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지난번 다니던 학교에서 왜 이리로 전학을 왔는지 알고 있다. 나는 전말을 모르기 때문에 섣불리 단정 짖고 싶지 않다만 교장선생님이나 학교당국에선 지금 너를 주목하고 있다.”
“전과자를 격리시키는 것과 똑같은 이치군요.”
현우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생각하라고 너를 부른 건 아냐. 네 의지와 무관하게 나쁜 상황에 말려들 수도 있으니 주의하라는 거다.”
강선생이 담배를 비벼 끄며 숨을 내쉬었다. 희뿌연 담배연기가 코에서 뿜어 나왔다.
“그 애들의 행실을 알면서도 왜 학교 측에선 가만히 두는 겁니까?”
얼굴에 비웃음을 가득 담고 현우가 강선생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물었다.
“그, 그건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 학교 측에서도 그대로 두지는 않을 거다. 너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폭력을 쓰지 않도록 노력만 하면 돼.”
강선생은 현우의 뚫어질 듯 바라보는 눈빛을 똑바로 쳐다볼 수 없어서 괜시리 책상 위의 서류를 뒤적이며 말했다.
“그러니까 아무리 싸움을 걸어와도 맞아 죽을지언정 방어조차 해서도 안 된다는 말씀이군요.”
침울한 강선생의 얼굴이 씰룩거렸다.
“너를 지키는 길을 그것뿐이다. 명심하도록 해.”
한숨을 내쉰 강선생이 다시 주머니에서 담뱃갑을 빼들었다. 현우는 담배를 빼서 불을 붙이는 강선생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흘러갔다. 깊이 들이 쉰 숨을 연기와 함께 내쉬며 강선생이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일어섰다.
“미안하다. 너한테 할 수 있는 말은 이것 밖에 없구나.”
강선생은 그 말과 함께 현우의 어깨위로 손을 올렸지만 곧 떨어뜨리고 말았다. 현우가 벌떡 일어섰기 때문이다.
“알겠습니다. 하지만 자신할 수는 없습니다. 어른들의 기준에 맞추어 제게 강요하진 마십시오.”
강선생은 말없이 고개를 그덕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훈계를 하라는 지시를 받고 불렀지만 자신이 학생에게 야단을 맞은 기분이었다.
“가도 됩니까?”
현우의 질문에도 강선생은 계속 고개를 끄덕였다. 보일 듯 말듯한 목례를 건넨 현우는 찬바람이 돌 정도로 훽 돌아서서 성큼성큼 교무실을 걸어 나갔다.
건방지고 당돌한 현우의 뒷모습을 보며 강선생은 희미한 웃음을 떠올렸다. 호되게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녀석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들어 계속 고개를 끄덕이고 앉아 있었다.
“저 애 말이 맞아요.”
어느새 다가왔는지 민선생이 상기된 표정으로 앞자리에 앉으며 말했다.
“온갖 악의 온상이 되고 있는 아이들은 재단이사장의 아들이라고 손 하나 안 대고, 얌전히 있는 아이만 나무라는 건 어른들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잖아요.”
민소영은 짜증스러운지 팔짱을 끼고 책꽂이 너머로 강선생을 쳐다보았다. 강선생은 아무 말 없이 담배연기만 뻐끔뻐끔 뿜어냈다. “전 요즘 들어 교사라는 직업에 회의를 느낄 때가 많아요.”
눈앞의 꽃병에 꽂힌 장미꽃의 시든 꽃잎을 떼어내며 소영이 목소리를 낮추어 투덜거렸다.
… <계속>