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룡산을 다시 보자
상태바
청룡산을 다시 보자
  • 조남민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3.05.19 08:3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성의 청룡산(靑龍山, 236m)은 갈산 와룡천의 용담에서 볼 때, 푸른 용이 주변 경치를 구경하는 듯 산줄기가 구불구불하게 생겼다고 해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실제 산길을 걸어보면 용의 등을 밟고 가는 느낌을 쉽게 받을 수 있다. 홍성에는 이름난 명산이 많이 있는데, 금북정맥의 최고봉(금자봉)이 있는 오서산이 있고, 남한의 금강산이라고 불리는 용봉산, 홍성의 진산인 백월산, 최영 장군의 전설이 남아있는 철마산, 그리고 봉수산도 있다. 

결성면과 서부면에 걸쳐있는 청룡산은 그리 높지 않고 마을과 가까운 곳에 있어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산이지만 분명 ‘명산’에 속한다. 산의 동북쪽으로는 일제 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며 불교시인인 만해 한용운(韓龍雲, 1879~1944) 선사의 생가지가 위치해 있다. 민족대표 33인 중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의 공약 3장을 작성했고, 끊임없는 독립운동을 펼치다 서울 심우장에서 입적한 우리지역의 역사인물이다. 인근 마을에서 태어나신 백야 김좌진(金佐鎭, 1889~1929) 장군은 독립군 총사령관으로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끈 위대한 인물이다.

동쪽의 산 중턱에는 천년고찰인 ‘고산사’가 자리잡고 있다.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이며 특히 대웅전은 보물 제399호로 지정돼 있는 중요 문화재이기도 하다.

청룡산의 남쪽으로는 결성향교가 있는데, 1010년에 처음 세워져 여러 번 고쳐 지어진 것이 현재의 모습이 됐다.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제기고 등을 갖추고 있고 공자를 비롯한 선현 27분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지방 교육기관이다. 

일제 강점기였던 1914년, 의병의 강한 저항이 있던 홍주(洪州)의 정체성을 말살하려는 의도에 따라 홍주목의 ‘홍(洪)’과 결성현의 ‘성(城)’을 합해서 지금의 홍성(洪城)으로 바꿨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그만큼 옛 결성현은 동헌과 향교를 갖추고 인근 지역을 관할하던 역사가 있는 고을이었다. 동헌의 바로 밑에는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던 형장청(刑將廳)만 현재 남아 있으나 결성읍성 내에는 17개의 관아 건물이 있었다고 한다.

청룡산의 서쪽에는 임득의(林得義, 1558~1612) 장군의 묘역과 사당이 있다. 임득의 장군은 이몽학의 난(1596년)때 집안사람과 의병 800여 명을 모아 홍주성에서 홍가신 목사, 박명현, 최호, 신경행 장군 등과 함께 반란군을 진압해 청난 5공신에 올랐다. 묘소 주변에는 충절이 느껴지는 낙락장송과 위패를 모신 정충사(靖忠祠)가 있으며 입구에는 신도비가 서 있다.

이 밖에도 청룡산 주변에 지산 김복한 선생을 모시고 있는 추양사, 남당 한원진 선생의 위패를 모신 양곡사가 있는 것을 생각하면 ‘청룡’이 괜히 붙여진 이름이 아님을 알게 된다.

그런데 얼마 전 평화롭던 우리 홍성에 뜻하지 않은 큰 산불이 발생해 우리 군민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혔다. 53시간 동안 계속된 산불로 50여 주택이 소실되고, 이재민 91명, 산림면적 1337ha가 피해를 입는 등 총 287억 원의 재산피해가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으나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될 만큼의 커다란 사고를 처음 접하는 우리 홍성군민들이 산불기간 동안 보여준 의리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산불현장으로 달려가 힘을 보탰지만 특히 청룡산의 중턱에 있는 고산사가 위태롭다는 SNS가 퍼져나가자 밤낮 가리지 않고 뛰어간 사람들이 수 백명에 이른다. 무려 3일 동안 물 호스를 메고 청룡산을 오르내리며 문화재를 지켜내느라 고생한 소방관계자 및 공무원, 의용 소방대원, 지역 주민들 덕분에 정충사 주변도 무사할 수 있었다. 

이번 화재로 서부면의 거의 대부분 마을이 피해를 입었고 결성면도 피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임득의 장군의 후손께서 정성들여 가꾼 청룡산 명품 소나무 숲도 모두 재에 그을렸다. 20여개의 돌탑 주변으로 사색하기 좋았던 능선길과 서해바다가 조망되는 망대봉 길도 화마를 입었다.

안타까운 시간이 속절없이 흐르고 있다. 그 누구보다도 많은 마음 고생을 하신 피해주민들도 이제 마음을 추스르고, 생업과 생활을 위해 힘을 내야 한다. 마침 산불지역 재건을 위한 다양한 의견과 아이디어도 많이 생겨나고 있는 중이다. 동시다발적으로 산불 피해를 입었던 전국다른 지역의 사례도 살펴보며 우리 지역에 맞는 좋은 방안을 찾아 지혜를 모아야 한다. 

홍성산불의 어쩌면 중심에 있었던 청룡산은 홍성 서부지역의 배후에 든든히 자리하며 결성의 역사와 서부의 문화관광을 연결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산이다. 

청룡산, 작지만 결코 작은 산이 아니다. 홍주 유림의 정신이 녹아있는 부해정도 청룡산과 맥이 닿아있다. 이번 화재로 비늘이 모두 타버린 청룡산에 비늘을 새로 입혀야 한다. 푸른 숲을 다시 가꿔 용을 살려내는 일과, 산이 품고 있는 역사문화에도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조남민 <홍성문화원 사무국장·칼럼·독자위원>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