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문화의 바탕 말과 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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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문화의 바탕 말과 글 〈2〉
  • 범상스님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4.10.24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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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상스님
석불사 주지
칼럼·독자위원

세종께서 훈민정음(訓民正音)을 창제한 이유를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않음으로 백성들이 자신의 뜻을 글로서 펴지 못함을 안타깝게 여겨 새로운 글자를 만든다”고 천명하셨다. 이때의 문자는 다름 아닌 한자이다. 정확히 말하면 정음(正音), 즉 한글은 한문을 바르게 읽는 발음표기로서 표음문자인 것이다. 지금 세종께서 살아 돌아오신다면 중국인들을 위해 한글 보급에 나설 것 같다. 왜냐하면 현재 중국인들은 한자를 바르게 읽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북경(北京)’이라 하고 중국인들은 ‘베이징’이라 한다. 이것은 <설문해자> 등에서 추구하는 1자 1음의 원칙에서 벗어난 어문불일치이다.

또 다른 예로서 출입(出入), 호흡(呼吸)과 같은 단어들이다. 직접 소리 내어 읽어보시길 권한다. 출입, 호흡을 현재 중국어로는 추-슈(chūrù), 후-씨(hūxī)로 읽는다. 우리말은 입을 여닫고 숨을 내뱉고 멈춤이 글자의 의미와 동일하게 작동된다. 중국식 발음은 여기에서도 원칙을 벗어나있다. 한문과 같은 상형글자는 세상 사물 하나하나마다 그에 해당하는 글자를 하나씩 만들었을 때 완벽해진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육서(六書)라 하여 기본바탕 글자를 조합해서 다른 의미의 글자를 만들었고, 그것도 부족해 말에는 사성(四聲)이라는 성조(聲調)로서 보완하고 있다.

이 같은 사실은 훈민정음 스물여덟 글자가 통용되던 시절 영어를 가르칠 목적으로 정약용, 지석영 등이 만든 교재 <아학편(兒學編)>을 보면 누구나 쉽게 동의한다. 한문, 영어, 일어 세 문자를 우리말로 읽도록 구성되어 있고, 수록된 2000자의 한자에 성조 표기는 돼 있지만 1자 1음으로 읽는다. 당시까지만 해도 <아학편>을 익히면 중국, 일본, 영어권과 소통이 가능했음을 알 수 있다. 한글은 말이 문자와 통하지 않아서 만든 글자이니만큼 문자(한문)를 읽는 발음이 가장 정확하다 봐야 한다. <아학편>이 회화를 목적으로 저술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우리 민족은 한글의 탄생과 함께 뜻글자인 표의문자와 소리글자인 표음문자, 두 가지 글자를 가지게 되었다. 이것으로 표의문자의 한계를 극복하고 갖은 형용사 등을 만들어내며 세계 어느 민족보다도 풍부하고 뛰어난 언어구사 능력을 발휘하고 있다. 훈민정음 창제에서 옛 글자를 모방했다고 밝히고 있다. 이것은 신라의 이두표기법에서 보듯이 불편함을 참지 못하는 우리 민족의 기질 상 끊임없이 한자의 문제점을 해소하려 표음문자들을 만들어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언어는 세상을 관찰, 인식하고 나타내는 도구로써 다양한 표현능력은 인지발달에 큰 영향을 미친다.

외국인들은 하나같이 우리말을 배우고 나서 세상이 다르게 보인다고 한다. 같은 색이라 할지라도 노랗다, 노르스름하다, 누렇다, 노리끼리하다 등으로 달라 보이고, 산책을 할 때 바스락바스락, 부스럭부스럭, 자박자박, 저벅저벅 등 느낌과 소리의 표현들이 모국어를 사용할 때 미처 느끼지 못했던 영화 같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준다는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표의, 표음 두 가지 문자를 통해 발전시킨 우리말의 풍요로움은 세상의 어떤 언어도 따라올 수 없다. 최근 작가 한강의 노벨문학상수상에 대해 별의별 수식어를 써가며 난리가 났다. 적어도 언어의 측면에서 보면 그간 우리문학이 세계적 주목을 받지 못한 이유는 그들이 우리글을 읽고 감정이입을 하지 못했던 것에 기인한다.

이쯤에서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문자와 서로 통하지 않다”는 의미를 다시 한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한문이 오롯이 중국의 문자라면 세종은 “나랏말이 중국과 달라 ‘한문’과 서로 통하지 않다”로 표현했을 것이다. 당시 일부 사대부들은 반대의 명분으로 조선이 독자적 문자를 갖는 것은 상국인 명나라에 불경한 일이 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점을 감안해 볼 때 세종은 문자라는 모호성으로 한문이 중국만의 것이 아님을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한문을 중국문자라고 생각하는 오늘날 우리들의 고정관념에 많은 오류가 있다.

인류사를 보면 현재 한글을 수입한 짜이짜이족처럼 지금까지도 문자가 없는 언어들이 있다. 그리고 몇몇 노인들만이 기억하고 있거나 문자로 기록되지 못하고 사라진 언어들이 부지기수다. 문자의 기록에도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말은 시간에 따라 달라진다. 만약 인류가 지구와 유사한 행성에 소식을 보낸다거나, 현재 문명과 단절된 아주 먼 미래에 기록을 남겨야 한다면 한글과 한문 중에 어느 것이 좋을까. 당연 상형문자인 한문이다. 소리글자인 한글은 문자에서는 그 뜻을 찾을 수 없으나 그림을 바탕으로 한 상형문자에서는 의미 유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다음 호에 이야기할 한문의 원형이 되는 고조선문자와 갑골 등을 해독할 수 있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가능하다.

<이 칼럼은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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