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확 10여일 늦춰지며 품질 저하 우려… 농민들 ‘한숨’

기상이변이 반복되며 수확과 파종 시기가 불안정해지고 있다. 농민들의 손발을 묶는 ‘가을 장마’가 더 이상 이례적 현상이 아닌 현실이 된 만큼, 기상 대응형 농업정책과 현장 지원체계 강화가 시급하다.〈편집자 주〉
마르지 않는 ‘논’, 타들어가는 ‘농심’
현실로 다가온 이상기후 ‘위기 경보’
[홍주일보 홍성=한기원 기자] 가을걷이가 한창이어야 할 홍성 들녘이 멈춰 섰다. 며칠을 기다려도 논이 마르지 않아 콤바인은 진입하지 못하고, 어렵게 건진 벼마저 젖은 채 썩거나 발아한다. 수확 대신 한숨이 깊어가는 사이, 마늘밭의 파종도 발이 묶였다.
논바닥 질어 기계 멈추고 벼는 쓰러져
홍성군 일대는 9월 이후 비가 2~3일 간격으로 이어지며 논바닥이 질퍽해졌다. 콤바인이 진입해도 바퀴가 빠지거나 고장이 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수확이 늦어지면서 비에 젖은 벼 이삭이 쓰러지고, 품질 저하와 수확량 감소가 동시에 우려된다. 수확한 벼는 수분이 많아 건조가 어려워 곰팡이나 수발아 피해로 이어지는 경우도 잇따르고 있다.
홍성군농업기술센터 김대섭 주무관은 “예년에는 중만생종 벼 수확이 10월 10~20일 사이에 마무리되지만, 올해는 논이 마르지 않아 10일 이상 늦어진 10월 25일께로 예상된다”며 “만생종은 11월 초까지 밀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올해 9월 홍성의 일조량은 전년 대비 25% 줄었고, 강우일수는 7일에서 18일로 늘었다. 벼가 제대로 여물지 못한 데다 수확 지연으로 깨씨무늬병·곰팡이병 등 병해 발생이 늘고 있다. 질소 과다 축적으로 벼가 비정상적으로 자라 쓰러지는 도복 현상도 빈번하다.
농업기술센터 관계자는 “병해충 방제를 위한 농약 살포조차 어려운 실정”이라며 “벼의 품질 저하와 함께 가축 사료용 볏짚 부족도 예상된다”고 전했다.
현재 홍성지역 벼 재배 비율은 △극조생·조생종 1~2% △중생종 2% △중만생종 85% △만생종 10%로, 대부분이 아직 논에 남아 있다. 농민들은 “논이 말라야 기계를 넣을 수 있는데, 주말에도 비가 온다니 발만 동동 구르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마늘 파종도 늦어져 ‘이상기후 직격탄’
벼 수확뿐 아니라 밭작물인 마늘 파종도 차질을 빚고 있다. 홍성을 비롯한 서산·태안 등 서해안 마늘 주산지 전역에서도 비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9월 이후 비가 2~3일 간격으로 내리면서 밭이 질어 경운 작업이 사실상 중단된 상태다.
홍성의 대표 품종인 ‘홍산마늘’은 예년이면 9월 말~10월 초 사이 파종을 마치지만, 올해는 아직 시작도 못한 농가가 대부분이다. 젖은 밭에 파종하면 종자가 썩거나 발아율이 떨어지고, 시기가 늦어지면 추위로 인한 생육 부진과 품질 저하가 불가피하다.
홍성농업기술센터 문정민 주무관은 “밭이 젖은 상태에서 경운하면 흙덩이가 생기고, 마르면 단단히 굳어 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한다”며 “지금처럼 비가 이어지면 파종 시기가 10월 23~24일 이후로 밀릴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올해 가을 잦은 비를 ‘이상기후’로 보고 있다. 예년엔 7~8월 집중호우 이후 9월은 대체로 맑았지만, 올해는 9~10월까지 비가 이어지고 있다. 기상청은 이번 주말에도 충남을 비롯한 수도권·전라권 등 전국에 비가 내릴 것으로 예보했다. 낮 기온은 평년과 비슷하거나 다소 낮은 15~23℃ 수준으로, 비구름은 이번 주말까지 머물 전망이다. 농민들의 시름도 그만큼 길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