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과 여행의 길 위에서, 낭만적 순간을 담아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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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과 여행의 길 위에서, 낭만적 순간을 담아내다
  • 이정은 기자
  • 승인 2025.12.04 06:59
  • 호수 939호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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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지역 각양각색 문화예술인
⑭노중호 사진작가
‘한 장의 세계’를 기록하다
지난 26일 갤러리에서 만난 노중호 사진작가.

[홍주일보 홍성=이정은 기자] 시장의 소금기 어린 바람이 골목 끝까지 스며드는 광천읍의 한 모퉁이, 낮은 건물들 사이로 우뚝 선 건물이 눈에 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빛과 시간이 머무는 작은 세계, ‘노중호사진갤러리(광천읍 광천리 189-18)’가 열린다. 예식 사진을 업으로 하던 청년 시절을 지나 이제는 삶의 활력을 위해 카메라를 잡는 사람, 노중호(75) 사진작가를 만나 그가 걸어온 길을 조용히 따라가 봤다.

■ 여행에서 사진으로, 사진에서 인생으로
노중호 작가는 고등학생 시절 귀하디귀했던 플렉스 카메라(이안 반사식 카메라)를 손에 넣었다. 해당 카메라는 공군 두 달 월급쯤 되는 값비싼 물건이었고, 그는 방학이면 렌즈 두 개가 번뜩이는 카메라를 들고 무전여행을 떠났다. 

“여행이 먼저였고, 사진은 여행을 좋아하다 보니까 자연스레 따라왔어요.”

풍경이 부르면 걸어가고 길이 열리면 찍으면서, 그의 여정엔 사진이 자연스럽게 붙어 다녔다. 그 순간들이 모여, 훗날 그의 인생을 이끄는 방향이 됐다. 군대를 제대한 뒤 고향 광천으로 내려온 그는 ‘광천신혼예식장’을 운영하던 친구의 권유로 예식 사진을 맡게 됐다. 그렇게 5년간 직업 사진가로 일하며 수많은 이들의 눈부신 날을 담아냈다. 노중호 작가는 취미로 사진을 찍던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업으로 하면 책임감이 엄청나요. 취미로는 공부를 해도 되고 안 해도 되지만, 업으로 할 때는 전문가다운 실력을 갖춰야 하기 때문에 끊임없이 배워야 했죠.”

■ 공백기를 지나 다시 카메라를 잡다
그는 한동안 카메라를 놓고 살았다. 사진과는 무관한 여러 직종을 경험하면서 십여 년의 시간이 흘렀다. 어느덧 삼십 대의 끝자락, 그는 불현듯 잊고 지냈던 ‘찍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쳤다고 말한다.

“그냥… 갑자기 다시 찍고 싶었어요. 정말 갑자기 마음이 그렇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장비를 모으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막상 사진을 찍으려고 하니 너무 어렵더라고요. 한동안 사진을 찍지 않았기 때문에 까먹은 게 많았어요.”

그는 사진 동호회에 들어가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동호회 회원들과 매주 풍경, 인물, 스냅, 누드 등 다양한 테마를 정해 출사를 다녔으며, ‘포토뉴스’라는 잡지도 발간했다. 사진은 다시금 그의 삶 깊은 곳에 자리를 잡아갔다.

“잃어버렸던 걸 찾은 것도 같고, 고향을 다시 만난 것도 같고, 반가운 기분이 들었어요.”

그로부터 오랜 시간이 흘러 지금, 노중호 작가는 사진을 ‘생활의 일부’라고 말한다.

“뭔가를 담고 싶다는 일념으로 많이 찾아다니다 보면 작품성에 빠지게 되고, 그럴 때는 뭐 하나 건지면 대단한 느낌이 드는데, 오랫동안 사진을 하다 보면 그 느낌이 무뎌져요. 사진은 그냥… 제 생활의 일부예요. 무심코 일상 속을 거닐다가도 마음에 들어오는 게 있으면 사진이든 영상이든 찍는 거예요. 오래된 습관 같은 거죠.”

그는 특정한 사진 스타일을 고수하기보다는, 순간의 감정과 분위기가 사진을 결정짓는다고 말한다. 찍는 이의 감정 상태에 따라 구도나 노출이 달라지고, 결국 사진에는 촬영자의 마음이 스며들게 된다는 것이다.

“제가 사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건 힘이에요. 보는 이의 시선을 붙잡는, 마음을 사로잡는 힘이요.” 
 

광천읍 ‘노중호사진갤러리’의 내부.

