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교육 20년을 말하다》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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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교육 20년을 말하다》를 읽고
  • 노승희 <사과꽃발도르프학교 담임교사>
  • 승인 2023.10.12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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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대안교육의 전현직 교사, 설립자, 연구자 등 다양한 저자들이 교육잡지 ‘민들레’에 기고한 대안교육 관련 칼럼들을 묶은 선집이다. 

첫 번째 꼭지인 <대안교육의 어제와 오늘>에서는 대안교육운동의 폭넓은 움직임이 어떻게 흘러왔는지 종횡으로 톺아본다. 두 번째 꼭지 <대안교육의 진화를 위하여>에서는 ‘위기를 맞이했다’는 대안교육이 나아갈 길에 대한 고찰이 담겨있다. 대안교육의 길을 이끌어온 어른들의 다양한 미래상들이 나타난다. 세 번째 꼭지 <교육 3주체가 말하는 대안교육>에서는 아이들, 교사들, 부모들이 말하는 대안교육의 빛과 그늘, 각각의 속사정이 담겨있다. 각 꼭지에서 다양한 저자들의 의견들이 서로 대립되기도 하고, 다른 저자의 글을 꼬집어 비판하기도 하는 점이 독자에게 꽤나 흥미롭다. 과거와 현재, 미래, 각 주체의 시선을 모두 담은 선집의 구성이 씨실과 날실과 같이 탄탄히 짜여진 듯하다. 이렇게 대안교육에 대해 총체적으로 다룬 책이 있다는 것 자체를 교육잡지 ‘민들레’의 큰 성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김희동·양영희·양희규·양희창·여병훈·이병곤·이철국·하태욱·한낱·현병호/민들레/1만 2000원.

첫 번째 꼭지 <대안교육의 어제와 오늘>에서는 각 저자의 다양한 관점으로 그동안의 대안교육 운동을 분석해온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 설령 저자의 분석이 다소 주관적일지라도 대안교육의 역사를 잘 모르는 나에게 이런 분석들은 꽤 명료하고 통찰력있게 느껴진다. 대안교육의 역사를 그래프로 정리해, 1997~2004년은 설립 및 팽창기, 2004~2012년은 놓쳐버린 8년인 안정기, 2013년~현재까지 정체기, 미래는 ‘물음표(?)’로 표현했다. 대안교육 기관 57곳의 교육철학 문서에 나타나는 키워드 빈도 분포를 표로 제시한 글도 흥미로웠다. 우선하는 가치들이 다른 각양각색의 학교들에서 어떤 교육이 어떻게 이뤄질지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대안교육 연구자인 한 저자는 대안교육 제도화 관련 법안들을 정리해뒀다. 대안 교육 현장에 있으면서 궁금하고 답답했지만 찾기 어려웠던 내용이었다. 정리 이후의 분석이 이 글의 핵심이다. 대안교육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법제화되는 과정에서 대안교육 현장이 추구하는 방향과 달리 정책은 ‘새로운 교육의 인정(New track)보다는 ‘정상궤도로의 복귀(Back to track)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것이다. 공교육 적응이 어려운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부적응을 위한 교육’으로 공공이 편리한 자리에 대안교육을 위치해뒀다. 올해 ‘대안교육기관 등록제’를 시행한다. 이제 대안교육기관들은 어떤 자리에 위치해 있는지, 현장에 있는 우리는 계속 눈을 크게 뜨고 살펴야 할 것이다. 

저자들이 다룬 내용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 분석을 통해 대안교육에 대한 성찰을 깊이 있게 해나갔다. 성찰의 주된 주제는 ‘우리가 추구해온 대안이란 과연 무엇인가’였고, 현실과 맞닿은 질문이 등장한다. “대안교육에서 추구하는 가치를 ‘선’으로 규정하고 구성원들에게 강요해 온 것은 아닌가?”. 책의 마지막 꼭지에서 아이들, 부모, 교사 모두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다. 나에게도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두 번째 꼭지 <대안교육의 진화를 위하여>에는 첫 번째 꼭지의 성찰에 이어진 대안들이 담겨있다. 그중 대안교육운동이 유아교육운동, 보육운동과 연결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있어 반가웠다. 초등 저학년을 만나며 아이들에 대해 공부할수록 유아시기의 발달 과정이 돌이킬 수 없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3~5세 조차도 앉아서 공부를 하게 만드는 누리과정을 꼬집으며 대안교육과의 연결점을 짚어준 저자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그밖에도 나에게 계속 탐구하고 싶은 흥미로운 논쟁이 등장했다. 한 저자는 대안교육은 앞으로는 더더욱 학교라는 틀에서 벗어나야 하며 아이들이 편하게 오갈 수 있는 거점 형태(센터화)가 되어야 한다는 의견을 글에 담았다. 그에 반해 다음 글의 저자는 아이들이 일상에서의 사소한 변화를 통해 감수성을 키운다는 점과 함께 소중한 일상을 담아내는 울타리(학교)의 중요성을 이야기한다. 더불어 이전 글에서 언급된 대안교육의 센터화를 통해서는 (어린이, 청소년이라는) 세계에 대한 깊이 있는 접근이 어렵지 않을까 하는 우려 겸 비판을 표했다. 정말 대안교육은, 아니 교육은 어떤 형태가 되어야 할까 생각이 깊어지는 논쟁이었다.

세 번째 꼭지 <교육 3주체가 말하는 대안교육>에서는 역시 3주체 중 아이들의 언어가 살아 있었다. 여운이 남고 가슴이 찡한 문장이다.

자꾸 아이들을 자신들의 성과로 보고 뭔가 보상받고자 하는 부모와 교사들의 태도가 오히려 대안교육에 독이 된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른들이 나도 너희들을 기르는 과정에서 많이 성장했다고 말해주던 그 순간이 제일 좋았다. 

읽으면서 대안교육을 경험한 사람(학생, 교사, 학부모), 잘 모르는 사람, 환상을 가진 사람, 이유 없이 비판하는 사람 모두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라는 생각을 했다. 책에 담긴 여러 주체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모두 ‘이대로의 나를 믿어줘’라고 말하고 있는 듯했다. 견제와 감시가 아닌 ‘믿음과 신뢰’만이 교육의 장을 이루는 이들의 건강한 관계와 발전을 만들 수 있다는 것, 이제는 믿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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