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해 농사를 갈무리하며
상태바
한 해 농사를 갈무리하며
  • 장정우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24.11.21 08:3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strong>장정우</strong> <br>공익법률센터 농본 활동가<br>칼럼·독자위원<br>
장정우
공익법률센터 농본 활동가
칼럼·독자위원

“‘가난’을 주어로 문장을 쓸 때는 심히 망설였지만, 그래도 썼다. 다른 누군가가 이어서 일인칭의 가난을 쓸 테니까. 세상에는 빈곤 계측 모델로는 잡히지 않는 일인칭의 쟁쟁한 목소리들이 필요하다.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그토록 많은 책을 쓰고 팔고 사는데, … 더 쓰이고 더 팔려야할 것은 가난이다.”(안온, 《일인칭 가난》, 10쪽)

이 책은 소위 가성비가 뛰어난 책이다. 20여 년간 기초생활수급자로 산 《일인칭 가난》의 저자 안온은 매우 짧은 분량에도 불구하고 일인칭 시점을 활용하여 우리가 잘 몰랐거나 외면해 온 이야기를 우리에게 생생하게 전해준다. 한 개인의 우여곡절이 담긴 일대기를 ‘가난’이라는 실로 엮어낸 책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세상에는 일인칭의 쟁쟁한 목소리들이 필요하다’라는 그의 말이었다. 

수십 년째 1000만 원 내외를 오르내리는 농업소득, 마을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의 가난과 검소함 사이를 오가는 생활상, ‘가난’처럼 ‘농사’나 ‘농촌’ 내지는 ‘농민’이라는 주제가 우리나라에서 주요한 이슈가 되지 못하는 것 등 다양한 이유로 책을 읽는 내내 나는 ‘가난’의 위치에 ‘농촌’, ‘농사’, ‘농민’을 두고 읽게 됐다. 

올해는 벼 수확을 마치고도 농사일이 계속됐다. 문제는 때아닌 가을비로 제때 일을 마무리하지 못한 탓에 덩달아 늦춰진 마을 길 감 수확이었다. 결국 단감은 익을 대로 익고, 대봉감은 길 가던 사람들이 오가며 손에 닿는 것들은 거의 따간 후에야 미루던 감 수확을 했다. 마을 방송을 듣고 여력이 있는 마을 주민 열댓 명이 모였다. 대다수가 노인회 구성원일 만큼 나이 든 이들에게 추운 날씨 속에서 높이 달린 감을 따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힘에 부치다 보니 빨리 따고 마무리할 생각들을 하시는지 나무도 적지 않게 상하고 다들 일을 마치자마자 각자 집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일인칭 가난》 안온/ 마티/ 2023년 11월/ 14,000원
《일인칭 가난》 안온/ 마티/ 2023년 11월/ 14,000원

공동으로 마을 일을 할 때면 남들이 알아주진 않아도 우리끼리 서로의 수고를 알아주는 느낌을 받아 기분이 좋은데, 최근에는 마을 일을 하러 나오는 이웃이 점점 줄고, 나오는 분들의 거동이 해가 다르게 불편해지는 것을 느낀다. 내년에도 이 구성원들이 그대로 감을 딸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 17일, “쌀 생산량, 예상 밖 큰 폭 감소”(농민신문)라는 기사가 실렸다. 실제 수확을 마쳐보니 집중호우와 고온에 의한 병충해 피해로 통계청의 예상과 다르게 예상했던 것보다 쌀이 7만 톤이나 적게 생산됐다는 게 주요 내용이었다. 기사에서는 계속 떨어지던 쌀값이 반등할 수도 있다는 논의로 이어졌지만, 그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쌀 소비가 줄었지만, 여전히 우리는 고기를 먹는 만큼 쌀을 먹고 있다는 것 그리고 해마다 논 면적과 벼농사를 짓는 농민이 계속 줄고 있다는 것이다. 기후위기가 심화되면서 농사짓기는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가뜩이나 고령화돼 기운이 달리는 농민들은 올해처럼 내년에도 농사를 지을 수 있을지 장담하지 못한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올해 일본에서는 쌀 부족 현상이 나타났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농민이 줄고, 재배 면적도 줄어든 데다 기후위기로 인한 폭염이 겹친 탓이다. 결국 그로 인해 일본 전역에는 가구당 2포대 구입 제한과 같은 쌀 구입 제한 안내문이 붙기도 했다.

오늘 소개한 책을 통해 저자 안온은 “가난의 이야기가 두꺼워지길, 다른 가난의 이야기들이 겹겹이 쌓이고 뭉치길, 그래서 우리가 우리를 알아가길 바란다”며 책을 마무리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이다. 농촌과 농민의 이야기가 두꺼워지길, 다른 농촌의 이야기들이 겹겹이 쌓이고 뭉치길 바란다. 그래서 ‘저들의 문제’가 됐던 농촌과 농민의 이야기가 다시 우리의 이야기가 되길 희망한다. 오늘 이후에도 여러 지면에서 농촌의 이야기와 마주치길 기대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