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이라는 아포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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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이라는 아포리아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2.09.13 11:30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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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가 지속되어 오면서 성에 대한 집착이 관심 밖으로 밀려난 적이 없다. 그것은 동물들이 발정기에만 본능적 충동에 따라 교미하는데 비해, 인간은 동물적 본능 이외에도 시도 때도 없이 쾌감을 추구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미 프랑스의 선사시대인들은 로셀(Laussel)의 바위 부조(浮彫)에 성적 결합에 몰두하고 있는 두 남녀를 등장시키고 있다. 특히 라스코 동굴벽화에 새 얼굴 모양의 사내가 성기를 곧추 세운 채, 죽은 들소 옆에 누워있는 모습은 리얼하다. 이 그림은 일반적으로 이듬해 더 많은 동물을 사냥하게 해달라는 샤먼의 풍요제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되었지만, 조르주 바타이유는 『에로스의 눈물』에서 ‘성과 죽음과 종교의 일치’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하여 통설(通說)을 뒤집고 있다. 그 시대의 호모사피엔스가 금기 없는 ‘에로티즘’에 탐닉했지만, 그들은 곧 이 천국에 드리워진 어두운 그늘을 인식하여 에로티즘을 종교와 연결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것으로 보아 선사시대인들에게도 성문제는 삶의 근원적인 문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아직까지 우리사회도 동물적 본능에 충실한 성폭력이 난무하고 있다. 그것도 어린이를 유괴하여 제 욕심만 채우려는 수심(獸心) 가득한 성폭력자의 모습은 발정기에 이른 하이에나를 보는 듯하다. 이들이 저지른 성폭력 내용들은 한마디로 ‘인간이 아니 무니다’라는 요즘 유행하는 개그 대사로 씁쓸하게 대체하고 싶다.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나타난다’라고 고야가 말했던 것처럼 인간의 내면은 이성과 광기의 각축장인지도 모른다. 이성이 광기를 억누르며 프로이트가 말한 ‘초자아’의 법칙에 따라 살아가는 것이 보통사람들의 삶이다. 그러나 성폭력자들의 이성은 보통사람들의 이성과는 다른 것처럼 보인다. ‘싸이코패스’들은 성폭력을 당한 당사자들이 자신과 같은 쾌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착각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성장하면서 잘못된 ‘사회화’(socialization)과정을 통과한 결과이다.

정신과 의사이며 정신분석학자였던 쟈크 라캉에 따르면 인간은 태어나 어머니의 젖을 빨면서, 심장소리를 들으면서, 눈을 바라보면서, 말을 배우면서 세상을 배워 간다. 어린이에게 어머니는 우주이며 내가 어머니이고 어머니가 나라고 생각하는 ‘상상계’에서, 세상의 질서, 관습, 예의범절 등과 같은 ‘상징계’로 인간은 옮겨간다. 그러나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옮겨가는 과정에 문제가 발생하면 정상적 인간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세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라는 우리나라 속담처럼 말을 배우는 성장기가 중요하다. 말 배우는 성장기에 정상적 환경에 놓여 있지 못하면 정신질환 및 사회 문제아로 성장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상상계는 본능의 세계이고 상징계는 질서의 세계, 현실의 세계이다. 상상계는 지나오면 되돌아갈 수 없는 ‘자유의 다리’와 같은 곳이다. 그러나 인간은 힘들고 이성이 약해지면 늘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울기만하면 모든 것을 채워주었던 ‘엄마의 세계’를 떠나 ‘아버지의 법’이라는 상징계로 스무스하게 진입하여야 평범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러나 상징계로 진입하지 못하고 상상계에 서성거리는 퇴행(退行)은 그들의 미래를 어둡게 한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김길태도 불우한 어린 시절을 통과했다. 그의 양부모가 부산의 어느 교회 앞에 버려진 아이를 데려 왔다. 그래서 이름도 길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의미인 길태라고 붙였다고 한다. 그는 성폭력, 강간, 살인의 혐의로 교도소를 드나들었고 ‘사이코패스’라는 판정을 받았다. 그에게는 선악의 구별도 희미해 보였다. 얼마 전 나주에서 잠자던 어린이를 납치하여 성폭행 한 고종석도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남의 물건을 훔치는 도둑질에 익숙해 있었고, 그가 자란 동네에서조차 추방된 사람이다. 다른 성폭력자들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하여 사회의 비행자로 남는 것은 아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회의 존경받는 인물들이 얼마든지 많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의 공통점은 불우한 어린 시절이 트라우마로 그들의 무의식속에 남아 있다는 사실이다. 상상계에서 상징계로의 전이(轉移)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성장기가 중요한 이유이다.

모든 사람이 좋은 환경과 훌륭한 부모 슬하에서 자랄 수는 없지만, 성범죄 및 폭력, 자살 등을 근본적으로 예방하기 위해서는 따스한 가정이 필수적이다. 가족들이 오순도순 모여 앉아 하루를 이야기하는 ‘저녁이 있는 삶’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가장들은 먹고살기 위하여 전쟁터같은 직장에서 밤늦게까지 뛰어다니고 있다. 주말에만 잠시 아이의 얼굴을 보는 가장들이 너무 많다. 가정파탄으로 인한 가정의 해체는 인간의 불안심리를 증폭시킨다. 가정을 잃은 사람들은 거리를 떠돌며 사회의 낙오자로 전락하고 있다. 그래서 민생 안정이 사회에 필요한 이유이다.

성폭력자들에게 강력한 처벌도 뒤따라야 하겠지만 이들의 정신적 치료에, 건강한 가정의 복원에 사회가 큰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성폭력이라는 아포리아(難題)를 해결할 수 없다. 성폭력은 어린 시절의 정신적 트라우마에서 시작되며, 반복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홍주일보·홍주신문 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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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현기 2012-09-18 09:46:01
김상구 교수님 멋지시무니다.

가을하늘 2012-09-14 13:01:01
아이가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야자와 학원이 겹치며 토 일도 없는 생활에 저녁이 없는 삶이어서 아이ㅘ 더 거리감이 있는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라는걸 알면서도 아들 얼굴만보면
공부...자동말인데...갑자기 글을 읽고 겁이 나기도 합니다.

요즈음 겁이 더럭 나기도 합니다.
전혀 아닐거라고 생각하지만...난무하는 뉴스에 생활하기도 무섭고 엘리베이터를 탈때도 겁이나고...참 세상이 어려워집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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