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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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이 내 것 같아요 < 37 >
  • 한지윤
  • 승인 2013.12.27 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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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가 쓰는 청소년소설

"아까 들어와서는 가슴이 아프다고 울먹거리더니 막 잠들었어."
"왜?"
발걸음을 멈춘 수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몰라. 싸웠냐고 물었더니 아니래. 그냥 아프대."
수미는 아무 말 없이 발을 빨리 놀려 부엌문을 열었다. 1평 남짓한 부엌에는 수진이가 빨아 널었는지 속옷들이 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호진아!"
양동이를 내려놓기가 바쁘게 방으로 들어서며 이름을 부르는 수미의 소리에도 호진은 조용히 누워있었다. 수미는 잠자코 호진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 눈 꼬리에는 눈물 자욱이 배인 채 잠든 얼굴이 조금 찌푸려 있었다.
"언니, 밥 먹어야지."
수진이가 부엌에서 저녁상을 차리며 말했지만 수미는 그냥 일어섰다.
"아냐, 빨리 가봐야 해. 늦었어."
문을 열고 나가니 어두컴컴한 언덕 아래로 도시의 야경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했다. 차들이 분주히 지나다니는 도로를 사이에 두고 불빛들이 빽빽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이다. 저 많은 집들 중에 자기들 세 식구가 살 집이 없다는 사실이 너무나 서글프게 가슴을 저며 왔다. 끝없이 가라앉는 근심으로 슈퍼마켓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천근만근 무거워졌다.
민소영은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착잡했다.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어린 학생들을 대하는 양 권위적인 교감의 계속 반복되는 훈시를 듣는 다른 선생들의 얼굴에는 아무 표정이 없었다. 소영의 눈길은 유일하게 침통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인 채 무언가를 끄적이고 있는 강선생에게 머물렀다. 그도 자신처럼 교감의 말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 강선생이 눈길을 의식했는지 고개를 들어 소영을 쳐다보고는 어깨를 움찔해보였다.
소영은 교감 쪽으로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는 자기의 말이 아무 문제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생각하는지 언성을 더욱 높이며 계획을 설명했다.
"에. 그러니까 요점을 말하면 교육감님이 오시는데 환영행사를 해야겠다 이 말씀이에요. 한 반도 빠짐없이 당일, 즉 화요일 아침 조기청소와 환영식에 참가하도록 해주십시오. 그리고 환경미화나 환영행사를 위해 모레 저녁 자모회를 소집할 수 있도록 오늘과 내일 학생들에게 전달하도록 합시다. 이상, 오늘 교무회의를 마치겠습니다."
그는 한차례 선생들을 휘 둘러보고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 가서 앉았다. 책을 챙기고, 책상서랍을 여는 소리로 교무실이 갑자기 부산해지기 시작했다. 소영은 책상 한구석에 놓인 교과서의 겉표지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생각에 잠겼다.
교육감이 온다는 것이 학교로서 큰 행사라는 것은 이해가 가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행사를 준비하고 치르는 방식이 문제였다. 아니, 그런 방식을 아무 문제의식 없이 생각해내는 사고방식 자체가 문제였다. 소영 자신의 생각으로는 청소나 깨끗이 하고 아이들에게 손님을 맞는 예절에 대해 주의시키면 그것으로 족하다 싶었다. 그러나 오늘 아침 교무회의 시간의 교감의 말은 그게 아니었다. 더욱이 자모회 준비의 책임자의 한명으로 민소영을 지목했던 것이다. 왜냐하면 자모회 소집 자체가 학부형에게 손을 내밀자는 뜻인데,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학부형에게 경제적 부담을 지운다는 것은 인정할 수가 없었다. 더욱이 이 학교에는 잘 사는 아이들보다 밥먹고 살기도 힘든 가정의 아이들이 더 많지 않은가. 자모회에 참서하라면 모든 학부형이 그러하듯 없는 살림 쪼개어 봉투를 만들어 올 게 뻔했다. 그렇다고 있는 집 부모만 소집하는 것도 사춘기 아이들에게 상처가 될 것이고.


…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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