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마산(鐵馬山)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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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마산(鐵馬山)에서
  • 구재기 시인
  • 승인 2013.09.26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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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재기 시인과 함께하는 시로 찾는 ‘너른 고을 홍성’ <14>

 

▲ - 사진 : 금광의 흔적이 사라지고 오토캠핑장으로 조성된 철마산.


누가 저 우람한
몸체의 실핏줄을 따라
가장 뜨거운 심장 하나를
거침없이 훔쳐냈단 말인가
모산만의 순한 물결 위에서
햇살 한가롭게 노닐다가
잠시 휴식처럼
번득이는 눈을 돌리는 순간
철마산은 숫제 몸부림이었다
푸른 소나무 뿌리가
통째로 흔들렸다
주야장천 모산만의 흐름을 굽어보며
사랑과 지혜를 풀어놓으며
뱃사람의 뱃노래를 함께 하던
철마산이래도
어찌 분기에 떨지 아니하겠는가
분기憤氣란 항상
충천衝天하여 몸의 안팎을 이루는 것
강심장이 도려지는 아픔처럼
생각조차 하기 싫은
기억 하나, 철마산은
실핏줄로 흐르는 붉은 피를
하늘을 향해 꾸역꾸역 토해냈다

일제시대에는 오직 지하자원의 수탈을 목적으로 산줄기를 지질의 개념으로 왜곡시켜놓았다. 그것은 바로 오늘날 백두대간과 태백산맥이라는 두 체계를 낳았으니 전자는 땅위지형의 개념이고 후자는 땅속지질의 개념이다. 따라서 우리 고유의 산줄기 개념이 전래되지 않은 채 망각된 산줄기로 사라져 버린 것은 일제의 한반도 강점이 원인이었다. 현재 이미 배워온 산맥 이름인 장백, 마천령, 노령, 태백, 차령산맥 등은 일본지리학자가 일반상식의 산맥과는 달리 지질구조선 즉, 땅속의 맥 줄기를 산맥의 기본개념으로 한 것이다. 땅위의 산줄기에 상관없이 지질구조선대로 따라 그려진 산맥에는 물길이 포함되고 산맥이 강을 건너는 말도 안 되는 모순 속에서 우리의 지하자원을 수탈해갔다. 이러한 일제 수탈의 손길은 홍성에서도 볼 수가 있다. 바로 철마산(鐵馬山)이 그러하다. 철마산(鐵馬山)은 홍성군 서부면 홍남서로 수룡동과 결성면 성호길 사이, 그리고 서부면 홍보로를 품고 자리한 높이 107.5m의 야트막한 산이다. 이 철마산을 향하여 서부면 판교리에서 판교천을 따라 수룡동으로 가다보면 오토캠핑장이 설치되어 있는 세울터에 이른다. 바로 이 세울터 입구의 판교천 옆을 살펴보면 색다른 흙으로 쌓여있음을 알 수 있다. 바로 이 흙은 일제시대 이 철마산 입구 세울터의 지하 갱도로부터 실어 내온 흙이다. 일제시대의 금광터라고 한다. 한때는 금광터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각종 시설물들이 녹이 쓴 채로 남아 있었고, 지하갱도에는 물이 가득 검은 물이 고여있었음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이곳에서 금광석을 어찌나 많이 채광하여 일본으로 실어 내갔는지 들리는 말에 의하면 사흘 낮밤을 쉬지 않고 화물선에 싣고는 모산만 수룡동 앞으로 하여 일본으로 실어갔다고 한다. 통탄할 일이다. <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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