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청운대학교 영미문화학과 교수칼럼·독자위원
엄동설한(嚴冬雪寒)의 날씨에 산과 들이 모두 얼어붙었다. 숲속 나무들은 이파리들을 내려놓은 채, 북풍의 칼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린다. 꽝꽝 얼어붙은 작은 방죽들은 새들의 발자국을 여기저기 무늬처럼 두르고 있다. 아직 더 눈보라가 몰아칠 것이고, 기온도 많이 내려갈 것이다. 120년 전, 을사년도 그랬으리라.
겨울은 추워야 제맛이라고도 하지만, 맨몸으로 겨울을 나야 하는 야생 동식물에겐 시련의 계절이다. 칼바람과 영하의 온도를 더 이겨내야 봄을 맞이할 수 있다. 사계절이 순환하는 곳에 겨울도 영원히 머물 수 없다. 영국 낭만주의 시인 셸리(Percy Bysshe Sheley)도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으리라고 노래했다. 날씨는 궤도에 따라 순환하게 마련이지만, 정치가 이 꼴이 되어 답보하는 것은 마음 아프다.
제주항공 여객기 사고와 같은 대형 사고가 발생해 우리는 슬픔에 처해 있을 뿐 아니라, 탄핵으로 인한 정국(政局) 불안이 이어지고 있고, 환율인상과 저출산, 사회양극화 등으로 사회적 어려움과 갈등을 겪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우리나라가 세계 속에 어느 위치에 자리매김을 할 수 있느냐와도 관련돼 있다. 120년 전 일본은 조선의 정국 혼란을 틈타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해 을사늑약(乙巳勒約)을 체결했고, 우리는 주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지금 우리는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으로부터 자유로운가?
국제적 위상은 국내의 정치, 경제와 상관관계에 있다. 경제 불안정과 정국 혼란은 국제적 위상을 추락시킨다. 여야의 정쟁은 어느 나라나 있게 마련이지만, 궁극적 정치의 대상은 국민이다. 정치가 권력자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계엄을 선포하는 것은 민주주의 정치에서는 생각해 보기 어려운 문제다. 누가 옳고 그르냐를 논하기 전에, 형식에서 폭력을 사용하는 정치는 정당성을 상실한다.
정권을 찬탈하기 위해 군사력을 사용하는 것은 삼류 정치의 행태다. 정치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계엄을 선포하는 것은 개인의 독특한 성격도 크게 작용했으리라 믿고 싶다. 희랍 비극에서 비극의 주인공은 고상한 인격의 소유자로 도덕적 결함이나 인간적 약점 때문에 몰락했다. 윤 대통령은 여소야대의 국회 구성에서 계엄이 성공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실행한 걸 보면 비극의 주인공도 되지 못하고, 무모함과 오만함이 결합한 ‘휘브리스(Hybris)’에 가깝다.
고집 센 인물이 누군가에 의해서 조종당하거나 어쩔 수 없이 따른다고 할 때 현실적 불행이 뒤따른다. 영국의 가디언 신문은 김건희 여사를 ‘레이디 맥베스(Lady Macbeth)’에 비유했다. 어느 셰익스피어학자는 《맥베스》의 주인공은 맥베스가 아니라 레이디 맥베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레이디 멕베스의 성격은 강렬하다. 그래서 영화 ‘레이디 맥베스’가 나왔는지도 모른다. 장차 왕이 될 것이라는 마녀들의 예언에 들뜬 맥베스 보다도 레이디 맥베스는 왕의 시해를 행동으로 옮기게 하는 성격의 소유자다.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는 위기 때마다 마녀들을 찾아간다. 영주가 되고 왕이 될 것이라는 마녀들의 말이 현실에서 실현됐기 때문이다. 윤 대통령이 손에 왕(王)자를 쓰고 TV 토론회에 나왔을 때 의아해했지만 퍼즐이 맞춰진다. 김건희 여사가 ‘저 감옥가나요’라고 유명 역술인 A씨에게 물어봤다는 것(동아일보, 12월 26일, 이기홍 칼럼)은 420여 년의 시차가 존재하지만, 그녀의 의식세계는 셰익스피어 시대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 21세기 대명천지에 일부 정치인, 연예인, 군인 등이 역술인을 찾아간다는 것은 개인의 미래에 불행을 예약해 놓는 것과 다르지 않다. 보이지 않는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더라도 그것이 내 욕심으로 작동될 수 있다고 무속의 힘을 끌어와 현실을 재단하려는 것은 비이성적이기 때문이다. 비이성은 무모함을 낳는다.
윤 대통령에 대한 체포, 구속영장 발부라는 보도와 갑작스러운 비행기 사고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의 한숨 소리가 TV 화면을 채우는 을씨년스런 을사년 아침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불행이 연속으로 찾아와 불행한 사람의 모습은 다양하다고 톨스토이는 말했지만, 철학자 한병철은 ‘희망은 새로운 것을 태어나게 돕는 산파’라고 말했다. 내일이 오늘보다 더 좋아질 수 있다는 희망만이 절망에 대한 처방약이다. 제주항공 참사자의 명복을 빌며, 유족들에게 심심(甚深)한 위로의 말씀을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