■ 필름에서 디지털로, 장비와 세대의 변화
노중호 작가는 처음 사진을 시작했던 시절과 지금 사이에 생긴 변화가 너무 많다고 말한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옛날 카메라는 이제 “구경거리밖에 안 되는” 물건이다.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경계가 너무나 선명해져, 그가 사진을 배우던 시절과 지금은 도무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다르다는 것이다. 199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디지털이 도입되기 시작했고, 2000년대 초반에는 본격적으로 확 바뀌었다. 그 무렵 사진 홈페이지를 운영하던 노중호 작가는 필름 시대에는 몹시 까다로웠던 업로드 작업이 디지털로 넘어오면서 훨씬 쉬워져 재미를 느꼈다고 한다.

“필름으로 찍을 땐 정말 온몸을 몰입해야 돼요. 노출이나 핀트 등 어느 요소 하나라도 틀리면 안 되니까, 실수 자체가 허용이 안 되는 거죠. 필름은 그래서 작품성이 생기는 것 같아요. 반면, 디지털은 너무 편해요. 그러다 보니 마음이 좀 느슨해져서 예술성이랑은 멀어질 때가 있어요. 예전엔 ‘내가 예술을 한다’는 자부심 같은 게 있었는데, 디지털은 말 그대로 장난감처럼 너무 쉽죠. 그래서 필름이랑 디지털은 애초에 대하는 자세가 완전히 다를 수밖에 없어요.”

노중호 작가와 오랜 시간을 함께해온 장비로는, 디지털 초창기 모델인 캐논 D1, 그리고 EOS-1 Mark II와 70D가 있으며, 요즘은 5D Mark IV를 주로 사용하고 있다.

“지금은 장비 욕심이 없어요. 카메라는 4~5년만 지나도 구닥다리가 돼요. 해마다 신제품이 나오니까, 계속 사다 보면 끝이 없어요. 카메라 추천이요? 그건 차라리 챗지피티에 물어보는 게 훨씬 나아요. 하하하하.”

오랫동안 기술의 변화를 직접 경험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담백하고 솔직한 말이었다.
 

가장 오래 간직하고 있다는 서천 동백정에서 촬영한 사진.

■ 위기를 지나 유튜브라는 새로운 무대
이태 전, 여행을 마치고 자신의 갤러리로 돌아온 노중호 작가는 깜짝 놀라고 만다. 건물의 수도 파이프가 터져 갤러리 내부엔 무릎 높이까지 물이 차 있었고, 오랜 세월 사용해 온 장비 절반 이상이 망가져 있었다. 그 무렵엔 건강에도 문제가 생겨 결국 수술을 받아야 했으니, 그야말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그 뒤로 그는 예전처럼 자유롭게 여행을 떠나지 못했다. 그러나 노중호 작가는 멈추지 않았다. 유튜브라는 새로운 세계로 진입한 것이다. 그는 스마트폰과 고프로, DJI 액션캠 등 휴대가 편한 장비로 일상, 음악회, 관광지 풍경, 카페 소개, 지역 문화재 행사 등 다양한 콘텐츠를 촬영·편집하고 있다.

“영상편집은 유튜브 강좌 보면서 독학했어요. 지금도 배워가면서 하는 거예요. 편집프로그램은 처음엔 프리미어를 쓰다가 지금은 캡컷, 키네마스터, 브루, 이 세 개를 주로 사용해요.”

최근 작가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촬영 작업은 수룡동 천북 바닷가에서 새벽 일출을 담은 영상이다. 상공 300m까지 드론을 띄워 바라본 장면은 그에게 깊은 잔상을 남겼다.

“바다 안개가 흘러가는 게… 참 아름답더라고요.”

끝으로 사진을 시작하는 청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묻자, 그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유도 모른 채 무작정 끌리는 마음, 뭐든 마음에서 확 당기는 게 있어야 해요. 사진 1~2년 하다가 질려서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거든요. 그맘때가 흔히 권태가 오는 시기인데, 그걸 잘 넘기면 실력이 눈에 띄게 확 늘어요.”

노중호사진갤러리에는 30여 점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작가는 이를 “여행 기념사진들”이라고 말하지만, 사진에는 그가 오래도록 좋아해 온 풍경과 그만의 시선이 담겨 있다. 또, 작은 무대와 함께 기타, 첼로, 아코디언, 전자피아노, 봉고 등의 악기도 마련돼 있어 음악동호회 모임을 진행하기도 한다. 노중호 작가의 영상은 그의 유튜브 채널 ‘노중호사진갤러리(@No_Jung_Ho)’에서 감상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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