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암 당산제(甕岩 堂山祭)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자
상태바
옹암 당산제(甕岩 堂山祭)를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자
  • 김주호 <광천제일장학회 이사장>
  • 승인 2023.01.12 08: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옹암 당산제의 유래 및 기원
광천읍 옹암 당산제의 형성내력이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하여는 구체적으로 알려져 있지 않고 또 이를 입증할 만한 명확한 근거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그저 막연히 고려시대부터 시작됐다고 구전으로 전해오고 있으나 이 역시 전해오는 이야기일 뿐이다. 그러나 맨 처음에 당제를 지내기 시작한 구당(舊堂) 말랭이 느티나무(충남도 지정 보호수)가 수령 500년이 넘는 것으로 보아 적어도 조선 초기부터 당제가 시작됐음을 능히 알 수 있다. 따라서 당제의 내력(역사)이 500년 이상이 됐음을 알 수 있다.

■ 목적
으레 그렇듯이 옹암리 당제는 포구가 활성화됐던 옛날부터 해상안전과 풍어, 마을의 번영과 안녕을 위한 기복신앙에서 출발했다, 즉 물질적 풍요를 바탕으로 경제활동과 장시(場市)의 번영을 구가하고 마을 주민들에겐 질병이나 환액을 몰아내주며 가정의 안락 효우(孝友)를 기원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 제의(祭儀)의 진행 및 규모
매년 음력 정월 6일에 시작된 당제는 지금은 많이 간소화됐지만 1960년대 이전에는 1주일 동안 진행됐다. 제의 수행의 중심인물은 당주, 도화주, 부화주, 전화주, 무당 3~5명 등이다. 부화주와 전화주는 도화주를 보좌하는 역할을 하면서 걸립(乞粒) 모금을 통해 당제 기금을 확보하고 제수를 마련한다. 이들의 역할은 해방 전후 무렵만 해도 소 1마리를 잡았기 때문에 비용이나 제의 규모가 컸다. 현재는 제의 축소로 당주, 도화주, 무당(1명)이 중심역할을 하고 있다. 

1960년대 이전의 당사(堂祠)는 현 옹암 영산당(靈山堂)의 인근이자 당산 신목(神木) 이웃에 위치한 옹암 당사 또는 구당사(舊堂祠)라 했다. 영산당 내부에는 산신도(山神圖마을 전체의 수호신)와 당사 조부모도(祖父母圖 당할아버지, 당할머니 水神겸 경로효친의 상징)벽화가 있는데 도교와 유교 사상이 혼합됐음을 알 수 있다. 

또 왼쪽에 5방 대장군 벽화가 있는데 장군 1명은 말을 타고 있고 4명의 장군은 뒤에 서 있는데 말을 타고 있는 장수가 임경업 장군이다. 임경업 장군은 서해를 지킨 장수로 특별히 받드는 장군이다(神格化된 최영 장군, 남이 장군과 같은 맥락). 그런데 일반적으로 5방신장(五方神將)은 동방 靑帝大將軍, 서방 白帝大將軍, 남방 赤帝大將軍, 북방 黑帝大將軍, 중앙 黃帝大將軍을 말하는 것이지만 임경업 장군을 主神將으로 모시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이 최영 장군, 남이 장군과 같이 신격화된 장수이기 때문이다. 

당일 6시경에 당주의 집에서 당주와 무당 등 제관 일행과 용대기 뱃기를 든 선주(船主)들이 용대기를 따라 당사 주위를 5바퀴 돈 다음 기를 한 줄로 세우고 무당이 부정풀이를 통해 정화의식을 수행하고 당집에 들어가 유교식 제사를 지낸 다음 선주들을 대상으로 어망굿, 선주굿을 한다. 그리고는 선주들의 뱃기(船旗)에 공수를 내려주며 안전과 풍어를 기원한다.
 

■ 제의 주관자(祭儀 主管者)
매년 섣달 스무날에 대동회를 개최하고 여기에서 제관을 뽑는데 당주, 도화주, 부화주, 전화주로 뽑힌 사람은 제의가 끝날 때까지 바깥출입을 삼가고 부정한 것을 보지 않고 부정한 행동(부부 동침, 부모 불효 등)을 해선 안 된다. 제관과 당집 주변에도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려놓아 부정이 타도록 하지 않고 출산이 임박한 부인들은 다른 곳으로 피신을 시킨다. 마을에 초상이 났을 때도 당제를 미루지 않고 진행했으며 초상집에 다녀온 사람은 당제에 참여시키지 않았다.
 

■ 현재의 당산제
1975년 옹암포 항구 폐쇄 이전에는 전술한 바와 같이 당제가 대대적으로 진행됐으나 그 이후 당제를 중지했다. 그런데 당제를 중지한 후 마을 사람들에게 원인을 알 수 없는 이런저런 잦은 불행이 잦아들자 산신님 ,5방 신장님, 본당 조부모님들께서 크게 노하셔서 잦은 횡액이 들곤 하니 당제를 복원해야 한다는 중론에 따라 1985년 마을 노인회가 중심이 돼 당제를 복원한 후 오늘에 이르고 있다. 

물론 1975년 이전과 같이 대규모로 며칠씩 하지 않고 정월 초엿새 하룻 동안에 당제를 진행하고 있다. 한때는 마을 개발위원회에서 주관하기도 했으나 지금은 마을 부녀회와 이장단이 주관해 진행하고 지난해부터는 읍사무소, 농협 등에서 적극 후원하고 있다. 항구가 폐쇄돼 뱃길이 끊어졌지만 당산제의 내용은 옛날과 대동소이하다. 즉 규모만 축소됐을 뿐 내용은 그대로다. 

