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넘게 장애인 업무 보다가 어느새 투사가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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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넘게 장애인 업무 보다가 어느새 투사가 됐어요”
  • 최선경 편집국장
  • 승인 2012.11.01 11: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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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힘, 세상을 바꾸는 작은 힘의 시작]홍성군장애인복지관 장미화 사무국장




여성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다. 남성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아가는 우리 이웃들이다. 일터에서, 가정에서 평범한 삶을 살아가며 세상을 바꾸는 일에 작은 힘을 보태는 여성들을 만나본다.
<편집자 주>


이름처럼 얼굴도 마음도 아름다운 장미화(43. 홍성읍 학계리) 사무국장은 시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3남매를 키우고 있는 좌충우돌 대한민국 평범한 맞벌이 주부다.

지난 1995년 홍성사회복지관에서 재가복지 업무를 6년간 하다 2001년 장애인복지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대학교 1학년 때 첫 자원봉사활동을 장애인 시설로 나갔어요. 그곳에서 고아로 발견된 한 아이가 비록 장애를 갖고 있지 않았어도 장애인시설에 보내지면서 정상적으로 성장하지 못하는 현실을 봤어요. 멀쩡한 아이로 왔다가 장애인이 된 아이를 보면서 우리나라 복지수준에 큰 충격을 받았고 결코 장애인시설에서는 일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죠”

그러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11년 째 장애인복지관에서 근무하면서 ‘아, 이게 내 숙명이구나’ 생각하게 됐단다.

“이것저것 떼고 첫 월급을 받아보니 38만원이었어요. 그땐 정말 도망가고 싶었어요. 가슴 아픈 사연을 지닌 사람들을 만나면 내가 무슨 죄를 지어 이런 일을 겪나 생각한 적도 많았답니다”

장 사무국장은 자신의 일에 후회한 적도, 그만두고 싶은 적도, 내 자식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채 이게 무슨 짓인가 하는 자괴감에 빠진 적도 수차례라고 고백한다.

“어느날 자원봉사자 한 분에게 ‘왜 이런 일을 하세요?’라고 물으니, 그분께서 장애인들은 하나님이 보낸 천사들인데 우리가 함부로 대접하지 말자고 하시더군요. 그분의 말씀을 듣고 아차 싶었어요. 다시 힘을 얻었죠”

말도 빠르고 강직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이야기를 나눌수록 그녀에게선 정 많고 여린 구석이 엿보인다.
“보통 사회복지사들은 착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알려져 있죠? 장애인 업무를 하면서 선한 일, 착한 일로는 해결하지 못하는 일들이 너무 많았어요. 싸우지 않고 거저 얻는 게 없다는 걸 배웠을 정도에요. 이 일을 10년 넘게 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어느새 투사가 돼 있더군요. 한편에서는 굳이 문제를 들춰서 이슈화 시킨다고 비판도 합디다”

장 사무국장의 말에 따르면 홍성군 내에서도 2002년부터 4~5년 간 장애인 성폭력 사건이 지속적으로 발생했다고 한다. 피해 장애여성들에겐 인권이 없었다. 속만 터졌다. 가해자들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정도의 가벼운 형량이 떨어졌다. 싸우다 지쳐 모르는 척 눈을 감아 버렸단다. 그러다가 얼마 전 서부에서 일어난 지적장애 일가족 성폭력 사건을 겪으면서 장 사무국장은 그때 열심히 대처하지 못한 벌을 요즘 더 크게 받는 것 같다며 속상해했다.

“여성가족부, 법무부, 보건복지부, 경찰청 등 여기저기 다 쑤시고 다니면서 민원을 제기하고 도와달라고 요청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증거가 없어 가해자를 처벌할 법이 없대요. 그러면 ‘법을 만들어 주세요’라고 했죠. 인권이라는 게 일단 있어야 지키는데 그것조차 허락되지 않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고, 제발 장애 여성들에게 인권이라는 옷을 입혀 달라고 사정했어요”

장 사무국장은 지적장애 여성들의 성폭력 문제를 이상한 잣대를 들이대며 엉뚱한 방향에서 바라보는 시각들이 종종 있어 안타깝다고 털어놓는다.

“성폭력은 살인보다 더 잔혹합니다. 여성의 성(性)을 죽이는 행위니까요. 농어촌 지적장애 여성 피해자들을 위한 여러 가지 대책들이 시급히 법과 제도로 보완돼야 합니다. 성폭력이 뭔지도 모르는 피해자들을 데려다 취조하듯 피해사실을 확인하는 현재 시스템으로는 가해자들에 대한 제대로 된 처벌이 내려질 수가 없는 실정이지요”

매주 화요일 저녁, 그녀는 커피 향기에 취해 산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사연인즉 충남도청 신청사에 장애인들이 운영하는 희망카페가 들어선다는 소식을 듣고 혜전대 호텔조리 외식계열 이재철 교수의 도움으로 ‘중증장애인 바리스타(함께 걸음) 교육과정’을 개설했다. 현재 8명의 장애 청소년들이 바리스타가 되기 위한 피나는 노력을 하고 있다.

“김호현 관장님께서 장애인을 위한 바리스타 과정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더니 혜전대 이재철 교수님께서 학교도 사회도 건강해지려면 우리가 함께 나눠야 한다며 흔쾌히 재능과 시간을 기부해 주셨어요. 대학에서는 실습공간과 기자재를 지원해 주시고, 약간의 재료비는 농협에서 지원받았어요. 장애인들이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는 이런 교육이 앞으로도 꾸준히 만들어졌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장애인을 돕는다는 표현을 제일 싫어한다는 장 사무국장은 “장애인들을 돕는다는 자만심이 슬며시 생기거나, 왠지 다른 사람과 비교해 초라하고 위축된 기분이 들면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아래 사람 없다’는 말을 되새긴다”고 씩씩하게 말했다.

한 시간 남짓 진행된 인터뷰 시간 내내 5분 걸러 한 번씩 전화벨이 울릴 정도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는 그녀는 “하루만 절 따라다니면 특종 몇 개는 잡을 수 있을텐데요?”라며 퇴근 시간이 한참 지났는데도 다음 일정을 위해 자리를 떴다.

뒤돌아서는 뒷모습엔 고단하지만, 그래도 장애인들이 함께 웃으며 살 수 있는 세상을 향한 그녀의 열정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것 같아 가슴 한구석이 환하게 밝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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