들에게도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올해를 끝으로 다사다난했던 기자생활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평범한 청년으로 돌아가 쓰기와 미루기를 반복해온 출판작업부터 마무리해볼 계획이다.

근사한 학위도, 봐줄만한 경력도 없던 청년에게 기자로서 일할 기회와 신뢰를 보내준 홍주신문 식구들에게 지면을 빌려 감사인사를 전한다. 홍주신문 독자 여러분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홍성군민 여러분!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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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재짱 2022-12-30 09:38:30
황희재 기자님이 떠난다고 하니 아쉽읍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좋은 일만 있으시길 바라겠읍니다 .
응원합니다 ...!

청산 2022-12-29 22:50:46
고생하셨습니다.
새로운 일터에서도
언제나 처럼 파이팅 하세요
감사해요 당신께서 진심으로 보내신 시간들
기억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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