배가 안 들어오니 풍어를 기원할 필요가 없다고 할 수 있으나 그게 아니다. 새우가 많이 잡히도록 지성으로 빌고 있어 예와 다름이 없다. 광천은 토굴새우젓으로 유명하다. 새우는 남해안과 서해안 일부에서 잡히지만 새우젓을 담가 숙성시키는 것은 광천만이 갖고 있는 특색이다.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새우젓은 냉장창고 또는 야적상태에서 숙성시키는데 광천새우젓은 자연 그대로의 토굴에서 숙성시킨다. 

당사가 위치한 당산 아래쪽에 20여 개의 토굴이 있는데 연중 일정한 온도(14℃ 정도)를 유지하고 날마다 오후에 불어오는 해풍을 맞고 풍토와 어우러진 광천토굴새우젓은 맛과 향, 영양가 만점으로 상표등록(土窟안愛)까지 마친 상태로 해외에 수출까지 하고 있다. 옛날에는 그저 여러 종류의 바닷물고기가 많이 잡히라고(풍어) 기원했지만 지금의 풍어 기원은 바다 새우이다 따라서 풍어를 기원하고 마을의 안녕을 비는 풍습과 내용에는 변함이 없다. 
 

■ 광천토굴새우젓이 다른 지역의 새우젓과 다른 점
일반적으로 맛, 영양가, 향이 다른 지역에서 생산되는 새우젓보다 뛰어나다고 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의구심을 갖고 있다. 즉 새우젓이 어디서 생산되든 그게 그거지 무슨 특별한 점이 있느냐는 것이다. 얼핏 이해가 안 된다는 얘기다. 알기 쉽게 예를 들어 비교해 보자. 햇빛에 말린 쌀과 전기로 말린 쌀로 밥을 지었을 경우 그 맛과 영양이 다른 점을 쉽게 알 수 있다. 즉 광천토굴새우젓은 햇빛에 말린 쌀이고 다른 지역의 새우젓은 전기로 말린 쌀로 보면 된다. 

그렇다면 다른 지역에서도 토굴을 파고 그곳에서 새우젓을 숙성시키면 될 것이라 생각하고 전국 여러 해안지방에서 토굴을 파고 새우젓을 숙성시켰더니 새우젓이 모두 썩었다는 얘기가 있다. 설사 숙성에 성공한다고 해도 광천새우젓보다는 맛, 영양가, 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우리가 잘 아는 영광굴비는 영광 앞바다에서만 잡은 조기가 아니다. 부산 앞바다에서 잡은 조기를 영광에 가져와서 건조시키면 똑같은 영광굴비가 된다. 영광 앞바다에서 잡은 조기를 부산에 가서 건조 시키면 영광굴비와 다른 굴비가 된다. 즉 영광만의 기후, 풍토, 해풍이 영광굴비를 만든다. 

같은 맥락으로 광천이 아닌 다른 지역에서 새우젓을 숙성시키면 광천새우젓보다 질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다시 말해 광천만의 기후, 풍토, 해풍이 있어야 광천과 같은 새우젓이 생산될 수 있다는 얘기다. 

강원도 옥수수는 어른 팔뚝만하고 영양가도 만점이다. 그러면 그 씨를 갖다가 충청도에 심으면 강원도 옥수수와 같은 생산품이 나오느냐, 아니다. 강원도 옥수수 씨라 해도 강원도만의 기후 풍토, 바람이 있어야만 그런 옥수수가 나오기 때문에 충청도에 심으면 우리가 흔히 보는 충청도 옥수수가 될 뿐이다. 

새우젓 얘기가 나왔으니 한마디 덧붙이겠다. 광천지역의 새우젓 점포가 100개가 넘는다 그러다 보니 새우젓 상인들간에 과열 경쟁이 벌어지기도 하고 극히 일부 상인들은 토굴새우젓이 아닌 냉장숙성새우젓(다른 지역의 새우젓과 같고 생산비용이 토굴새우젓보다 약간 저렴)을 팔면서 토굴새우젓이라 속이는 일도 있다 긴 말 하지 않겠다. 앞으로 이런 상행위가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고 상인들끼리의 과열경쟁도 없어야 한다. 모든 상인들이 “광천의 토굴새우젓은 어느 가게에 가도 모두 똑같고 값도 같습니다. 옆집에 가서 사셔도 됩니다” 이렇게 돼야 한다.
그래야 광천이 발전되고 광천을 찾는 고객들에게 화합과 믿음을 주는데 그렇지 못할 경우 공멸한다는 엄중한 경고를 명심해야 할 것이다. 매년 열리는 새우젓 축제도 바로 옹암 당산에서부터 시작되는 만큼 남을 배려하는 소중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
 

■ 당제의 발전방향
이미 전술한 바와 같이 옹암 당산제는 500년이 넘는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갖고 있는 우리 고장의 중요 민속행사이다. 우리나라 고유의 풍속함양과 민속 문화를 계승 발전시킨다는 차원에서 보더라도 본 당산제가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됨이 마땅하다고 사료된다. 특히 본 당산제는 충남도 지정 보호수 앞에서도 당제를 병행 진행하는 만큼 본 옹암 당산제가 중요민속행사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민과 관이 함께 노력해야 할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